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제 1부 성경시대에 나타난 안식일과 일요일 제2장—구약성경의 선지서와 역사서에 나타난 안식일
 3. 안식일에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사야 58:13절 최 하단에 있는 이 권면은 안식일에 철저히 침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의 히브리어 단어는 “답베르 다바르”(dabbérádábár)인데 “게으름을 피우는 말”, “잡담” 등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좀 더 원전의 문맥에 가까운 번역은 “네 자신의 말을 하는 것” 이다. 직접적인 문맥에 따르면 개인의 세속적인 업무나 계획을 추구하는 말을 뜻한다. (45.6)
 위에서 제시한 안식일의 세 가지 금지 교훈은 안식일의 여러 가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강조와 더불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안식일에 사람의 일과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길들과 또 그것들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자제함으로써 마음을 비우고자하는 것은 단지 그러한 일상의 추구로 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려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바른 관계를 심화시키는 시간으로 그 날을 이용하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마음에서 안식일이 더 높고 더 적극적이고 더 중요한 날로 기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일상의 일들로 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짐이 아니다. 오히려 안식일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하여 사람을 해방시키는 날이다. (45.7)
 성경의 안식일의 개념 가운데 가장 뜻깊은 것은 “안식일을 기쁜 날이라고 부르라” 하는 사상이다. “즐거운”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단어는 “오넥”(Òneg)이다. 명사 “오넥” 이 안식일과 연결되어 “즐거움, 기쁨”의 뜻을 나타낸 경우는 성경상 이사야 58:13절이 유일하다. 안식일과 상관없이 “오넥” 이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유일한 경우는 이사야 13:22 절이다. 안식일은 우울하거나 슬픈 날이 아니다.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다(사 58:14).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을 때 사용된 꼭 같은 동사 형태가 욥기 22:26절에서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 얼굴을 들 것이라” 했을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욥기 27:10절에서 “그가 어찌하여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고 했을 때도 사용되었다. 시편 37편 4, 11절에서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했을 때도 사용 되었다. 이사야 55:2절과 66:1절에서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 움을 얻으리라”. “젖을 넉넉히 뺀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했을 때도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안식일의 즐거움” 이란 사상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즐거움과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 안에서 얻는 즐거움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영적인 즐거움과 신체적인 즐거움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46.1)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축복들은

