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와 같은 합리화의 주장은 랍비들과 유대사회에 전반적으로 수용되지는 못했다. 랍비 디미(Dimi)는 그 주장을 수정하여 말했다. “이것은 왕의 명령이 없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왕의 칙령이 선포되면 비록 작은 계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범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교를 당해야 할 것이다.” 랍비 요하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비록 왕의 명령이 없다 할지라도 오직 개인적으로만 강제력에 의한 범법을 용납할 수 있을 뿐 공적으로는 비록 작은 계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범하는 것보다 차라리 순교를 선택해야한다”고 하였다(Sanhedrin 74b). (75.2)
 랍비들은 박해자의 동기가 마땅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박해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쾌락만을 위해서 유대인에게 안식일을 범하도록 명령했다면 유대인은 그 명령에 의해 안식일을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해자의 명령이 종교적인 동기에 기초하고 있다면 마땅히 순교하는 길을 선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바가 말했다:만일 어떤 이방인이 어떤 유대인에게 말하기를 ‘가족을 위해 안식일에 풀을 베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고 한다면 이 때 그는 풀을 베기보다는 살해를 당해야한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 명령자의 의도가 유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종교를 위반하도록 강요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Sanhedrin 74b). (75.3)
 생명의 위험은 절대적으로 확실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생명이 위태로운지 아닌지가 의심스러운 때는 언제든지 안식일을 범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가 어쩌면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안식일에 치료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하자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위해 즉각 물을 데운다”(Yoma 8:6:84 a. b). 산파의 일도 안식일의 합법적인 일이다. 산파는 그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안식일에 허용되는 거리 이상으로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가 연기되어도 별로 위험하지 않는 만성적인 질환의 경우에는 안식일에 치료할 수 없었다. 그런 경우는 생명의 위험(pikkuack nephesh)의 원칙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Shab. 18:3; 22:6). (75.4)
 성읍이 이방인이나 홍수에 휩싸여 있을 때나 배가 조난을 당하고 있을 때는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뿔 나팔(Shofar)의 경적을 울릴 수 있었다(Tannith 3:7). 바다에 빠진 어린아이나 사고로 방안에 갇힌 어린아이를 안식일에도 구출할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잔해를 치울 수 있으며 이러한 일에 더 열성을 내는 사람은 더 칭찬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Yoma 84b). 또 사람들은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안식일인데도 불을 끄거나 불길을 끊을 수 있다(Yoma 84b). (76.1)
 안식일의 금지 규칙들
 율법에 의해 안식일에 전적으로 금지된 일들과 안식일에 정규적으로 허용된 일들을 칼로 무를 자르듯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은 다소 독단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안식일에는 전투행위가 허용되었는가 아니면 금지되었는가 하는 문제도 단순하게 대답하기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어차피 구분할 수 밖에 없다. 구분하는 것이 생활에 편리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 즉 지금은 안식일에 무엇이 금지되었고 무엇이 허용되었는지를 규정한 엄청난 율법규정들을 취급할 차례 이다. (76.2)
 구약성경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몇 가지 활동들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일하기, 불 피우기, 매매하기 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랍비들은 여기에 추가하여 출애굽기 16:29를 일정한 거리 이상의 여행에 대한 금지로 이해했고 예레미야 7:21, 22를 개인의 거처로부터 공공 장소를 또는, 공공 장소에서 개인의 거처로 짐을 나르지 못하도록 금지한 조치로 이해하였다. (76.3)
 그러나 무엇을 일이라고 이해해야 하는가? 과학적인 의미에서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일이다. 분명히 랍비들은 근대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정의와는 다른 의미로 일을 정의했다. 넷째 계명이나 다른데서 일을 뜻하기 위해서 성경이 사용한 단어는 “멜라카”(melakah)이다. 임무, 계획사업, 사역의 뜻이다. 일의 핵심적인 요소는 노력의 합계가 아니라 노력의 목적이라는 사실이다.8 넓은 의미의 “멜라카”는 세속적인 이익을 얻거나 생산하려는 의도로 행해지는 무엇이다. (76.4)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추상적인 것이다. 랍비들은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일을 정의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일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들은 출애굽기 35장의 주석을 통하여 일에 대한 일종의 목록을 만들었다. 출애굽기 35장에서 모세는 안식일에 일하는 것과 불 피우는 것을 엄금하면서 어기는 자들에게 사형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성막의 건설과 관련된 임무 등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열쇠가 있었다. 성막의 건설을 위해 동원되는 여러 다른 행위들이 모두 “일” 이란 항목 아래로 모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축소의 과정을 통해 일의 종류를 적정한 수로 조정하였다. 그들은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그것을 넘게 과다히 때리면∙∙∙네가 천히 여김을 받게된다”신명기 25:3에 기존하여 기초적으로 금지된 일의 수를 39개로 한정하였다. (76.5)
