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이 발발하고 1798년에 교황 비오 6세(Vius M)가 프랑스 혁명 정부에 의해 유배됨으로서 역사의 대 전기(轉機)가 이루어졌다. 성경 주석가들은 1,260년/일의 끝이 곧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란 사실과 1,260년/일의 끝이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일임은 갑자기 인지하였다. 1,260일의 끝은 이미 그들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274.1)
 이로써 조지 벨(George Bell), 에드워드 킹(Edward King), 윌리엄 커닝엄(Wiliam Cunminghame), 찰즈 메이틀런드(Charles Maitland), 알렉산더 케이드(Alexander Keith), 에드 워드 빅커스티드(Edward Bickersteth),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 조지 크롤리(George Croly), 매튜 하버슨(Mattew Harbershon), 조셉 울프(Joshep Wolff), 등 수많은 주석가들은 이제 1,260일 예언 기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 이 기간은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의 시대(530년 대)에 시작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시대(1790년 대)에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538년과 1798년을 각각 시작과 끝으로 추정했다5(프랑스 대혁명의 중대한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항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274.2)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로 다니엘 12장 7절“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다 끝났다. 이로써 다니엘의 1,260일 예언 기간은 이해된 것이다. 지식이 증가되었다. “지혜 있는 자”는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단 12:10). 다니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예언이 이제 설명되기에 이른 것이다. 작은 책이 펼쳐지고, 마지막 때가 시작된 것이다. (274.3)
 앞에서 우리가 열거한 여러 주석가들이 1,260일의 예언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을 때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다니엘 8장 14절의 2,300 주야 예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2, 300 주야는 이미 기원 후 9세기에 탁월한 유대 랍비인 벤자민 벤 모세스 나하웬디(Benjamin ben Moses Nahawendi)에 의해 2,300년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이래 여러 저명한 유대 랍비들이 똑같은 주장을 해왔다.6 그리스도교 신학자이며 의사였던 빌라노바의 아놀드(Arnold of Villanova)도 13세기에 2,300일을 2,300년으로 해석했다.7 그러나 그 기산점 을 정확히 설정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 종료(終了)연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74.4)
 그러나 1769년에 독일 개혁교회의 열성적인 목사이던 요한 페트리(Johann Petri)는 다니엘 9장의 70주 예언이 다니엘 8장의 2,300주야 예언을 해석하는 실마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트리는 기원전 450년 대에 이루어진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와 더불어 70주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만약 2,300주야도 기원 전 450년 대에 시작된다. 면 그 끝은 1840년 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론하였다.8 (274.5)
 1787년에는 아일랜드의 한스 우드(Hans Wood)는 페트리의 연구 성과를 알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페트리와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9 1810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유력한 문필가이던 아킬라 브라운(Aguila Brown)이 기원 전 457년~기원 후 1843년으로 2,300일 기간을 잡았는데 후에 1843년을 1844년으로 수정했다.10 (274.6)
 이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이 높은 어네스트 R. 샌딘(Ermest R. Sandeen) 교수는 최근에 발표한 그의 한 연구에서 밝히기를, 1,260 일이 프랑스 대혁명으로 종료되었다는 사실이 2,300일 예언 연구의 열쇠로 작용했다고 하였다. 다니엘 7장의 1,260 일 예언이 성취된 사실에 크게 고무된 성서 예언 연구가들은, 그 다음에 일어날 위대한 사건은 1843~1847년 사이에 끝나게 될 2,300일 예언의 성취일 것이란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11 1,260 일 이 1,260년으로서 성취된 사실은 2,300일도 2,300년이 된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었으며 동시에 다니엘 8장 14절의 2,300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한 성소 예언을 이해하는 열쇠로 작용하였다. (274.7)
 달콤함과 쓰디씀
 다니엘에 소개된 때에 관한 예언들이 한꺼번에 완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다. 1,260년 기간이 종료되고 마지막 때가 시작된 이후에도 이 예언에 대한 이해가 꾸준히 증진되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1,260 일의 끝에 예수님이 재림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2,300 주야의 끝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줄로 기대했다. 이 예언을 면밀히 연구하던 예언학자들은 2,300일의 끝에 관한 추정을 더 세밀히하게 되었으며 드디어는 1844년 10월의 어느 한 날을 2,300일의 끝으로 지정 하기에 이르렀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던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올 때 그들의 마음은 기쁨과 기대감에 설레었다. 많은 사람들은 편지의 말미에 “복된 소망 속에 기다리는 당신의 친구로부터”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당신의 한 10대 소녀는 “나의 일생 중 그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했다. “나의 마음은 기쁜 기대로 벅차 있었다”는 것이다.12 (275.1)
 그러나 예상했던 날에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았다. 기쁨에 찬 기대는 무너졌고 복된 소망은 무산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무참히 깨어졌다. 요한계시록 14장을 논할 때 이에 대한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275.2)
 이 신도들의 경험은 펼친 책을 들고 있는 천사에 관한 요한의 이상에 뚜렷하게 예시 되었다. 오래 전 요한이 이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신도들도 그들의 실생활에서 “펴놓인 작은 책”먹었다. 그들은 다니엘의 길고 긴 때의 예언에 대한 놀라운 새 지식을 맛있게 먹었다. 다니엘 예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그들을 말할 수 없이 행복하게 했다. 실로 그 맛은 “꿀같이 달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않자 그들은 쓰라린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275.3)
 “성전을 척량하라”
 우리는 요한계시록 원전에 장(章)의 구분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 10장은 아무런 끊김 없어 11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이 두 장(章)을 하나로 묶어서 토의하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한은