   (1)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

   (2) 땅의 높은 곳으로 올림을 받고,

   (3) 그 조상 야곱의 유업으로 양육을 받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의 진정한 준수는 안식일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참된 믿음의 관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예식과 율법을 통해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제도가 아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안식일의 주님은 이 땅의 높은 곳으로 안식일의 준수자들을 들어 올릴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언급들은 모두 하나님 이 출현하여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기시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은유적인 언어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야곱의 유업” 곧 그들의 조상 야곱에게 약속된(창 28:12-17) 땅의 소산의 선물(신 32:13)로 양육되는 축복이 약속 되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성일” 이다. 하나님을 충심으로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일을 존귀히 여김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언약의 약속들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매 안식일마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신앙의 행위에 의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날”(창 2:3)로 들어가는 것이다. (46.2)
 끝으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지키는 안식일에 대하여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사야서의 첫 장에서 월삭과 안식일에 대한 언급을 보았듯이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에서도 월삭과 안식일에 대한 언급을 발견하고 있다. 이사야 66 장은 독자들을 미래의 심판과 종말론적 구원의 장면으로 이끌고 간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라는 토대 위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전개되고 있다.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 66:23). (46.3)
 역사의 저 너머에 있는 새 창조의 나라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발생했던 모든 파괴가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모든 혈육”은 모든 인간을 뜻한다.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은 모든 시대의 남은 자들이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경배할 것이다. 안식일이 첫 창조의 절정이었고 모든 인간을 위한 제도이었던 것처럼(창 2:1-3) 안식일은 새로운 창조에서도 그 절정이 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안식일은 다시 모든 인류를 위한 날이 될 것이다. (47.1)
 이와같이 안식일은 첫 번째의 하늘과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연결시키는 창조주에 의해 고안된 유일한 제도가 될 것이다. 이처럼 안식일은 묵시록적인 종말론과 그 미래의 소망의 강력한 촉매이다. (47.2)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 까지의 선지서에 나타난 안식일.
 1. 예레미야: 예레미야서에도 안식일의 준수에 관한 핵심적인 설교가 들어있다(렘 17:19-27). 예레미야는 조건적인 예언의 성격을 밝히는 하나의 공적인 설교에서 죄 많은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멸망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적인 예언을 안식일에도 연관시켰다. 만약 이스라엘이 더 이상 안식일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한다면 그들에 대한 멸망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렘 7:8~10; 참고 5:30, 31; 6:13-15; 14:14) 그 반역에서 돌이키면(렘 6:20; 7:21, 22, 30, 31; 19:5) 그리고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나르지 않고”(렘 17:21, 22, 24, 27) 안식일에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렘 17:22, 24, 27) 그리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렘 17:22-24) 진심으로 하나님을 청종하면(렘 17:24, 27)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존중하여 그들을 혹독한 멸망으로 부터 구원하신다고 하였다(렘 17:27). 안식일의 준수가 구원의 조건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준수가 구원의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심의 순종은 언약의 표징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순종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바른 삶을 뜻한다.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바르게 사는 것을 뜻한다. (47.3)
 2. 예레미야 애가: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이후의 시기인 6세기의 어느 때 쯤으로 기록 년대가 추정되고 있는 예레미야 애가서는 명확히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는 하나의 성경절(애 2:6)과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또 하나의 성경절(애 1:7)을 포함하고 있다. 애 1:7절을 제임스 왕 홈정역에서는 “원수가 보고 그의 안식일을 비웃었다”고 번역하였다. 라틴어 번역인 불가타 역 성경에서도 꼭 같이 번역되었다. 히브리어 “알-미스바테하”(ál-misbatehá)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 히브리 단어의 원어인 “미스바트”(misbat)를 “중단, 폐허”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에도 이러한 뜻이 반영되어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만약 앞의 뜻 곧 “그의 안식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면 그 구절은 승리한 대적이 안식일의 기념 행위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 곧 이스라엘에서 공공 예배가 종식되었음을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47.4)
 예레미야 애가서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확히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절은 2:6절이다. “성막을 동산의 초막같이 헐어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이 문맥은 야훼의 날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시온이 멸망당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2:1, 21, 22). 여호와께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거룩한 성과 그 성전이 파멸되었다. 그리하여 절기와 주간의 안식일을 지키는 신앙 행위가 종식되었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 선자자의 조건적인 예언의 위협(렘 17:10-27; 22:1-9) 이 성취된 것을 말하는 부분이다. 유다의 멸망과 시온의 파멸은 정치적 지혜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지도자와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다. (48.1)
 3. 에스겔: 에스겔서에서는 여러 장들에 걸처서 안식일이 언급되고 있다(20:12-24; 22:8-26; 23:38; 44:24; 45:17; 46:1-4, 12). 우리는 에스겔서에서 “나의 안식일” 란 표현을 자주 만난다. 제칠일을 야훼의 안식일로 지칭하는 표현은 우리에게 처음 듣는 것이 아니다. 이 지칭이 뜻하는 것은 안식일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사람에게 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20:20; 44:24)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때에 친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사실(창 2:3)과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에서 그렇게 명령된 사실(출 20:8; 신 5:12)을 상기시킨다. 이 명령들은 모두 안식일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미래의 성전에 대한 계시 속에 나타난(겔 46:1-12) 안식일의 축제 예배 사상(겔 46:3)은 이미 안식일의 거룩함의 개념(레 23:1~3)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48.2)
 에스겔 선지자는 안식일의 “표징”의 성격(겔 20:12, 20)을 강조하였다. 안식일의 표징 개념은 출애굽기 31:13절에 긴밀히 연관된 것이다. 안식일을 “나와 너희 사이의” 표징으로 말하는 것은 안식일이 계약의 하나님인 야훼와 그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적 표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참고, 창 17:11; 출 31:13). 안식일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독특한 언약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는” 것이다(겔 20:12, 20).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확인하게 하는 언약의 표징 일 뿐만 아니라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써 그의 언약을 지키시며 그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리는 지식의 표징이기도 하다. (48.3)
 에스겔서에서는 안식일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은 과거의 저주들(겔 20:13, 16, 21, 24) 과 현재의 저주들(겔 22:8; 23:38)이 강력히 표현되고 있다. 20장“죄의 역사” 에는 안식일을 더럽힌 죄 외에 우상 숭배의 죄와 하나님의 다른 율법들을 범한 죄들이 추가되고 있다(13, 16, 21, 24, 26절). 에스겔 22장23장에서도 똑같은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안식일을 더럽힌 결과가 곧 바벨론으로의 포로라는 결론은 빗나간 것이다. 안식일의 모독만이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한 유일한 죄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에스겔은 안식일을 더럽힌 것을 이스라엘이 그의 하나님을 주님과 구원자와 보호자로 인정하지 못한 사실의 주요한 표징으로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더럽힌 것은 이스라엘이 그 언약을 파괴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여러 외적인 표징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49.1)
 우리는 새로운 성전에서 드려질 미래의 예배를 위한 규정들 가운데서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희생제물들을 가져오라는 지시들을 발견한다 (겔 45:17).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정한 절기” 라는 순서는 호세아 2:11절과 같다. 여기서도 기념의 빈도수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순서가 이루어지고 있다. “절기”는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 같은 연례적인 절기를 두고 하는 말이며 월삭은 월례적인 기념일이며 안식일은 주간의 기념일이다. “모든 정한 절기”는 앞에서 언급한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그 밖의 모든 절기들을 포함하여 일컫고 있는 것이다. (49.2)
 구약 성경의 역사서에 나타난 안식일
 구약성경의 역사서에는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한다. 열왕기하와 역대기에서만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49.3)
 열왕기 상, 하에 나타난 안식일: 수넴 여인에 관한 이야기(왕하 4:8-37)에서 기원전 8 세기의 안식일에 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었을 때 수넴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하였다. 그때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였다(왕하 4:23). “월삭과 안식일에” 선지자를 찾는 것이 일상적인 관습이었다는 말이다. 이 때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사람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여행 규정이 따로 없었다. 모세 오경의 안식일 법(출 20:8-11; 신 5:12-15; 출 23:12; 34:21)과 아무런 긴장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바벨론 포로 이전에도 안식일을 안식의 날로 지키고 있었음 이 이 성경절을 통해 알 수 있다. (49.4)
 열왕기하 11:4-12(대하 23:4-11)절에 있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쿠테타에 대한 설명에서도 기원전 9세기 말에 안식일이 규칙적으로 준수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성전 수비대가 의심할 여지없이 일주일에 한번씩 교대되었는데(대상 9:24, 25) 그 날 이 바로 안식일이었다(대상 9:32). 임금이 안식일에 성전을 방문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예배를 위한 방문이었고 사람들이 가득했다(대하 23:1-5). (49.5)
 안식일은 또 아하스 왕과도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며 안식일에 사용되던 구조물이 철거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왕하 16:17, 18). (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