 “주요한 일들의 종류는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수이다: 씨뿌리기, 밭갈기, 추수하기, 다발 묵기, 타작하기, 까불기, 곡식 씻기, 빻기, 체질하기, 반죽하기, 빵굽기, 양털깍기, 양털을 씻고 무두질하고 염색하기, 실잣기, 베짜기, 두 개의 고리 만들기, 두 가닥으로 실을 엮어 짜기, 묶기, 풀기, 두 땀으로 꿰매기, 두 땀을 꿰매기 위해 뜯기, 가젤리 양을 사냥하기, 그 양을 도살하거나 가죽을 벗기거나 소금에 절이거나 가죽을 처리하는 일, 그것을 오리거나 자르는 일, 두 글자를 쓰는 일,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는 일, 집 짓는 일, 집을 허무는 일, 불 끄는 일, 불을 붙이는 일, 망치로 때리거나 한 거처에서 다른 곳으로 물건을 옮기는 일 등이다. 이것들이 주요한 일들의 부류들이다. 사십에 하나를 감한 것이다.”(Shab.7:2) (77.1)
 이 목록은 일의 기본적인 범주를 밝히려고 작성한 것이고 이 일들은 다시 무한정으로 세분되거나 부연할 수가 있다. 미쉬나 자체가 이 목록의 여러 것들에 대해 꽤 상세한 논의를 포함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수백 가지의 사례들 가운데서 단지 몇 개를 인용하게 될 것이다. “즙을 내기 위해 과일을 짓눌러 짤 수 없으며 즙이 스스로 나온다해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금지된다.”(Shab.22:l). 짓눌러 짜는 것은 타작의 범주에 속했다. 이것은 안식일에 부주의했기 때문이거나 그 밖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한 개인적인 소득은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안식일에는 나무아래 떨어진 과일을 먹지말아야 한다. 그 과실이 안식일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peshahim 4:8). 안식일에 낳은 달걀을 먹을 수 있는지, 먹을 수 있다면 언제 먹을 수 있는 지에 대한 긴 토론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달걀이 그 전날에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결론은 안식일에 낳은 달걀은 둥지에서 안식일에 꺼내지 말고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손대지 않고 두었다가 안식일이 지난 후에 꺼내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Betzah 1:1; Betzah 2a-4b; Shab.43a). (77.2)
 “망치로 때리는 것”의 범주도 확대되어 일을 마치거나 한 품목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위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예컨대 “누가 안식일에 옷에서 실오라기 하나를 때어 내어도 망치로 때리는 일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을 때만 그렇다.”(Shab.75b). 안식일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범주에서 금지되었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금지되었다(Erub. 104a; Mek.pischa.6) (77.3)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한 금지 규정은 출애굽기 35:2, 3에 분명히 나타나 있으며,미쉬나는 불을 끄지도 못한다는 규정을 추가하였다. 집에 불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어려운 문제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불을 끄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는 목적으로는 허용될 수 있었고 재산을 건지려는 목적으로는 허용될 수 없었다(Mamonides, code, Shabbath 12:3). 그러나 이 규칙의 가혹스러움은 몇 가지 우회적인 방편에 의해 완화되었다. “만일 어떤 이방인이 불을 끄려고 나왔다면 그에게 ‘불을 끄시오’ 라든가 ‘불을 끄지 마시오’ 라든가 하는 말을 전혀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의 안식일 준수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을 끄려고 나온 사람이 유대인 미성년자라면 그에게 불을 끄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안식일 준수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거룩한 책들은 불타지 않도록 꺼낼 수 있으며” 남아 있는 안식일 식사를 위해 충분한 음식과 음료들 그리고 그밖에 꼭 필요한 생필품 등을 꺼내 올 수가 있었다(Shab. 16:6, 1; 117b). (77.4)
 랍비들은 안식일을 명백하게 더럽히는 것들을 포함하여 안식일을 더럽힐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들까지 아보트(Abothl:l)에 있는 원칙에 따라 금지함으로써 안식일의 신성성에 울타리를 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삼았다. 심지어 더 많은 기름을 흘러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등잔을 기울여 그 결과로 불빛을 더 밝게 하는 것도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즉 중대한 범법이 되었다. 그러므로 랍비들은 이러한 일들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벌레를 잡기 위해 옷을 뒤지거나 안식일에 등불 옆에서 책을 읽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Shab. 1:3). 안식일에 벌레를 죽이는 것이 적합한 일인가 하는 것도 다른 근거등에 기초하여 학문적으로 토론되었다. 어떤 랍비는 “만약 안식일에 벌레를 죽이면 낙타를 죽인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Shab. 12a). 그러나 성경의 율법을 어기는 중대한 범법과 단순히 랍비들의 규칙을 어기는 범법의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이루어졌다. (78.1)