 (1) 작은 책을 취하여 먹으라는 분부를 받았고, 그 후에,

 (2) 그가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3)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는 분부가 있었다.

 “다시 예언하라”는 분부는, 1844년 10월 실망으로 만사가 와해되어 끝난 것이 아니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삶은 계속될 것이며, 연구하고 가르치며 전도하는 일도 계속될 것이었다. 마지막 때의 시작은 그 때의 막다른 끝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275.4)
 “척량하라”는 명령 즉 “성전” 또는 성소를 살피고 평가하라는 명령은 바로 1,844년에 실망을 경험한 백성들에게 필요한 명령이었다. 다니엘 8장 14절은 2,300 주야의 끝, 바로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말했다. 그들의 혼돈과 실망의 해결은 하늘의 성소 봉사와 그 의미에 대해 좀더 철저한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실망당한 신도들이 곧바로 성소의 의의를 재검토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이 말세에 대해 갖는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 (275.5)
 이들은 이같은 새로운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전파할 채비를 갖추게 되었다. (275.6)
 마지막 때는 얼마나 오래 계속될 것인가?
 여러분들은 필시 마지막 때(말세)와 때의 마지막(막바지)이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란 말을 듣고 다소 어리둥절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말세)는 거의 2세기 전인 1,260 일이 끝나는 1798년 시작되었다. (275.7)
 우리는 먼저 요한의 천사가 때의 마지막(세상의 종말)을 선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강조하여 말하기를 오래 기다려 온 하나님의 비밀(온 세상에 전하는 최후의 복음)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 소리를 내는 “날”에 실현될 것이라고 하였다(계 10: 7).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은 복천년의 기간이 아직도 미래에 속해있다고 하였다. 천사는 세상의 종국을 예언하지 않았다. 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유예의 기간이 끝났다고 선포하지도 않았다. 쓰라린 실망을 맛본 백성들을 상징하는 요한 자신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선교사로서 “다시 예언하라”는 분부를 받았다. (276.1)
 요한의 천사는 세상의 종말이나 유예의 기간의 끝을 선포하지 않았다. 이 천사는 다니엘 12장에서 하늘을 향한 맹세의 주제가 되는 마지막 때(시대)를 선포하였다. 그는 1,260 일의 끝과 2,300일의 끝을 선포하였다. 즉 그는 예언적인 때(시대)의 끝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이처럼 단순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큼 인상적인 것이다. 만일 “마지막 때”(단 12:4)까지 인봉되어야 할 책이 이제 개봉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그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276.2)
 그렇다면 무슨 “마지막 때”가 거의 200 년 이상이나 계속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1,260 일은 1798년에 끝났고 2,300일도 1844 년에 끝났으며, 현재 우리는 1980년 대 후반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2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