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과 의사 안토니 렌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가 병원 감사에 관한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179.4)
“병원장님, 어떻습니까?” 렌지 의사가 물었다. “괜찮소만, 무슨 일이오?”(180.1)
그 때, 렌지는 나의 X선 사진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면서 방사선과로 좀 내려오라고 했다. (180.2)
렌지 박사는 내 X선 사진을 투시 장치에 걸어 놓고 시꺼먼 점으로 나타난 오른쪽 폐쪽의 이상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온 전신을 휘감아 왔다. 렌지박사가 즉시 뼈 투시검사를 하자고 말해, 나는 동의했다. (180.3)
한 시간쯤 후, 방사선과로 다시 내려와 뼈 투시를 위한 염료(染料)를 먹었다. 이 염료제는 3 시간쯤 후면 전신에 퍼져 조직의 정상 비정상을 검사하는데 큰 도움을 주도록 고안된 것이다. (180.4)
나는 투시기 아래 누워 전능한 하나님과 담판 같은 것을 했다. “하나님, 내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렌지박사가 전자 투시기의 스위치를 켜기 전, 나는 “의사는 병으로 죽는법이 없어”라고 다짐해 보기도했다. (180.5)
투시기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얇은 북소리 같은 똑딱거림을 내기 시작했다. 저 똑딱거림이 빨라지게 된다면, 나의 인생은 확실히 끝장나는 것이었다. (180.6)
렌지박사가 투시기를 내 어깨쪽에 들이댔을 때, 갑자기 북소리가 빨라졌다. 그리고, 머리 부분을 지날 때도 등을 스칠 때도 경보음이 울렸다. (180.7)
투시기가 찍어 낸 사진에도 오른쪽 어깨, 두개골, 등, 갈비뼈, 흉골(胸骨) 등에 암 덩어리가 붙어 있는 것이 완연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현기증이 나면서 왈칵 토할것 같은 메스꺼 움을 느꼈다. (180.8)
이튿날, 방사선과의 검사결과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암전문의인 셀톤 리스커에게 보내졌다. 리스커는 피검사와 간검사 결과를 다시 검토한 후 전립선 암이거나 고환암일 것이라고 말했다. (181.1)
그러나, 나는 그의 주장에 승복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암중에서 가장 악질인 골암인 것이 분명했다. 우선 고환암 균은 전신을 돌기는 하지만 뼈 속에까지 침투하지는 못하는 것이 상례(常例)이고, 전립선암은 백인의 경우 50세 이상에게만 잘 걸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 46세였다. (181.2)
리스커는 조직 검사를 해본 후에 결론을 내자면서 나를 여러가지 말로 위안했다. 그 날 오후, 리스커의 진찰실을 나선 나는 리튼하우 광장 맞은편에 있는 나의 아파트로 걸어 돌아왔다. (181.3)
광장 잔디밭에는 늦봄의 정취가 담뿍 어려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나와 점심을 먹는패거리, 사진을 찍는 쌍쌍,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었다. (181.4)
나는 한 화가가 몇 장의 그림을 그려 놓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두 명의 테니스 플레이어가 공을 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181.5)
얼마냐고 값을 물었다. 그 화가가 얼마라고 말했을 때, 내 머리를 번갯불처럼 때리는 충격이 있었다. “너는 곧 죽게 돼.” 나는 소리 없이 돌아서서 아파트로 왔다. (181.6)
그 후, 나는 외과 과장 존 푸리하트니 전문의 집도로 전립선 제거 수술, 고환 제거 수술을 받았다. 고환과 전립선이 생체 검사 결과 암균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이를 제거하는 것이 더 이상의 암균 전파를 막는 것이었다. (181.7)
수술 전, 뉴저지 주 롱비치 아일랜드로 부모를 방문했다. 그것이 운명이었던지, 나의 아버지도 그 때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차마 어머니에게 내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2-3주 여행을 떠나기때문에 인사하러 왔다고 말했다. (181.8)
수술은 정말 참혹했다. 처음에 오른쏙 고환과 전립선을 잘라내고, 왼쪽 고환까지 제거했다. 여섯번째 갈비는 첫번째 수술 때에 없앴다. (182.1)
나는 감리교 병원장실 아닌 감리교 병원의 한 병동에 갇혀, 의사의 자격을 떠나버린 나 자신을 꼬집으며 한없이 울었다. “하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 하나님! ” 하고 마구 울기만 했다. (182.2)
그 해 여름은 온통 진통제 페르코단으로 지냈다. 페르코단 2알이면 6시간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약기운이 떨어질 때쯤이면, 아픔은 지옥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꼭 그의 전철을 밟으며 죽어 갔다.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