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그의 크신 자비로 와그너 목사와 존스 목사를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가장 귀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은 온 세상 죄의 희생제물 되신, 높이 들림 받으신 구세주를 더욱 현저하게 소개할 기별이었다. 이 기별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받도록 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야에서 예수님을 놓쳐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그분의 거룩한 본성, 그분의 공로, 인간 가족을 위한 그분의 변찮는 사랑에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모든 능력이 그분의 수중에 주어졌는데, 이는 그가 희망없는 사람들에게 무한히 값진 그분의 의의 선물을 나눠 주심으로 부요한 선물을 내려 주시려 함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하라고 명령하신 그 기별이다. 이것이 측량할 수 없는 성령의 부으심으로 큰 소리로 외쳐야 할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TM 91~92) (86.1)
 이 기별은 당시 대총회장이었던 O. A. 올슨에게 1895년 5월 1일 타스마니아 호바트(Tasmania, Hobart)로부터 보낸 편지내용 중 일부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1888기별의 요약으로 볼 수 있다. 한 구절의 문장으로 이것보다 더 큰 의미를 우리에게 내포해 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의 요점을 주목하라. (87.1)
 1. 그것은 주님의 크신 자비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완전한 확신 가운데 받아들일 수 있다.

 2. 온 세상 죄의 희생제물되신, 높이 들림 받으신 구세주를 더욱 현저하게 전할 것이다.

 3. 이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수 있는 가장 놀라운 선물이다. 영원 전부터 과거와 미래를 포함해 가장 위대한 사랑의 선물이 우리로 의를 받도록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가운데서 밝히 드러난 바 되었다. 이런 사랑의 선물로 우주는 반역으로부터 영원한 안정 가운데 놓이게 될 것이다.

 4. 그것은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으라고 초청하였다. 그 의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는데 나타났다. 도움 받을 수 없는 인간에게 나눠주시는 그분 자신의 의의 무한하신 선물 또한 사랑의 선물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 1895년 5월 1일과 그후 35일 후인 같은 해 6월 4일자 한 기사가 리뷰 앤 헤럴드를 통해 나왔다. “우리로 성화하게 하는 의(義)는 나눠주시는 의”이다.(MYP 35에서 인용) 그렇다면 이 나눠주시는 그분의 의(義)의 선물은 모든 계명을 순종하는데 나타나는 우리의 성화를 위한 것이다.

 5.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하라고 명령하신 그 기별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장 귀중한 기별을 그들이 취급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분명케 하기 위해 당신의 기별자에게 주셨다.

