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자, 뱀, 출산 그리고 투쟁이라는 공통된 주제들은 우리에게 먼저 있었던 이 예언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서 예견되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남아 있다. 그 두 본문은 여자의 자손이 뱀에게 승리를 거둘 것을 예고한다. (148.1)
 “모든 산 자의 어머니” 하와에 대한 암시를 넘어서 우리는 그 예언을 언약의 여자, 이스라엘에게 적용할 수도 있다. 그 여자는 “아들,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낳을 것이다.(계 12:5). 이 말씀 배후에 우리는 시편 2편 9절을 듣는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시 2:7), 세상의 왕의 도래를 선언하고 있다. 본 구절에 따르면 그 출산은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진다. 그 아이는 보좌로 올려간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 12:5). 몇 절 아래에서는 계시록의 선지자가 이 승리의 이치를 설명한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계 12:10, 11). (148.2)
 뱀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그 아이의 희생을 요구한다. 본 구절은 “어린양의 피”에 대하여 언급한다(계 12:11). 창세기 3장 15절도 동일한 과정을 암시한다. 뱀의 죽음, 그의 머리가 짓밟히는 것은 여자의 후손의 죽음을 가져온다.6 예언의 표현을 보면 뱀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죽음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머리를 짓밟으면서 그는 발꿈치를 물린다. 히브리어로는 머리를 짓밟는 것과 발꿈치를 무는 것을 동일한 동사, 슈프(shuf)로 묘사한다.17)

17) 우리말 성경은 둘 다 “상하다”로 번역한다(역자 주)
(148.3)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의 즉위에는 그분의 죽음이 앞서야 한다. 그분의 생명의 희생은 그 유혹자의 참소를 무효화시킨다. 하나님은 용서할 수 있게 되고 그 나라는 보존된다. 그러나 그 나라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한 나라는 아니다. 순전한 기쁨은 아직 하늘에만 있는 특권이다.(계 12:12). 땅에서는 아직 악이 지배한다. (149.1)
 광야의 전쟁
 예수님의 성육신,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악에 대한 그분의 승리가 실제로 지면을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뱀은 아직 거기 있다. 죽음, 고통 그리고 죄악은 아직도 인간을 공격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계속하여 그분이 그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기를 고대한다. (149.2)
 사실, 계시록은 그들을 출애굽기의 이스라엘과 비교한다. 고대 이스라엘 자손처럼 교회는 광야에서 지내며 하나님의 손으로 양육을 받는다(계 12:6, 14). 독수리의 날개와(계 12:14: 참조 출 19:4) 원수를 삼키는 땅은(계 12:16; 참조 출 15:12) 둘 다 출애굽 사건을 가리킨다. 그 때 이스라엘 자손은 아직 애굽을 떠나 도망치고 있었으며 애굽 군대의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149.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고 약속의 땅으로 향하여 가게 하셨던 것처럼, 그분은 이 백성을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하시고 그들은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한다. 유랑 생활은 힘이 든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을 1,260일 동안 견뎌야 할 것이다(계 12:6). (149.4)
 계시록은 그것의 역사성을 강조하려는 듯 그 기간을 몇 차례 언급한다. 어떤 때는 그것을 날 수로 언급한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과 12장 6절은 “1,260일”이라 한다. 다른 경우에는 달의 수를 사용한다. 요한계시록 11장 2절13장 5절“마흔 두 달”(42 × 30= 1,260일)이라고 한다. 또는 그 기간을 햇수로 묘사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4절(그리고 단 7:2512:7)은 “한 때와 두 때 와 반 때”(360 + [360 × 2] + [360:2] = 1,260)라고 부른다.7 그리고 실제로 교회가 공식적으로 아리우스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된 연대인 기원후 538년부터 프랑스 혁명과 그 철학자들 이 교회의 지상권(至上權)을 위태롭게 한 1798년까지 1,260년의 기간이 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예언은 더 이상 정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히 성취되었다.

  (150.1)
 마지막 전쟁
 계시록에 의하면 1,260일/년을 지나면서 마지막 때로 접어들게 되고, 그것은 왜 뱀이 조급하고 분노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준다(계 12:7). (150.2)
 그는 자신의 지배가 끝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 마지막 때에 뱀은 그의 모든 에너지를 여인의 자손을 대적하여 집중시킬 것이다. 그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창세기 3장 15절의 문맥으로 데려간다. 여자를 영원히 제거할 기회가 왔다. (150.3)
 그러나 그녀는 특별하게도 조용하다. 계시록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이라고 묘사한다. (150.4)
 남은 자손은 그들의 순종과 신실함으로 특징을 삼는다. 그들은 “순종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150.5)
 나아가 그들은 모든 반대를 이해하고 모든 당파들을 초월하는 진리의 마지막 증인들이다. 그것은 유대인의 토라를 그리스도인들의 예수와 함께 인정하며, 은혜와 율법, 사랑과 공의, 창조와 심판 그리고 신약과 구약을 모두 아우르는 진리이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증거”와 결합시킨다(계 12:17). (151.1)
 마지막 남은 자손의 프로필이 여기 있다(계 14:2). 용은 그들을 대항하여 그의 모든 사악 함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 뱀은 그가 바다와 땅에 대하여 가진 이중의 영향력을 보여 주면서,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다(계 13:1). (151.2)
 주(註)
 1) 사 13:8; 호 13:13

 2) 사 51:9; 참조 겔 29:3; 32:2.

 3) Wisdom of solomon 2:24.

 4) Migraoth Gdoloth on Gen. 3:1을 보라.

 5) Charles Baudelaire, Le spleen de Paris, oeuvres complètes, Bibliothèque de la Pléiade(Paris:1961), p. 276.

 6) 여자의 후손을 인격적인 그리스도로 보는 해석은 예부터 있어 왔으며, 이미 기원전 2세기의 70 인역에서도 입증된다. 거기서는 “후손”(씨)이라는 단어를 대신할 때, 일반적으로 “씨”를 가리키는 중성의 아우토(auto) 대신에 남성 단수의 인칭 대명사인 아우토스(autos)를 사용하여 번역 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보는 해석은 유대인 전통과(Jacques B. Doukhan, Messianic Riddle [forthcoming]을 보라) 그리스도교 전통(롬 16:20; 참조 히 2:14 그리고 이레내우스 등의 교부 문헌들)에 공히 나타난다.

 7) Doukhan, Secrets of Daniel, pp. 10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