지식이 있는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신자라면 그들의 주장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자들로서 하늘에서 우리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10장에서 거론될 것이다.) (98.3)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영감의 증언을 믿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을 벌어들인다고, 아니면 그들이 로마교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배도로 타락했던 초기 교회의 칭의에 대한 개념과,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칭의를 위해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의 사이에 대한 초점을 찾아보자. (98.4)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업적(또는 행위)을 통하여 속죄함을 받으려고 애쓰도록 이끌림을 받아왔다. 곧 금식이나 고통이나 또는 교회에 돈을 바침으로 인한 업적들이다. 이런 것은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진리를 믿고 순종함을 통하여 그것을 구하기 보다는 의를 구하기 위해 육신에 속한 마음이 더욱 원하는 것이었다. 배도의 시기 동안, 암흑은 땅을 덮었다.”(RH 1892. 11. 22) (99.1)
위의 증언을 만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칭의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상태라고 알게 됨으로 로마교를 따른다고 형제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침묵시킬 것이다. 신신학은 그리스도는 오직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모본이 되시나 죄를 극복하는 데는 우리의 모본이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언급들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한다. (99.2)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우리의 모본이 되신다.”(ST 1888. 1. 13) (99.3)
영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또 다른 이탈은 그리스도는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한다. (99.4)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99.5)
새로운 교리가 여러 점에서 근본적인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가르침으로부터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 제시할 수 있으나, 그 대부분은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신신학은 그들의 견해를 지지하기위한 해석들을 영감의 말씀위에 두려는 것이다. 이는 대단히 놀랄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에 대한 몇 가지 예를 찾아보자. (100.1)
태평양 연합대학 라디오방송국의 질의 응답 프로그램에서 어떤 사람이 데스몬드 포드 박사에게 엘렌 화잇이 “전가하다”(imputed)란 말과 “나눠주는”(imparted)란 용어를 교환해서 사용한 예가 있는가를 물었다. 포드 박사는 대답하기를, “있다. 그녀는 그 두 말을 교환해서 사용하고 있다” 고 하였다. 여기에 포드 박사의 말을 소개한다. (100.2)
“예를 들면, 실물교훈 책에서이다 ∙∙∙ . 그녀는 그것이 대중적인 사업이요 교회 교인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혀 ‘전가하다(impute)’란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엘렌 화잇이 사용한 말은 오로지 그 두번째 것 즉 ‘나눠주다(imparted)’란 말이다. 그녀는 주입(infuse)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주는 것(giving)의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전가하다(impute)와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데스몬드 포드 11-4-77) (100.3)
포드 박사는 영화롭게 되기 전에 죄에 대한 완전한 극복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실물교훈」에서 몇 가지 설명이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여기에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겠다. (101.1)
“성경은 이 세마포가 ‘성도들의 옳은 행실, 곧 성도들의 의’(righteousness of saints)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It is the righteousness of Christ)요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서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믿음을 통하여 나눠주시는(imparted) 그리스도의 흠 없는 품성이다.”(101.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으로 완전한 품성을 나타내셨고 이 품성을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imparted) (COL 311) (101.3)
위 문장의 전후 문맥은 그것들이 믿는 자의 성화에 대한 언급이고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에 대한 언급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01.4)
입혀주시는 의는 부록에서 소개된다. 엘렌 G. 화잇은 “입혀 주신다.”(imputed)란 용어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입혀주시는 그리고 나눠주시는 선물 양편을 의미하는데 교환해서 적어도 얼마의 경우에 사용한다. 그러나 필자는 나눠주시는 의란 말들이 입혀주신다는 의의 선물을 의미하는데 사용한 것을 결코 발견하지 못하였다. (101.5)
뒷 부분에 그리스도인 완전에 관한 부록이 나온다. 거기에서 위에 언급된 실물교훈의 내용들과 같이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지적하는 꼭 같은 진술들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일관성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거듭해서 혼돈 가운데 빠질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실물교훈이 쓰여지기 5년 전인 1895년에 “우리를 성화시키는 의는 나눠주시는 것이다.”(MYP 35)라고 말하였다. (102.1)
비록 「실물교훈」이 교회나 일반대중 양편 모두를 위해 기록되었더라도, 선지자가 그의 책이 일반 대중에게 팔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시대의 끝까지 교회가 혼돈 가운데 처하게 하고, 자신이 이전에 했던 말을 번복한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102.2)
복음이 믿는 자 속에서 회복을 포함한다는 성경 말씀의 풍성한 증거를 무시하고, 데스몬드 포드 박사는 복음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성취시키신 일에만 언급하고 있다는 가르침을 굳게 고수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보도기사 제목들 가운데 한가지이다. (102.3)
백만 가지 설교들이 반대를 표할지라도 복음은 선한 권고가 아니다! (102.4)
“그것은 복된 소식, 복음이다. 권고는 내가 해야만 하는 어떤 의무를 지적하지만 복된 소식은 이미 이뤄진 어떤 것에 관한 것이다. 혹은 그밖의 어떤 누군가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복음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는 기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시간과 영원은 그분의 아들의 인격속에 있는 그분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취는 어느 누구에게든 아무리 천할지라도 그 뉴스를 믿는 자에게 이루워지는 것이다.”(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