 6. 그것은 큰 음성으로 외쳐지면서 성령이 대량으로 함께 부어질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 (87.2)
 더 나아가, 그것은 늦은비의 기별이요. 우리 백성이 만일 그의 충만함 가운데 받아들였다면 계 18 :1(온 땅을 그의 영광으로 환하게 할 기별)은 성취되었을 것이다. (88.1)
 이 기별은 두 가지 매우 다른 개념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모두가 한 주제 안에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기별을 보내신 이후부터, 그는 우리가 그분의 구원의 계획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셨다. 또한 하늘을 위한 우리의 자격이나 적합성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애매모호하게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이 기별을 대담하게 거절하는 우리 교회 내에 들어온 신신학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88.2)
 만일 이 새로운 이론의 최초의 요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여전히 애매모호할 것이다. 이 신신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개혁 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대리자이시다. (88.3)
 이것은 의미심장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성경 해석과 (그 견해를 지지하는) 예언의 신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엘렌 G. 화잇 사망 이전에 세워졌던 우리의 구원에 관한 역사적 신학의 많은 부분이 이런 신신학에 의해 쓸어 버림을 받고 있다. 이전 아본데일 대학교수요, 현 PUC(태평양 연합대학)신학부 교수인 데스몬드 포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89.1)
 “의(Justification: 의롭다 하심)는 내게는 또한, 나로 말미암고 나를 통하여는 어떤 것이든 전혀 상관없다. 성경 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Righteousness)는 언제나 칭의(Justification)를 의미했고 결코 성화(Sanctification)를 의미한 적이 없다.”(Post Palmdale 카세트 테이프) (89.2)
 포드 박사는 성령의 나눠주시는 의 없는 사법상의 의를 의미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포드 박사는 포스트 팜데일(Post Palmdale)설교에서 엘렌 화잇의 한 진술을 언급하고 있었는데 다음은 그가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견해 가운데 적용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89.3)
 엘렌 G. 화잇이 우리 백성에게 “우리가 미네아폴리스 기별을 받아들였더라면 하늘 왕국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1893년이었다.” (89.4)
 그 다음 그는 “우리는 두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던 또 다른 저자에 대해 넌지시 암시한다. 그가 우리에 대하여 두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발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포드 박사의 설명의 모순이 있다. 곧 과거 미네아폴리스 기별에 대한 반대자들 모두, 어쩌면 그중 아무도 그 기별에 대해 그만큼 극적으로 반대된 입장을 취한 자는 없으며, 그보다 더 우리 백성을 그 기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한 자가 없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미네아폴리스 기별의 한 부분만을 오로지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는 “의(Justification: 의롭다하심)는 내 안에서, 나로 말미암아 나를 통하여는 어떤 것이라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눠주시는 의(성화)를 거절하는 것은 복음 주의 신학으로 돌아서게 하며 전적으로 1888기별을 거절하는 것이다. 더우기, 제 4장에서 나타내었던 것처럼, A. T. 존스와 엘렌 G. 화잇과 E J. 와그너에 의해 부가되었던 것으로 볼 때 거절되었던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화적 개념이었던 것이다. 포드 박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똑같은 개념을 반대하며 성서상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결코 성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입장은 희망없는 딜레마이며 1888 미네아폴리스 기별이나 그 기별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설명들과도 조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제 2장과 3장에서 전술한 바대로 바로 그 반대입장에 대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 박사는 미네아폴리스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1888년 기별의 더욱 폭넓은 개념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90.1)
 그것은 거듭해서 경고가 발해져야 한다. 데스몬드 포드 박사와 혹은 이런 견해를 지닌 어떤 사람이라도 진실성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그들이 모든 그들의 가르침에 진실하다고 알려지는 만큼 그들의 개인의 고결함은 어떤 방법으로든 의심받지 않는다. 포드 박사의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헌신은 그의 신실성에 대해 증거한다. 이런 대화는 가르침 혹은 그의 교리에만 관계되며 인격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해 우리에게 보내신 기별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그로 인해 그것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그토록 교묘하게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비참한 일이다. (91.1)
 죠페리 팩스톤(Geoffery Paxton: 영국 국교회 목사)은 「재림교회 내의 흔들림」이란 그의 책과 「어드밴티스트」 매거진의 공적 발언들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성화를 포함시키는 것은 재림교회내의 심각한 오류이며, 그런 자세로부터 속히 벗어나기를 강력하게 호소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그가 “진정한 재림교도는 일어설 것인가?” 라는 도전을 확대시키면서 그가 언급한 한 국면이다. 만일 팩스톤 목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그 기별을 진실로 이해했다면 그는 자기가 셋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한 모든 사람들에게 굳세게 서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엘렌 G. 화잇은 이런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91.2)
 “그대들이 이 사람들(존스와 와그너)이 증거한 기별을 거절할 때, 그대들은 그 기별을 주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다.”(편지 51-A, 1895) (92.1)
 포드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시조(Signs of the Times)에서 어떤 질문에 답하였다. 그 질문은 “1888년 기별은 종교개혁 신학을 뛰어넘는 기별이었는가?” 다음은 포드 박사 답변이다. (92.2)
 “1888년 그 유명한 미네아폴리스 대총회때 설교자로 섰던 와그너와 존스는 1세기 로마제국을 밝혔고, 16세기 유럽을 밝게 했으며, 그리스도 재림 직전 온 세상을 환하게 할 똑같은 빛의 최초의 섬광을 가졌었다.”(오스트레일리아 시조 1978년 2월호 30페이지) (92.3)
 1889년 9월 13일자 덴버 야영집회에서 행한 엘렌 G. 화잇의 진술내용을 여기에 소개하겠다. (92.4)
 “ ∙∙∙ 주님께서 사람들을 일으키사 백성에게 전하려고 이때를 위한 바로 그 기별을 보내실 때 그것이 백성들에겐 이상한 교리처럼 보일 것이다. 그 기별은 새로운 진리가 내포된 것도 아니요 바울이 가르쳤고 그리스도 자신이 가르치셨던 바로 동일한 기별이다. 바리새인의 정신을 지녔던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한 이미 묵은 이론들을 지지하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보내신 기별을 받지 않으면 자신들이 평안한 입장에 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원고 27, 1889년) (92.5)
 이 때는 엘렌 G. 화잇이 와그너와 존스로 더불어 전도 여행하며 많은 시간을 말씀을 전하였던 바로 그 해였고, 이 담화의 전후 내용으로 보아 그녀가 와그너와 존스의 기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는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93.1)
 이 내용 가운데는 그들의 기별이 16세기 종교개혁 신학의 최초의 섬광이었다는 포드 박사의 진술을 동의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엘렌 G. 화잇은 위의 진술에서 그것은 바울과 예수께서 가르치신 바로 똑같은 기별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한다. “포드 박사는 미네아폴리스 기별에 관해 철저한 연구를 한 경험이 있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그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그처럼 많은 증거들을 지나쳐 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엘렌 G. 화잇이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10년 동안 이 빛을 거절하지 않도록 견책해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