 안식일의 규칙들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금지된 노동의 서른 아홉 가지 유형들은 일차적인 것이었다. 노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면서도 안식일에 금지된 항목들에 관한 무크체(Muktzeh)율법들도 있었다. 더러운 물건이나 안식일에 낳은 달걀 같은 것들이 이러한 율법에 해당된다. 이러한 율법에 따라 사람들은 비록 사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도 돈이나 연장을 만져서는 안되었다. 모양으로도 법을 어기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78.2)
 다음으로, 안식일의 쉼에 관한 세부트(Shebuth)율법이 있었다. 이 율법은 그 자체로는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서도 안식일의 휴식이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의 목록은 베트자(Betzah)5:2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무 타기, 수영, 손뼉치기, 허벅지 두드리기, 발구르기 등이 그것들이다. “선택의 행위들”도 금지되었다. 재판하는 자리에 앉는 일, 약혼식, 할리차(halitza; 신 25:9)의 행위, 또는 죽은 형의 아내와 결혼하는 일 등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사형집행, 매장, 결혼식 같은 일은 안식일에 할 수 없었다(Betzah 5:2). 위의 행위들 중 상당수는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일들이다. 안식일에는 글을 쓰는 것이 금지되었다. (78.3)
 안식일 활동의 유죄성 여부는 행동의 의도와 목적, 그 행위로 이익을 얻었느냐의 여부(Shab. 12:l-6). 그리고 행동이 이루어지는 모양이 어떠했느냐에 달렸다(Shab. 22:3-5). 안식일에 의도적인 위반과 비의도적인 위반의 사이에는 구분이 있었다(Terumoth 2:3). “다른 일을 하려다가 실수로 안식일에 금지된 일을 한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토라는 오직 계산된 행위만을 금했기 때문이다”(Sanhedrin 62b), 따라서 흙 바닥에서 의자를 끌다가 “밭고랑”을 만들었을 경우에도 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그 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랍비 히야 바르 아바(Hiyya bar Abba)는 “만약 어떤 사람이 화로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안식일인데도 잊어버려 결국 요리를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만약 그가 모르고 안식일에 음식을 만들었다면 그가 그 음식을 먹어도 좋다. 그러나 만약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먹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차이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랍비는 곧 여러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화로에 냄비를 올려놓은 다음에 “우리가 잊었습니다”라고 하소연하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현인들은 “그들의 조치들을 다시 되돌이켜서 화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잊어버린 그 사람을 처벌하였다”( Shab.38a). 관대함의 위기들이 발생했던 것이다. (78.4)
 안식일에는 우발적이고 서툴게 발생된 일들에 대해서는 때때로 정상이 참작이 되었으나 전문적이고 숙련된 업무는 금지되었다(Shab.46b). 랍비들이 자주 그리고 상당한 열성을 가지고 궤변적인 이론에 깊이 몰두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일부 규칙들이 독단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벌통에서 꿀을 긁어내는 것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떨어지는 빗 방울을 받기위해 그릇을 설치하는 것도 허용하였다(Shebiith 10:7; Betzah 5:1). 화재가 났을 때 성경과 성구함(聖句函)과 그것들을 담고 있는 상자들을 건져낼 수가 있었지만 기도서들은 건져낼 수 없었다(Shab 16:1, 2;Ruth R. 6:4). 방석 위나 항아리 아구에 있는 것을 들어올릴 수는 없었으나 밀어버리거나 닦아 낼 수는 있었다(Shab. 21:2, 3). 사람이 돌을 직접 운반할 수는 없었으나 돌을 손에 쥐고 있는 아이를 안아 올리는 것은 허용되었다(Shab. 21:l). 랍비들은 안식일에 어린아이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너그러웠다(Yebamoth 113b-114a). 안식일에 음식을 따뜻하게 덥힐 수는 없었으나 음식의 온기를 따뜻하게 보온하는 일은 가능했다. 그래서 음식을 보온시키는 방도들이 여러 가지로 마련되었다. 예컨대 찬물을 덥히기 위해 그릇에 찬물을 담아 뜨거운 물 안에 담을 수 있었다(Shab. 3:l-5; 4:1,2). (79.1)
 작업의 전체 행위가 한번에 완결되지 않았을 때는 추가 행동이 허용되었다(Shab.10:2, 5; 20:5). 자체를 마무리하는 일(적시기. 물들이기. 빵굽기 등)은 안식일 전에 마칠만한 시간이 안 되면 시작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둡기 직전의 안식일 전날 저녁에 밭에 물을 댈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밭에 물을 채울 수 있었다”(Shabl:5, 10, ll) (79.2)
 치명적이 아닌 질병이나 불구에 대한 치료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안약은〔금요일 일몰 전에〕눈에 넣을 수 있었으며 상처에 고약도 발라서 하루 종일 치료를 계속시킬 수 있었다”(Shab.22:6:18a). 안식일이 되려면 사흘도 남지 않았을 때는 전쟁에 나가거나 대상(隊商)들과 함께 길을 떠나거나 항해를 떠날 수 없었다(M.T.Semahoth 46a). 안식일에도 팔다리가 고정되어 있으면 시체에 기름을 바를 수 있고 씻을 수도 있었다(Shab. 23:5). 만약 빵 덩어리나 또는 어린아이가 놓여있다면 그것들을 집안에서 옮길 수 있으며 시체도 그것들과 함께 옮길 수 있었다(EccLR.5 10:2).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안식일에 가축과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를 먹일 수 있었다(Shab.24:2-4). (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