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F. A.D. 2세기에 있어서 “주의 날”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이그나시우스의 서한 제 9장
 A.D. 115년경에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위하여 아시아의 로마 속령을 거쳐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이 여행 중에 그는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 앞으로 서한을 써서 당시에 교회를 침투하고 있던 유대주의적 신앙경향과 그노시스적(Gnostic) 신앙경향에 대하여 경계하고 교훈하였다.18 (335.4)
 이그나티우스의 이른바 “주의 날”이란 표현은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서한의 제 9장에 나타나고 있다. 희랍어 본문은 “메에케티 삽바티존테스 알라 카타 쿠리아케엔 조온테스”(méketi sabbatizontes alla kata kuriakén zéntes)—“더 이상 유대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no Longer sabbatizing) 주님의 것에 따라 살아가는”19 이다. 그런데 이 본문에도 “날”이라는 희랍어 단어 “헤에메란”(hémeran:hémera의 대격)이란 낱말이 없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335.5)
 그러나 사본의 증거는 “생활” 또는 “생명”의 뜻인 희랍어 단어 조오에엔(zóén)을 포함하는 긴 희랍어 문장일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조오에엔”이란 희랍어 단어가 근대의 편집자들에 의해 생략되어 왔다. (335.6)
 현존하는 사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본문은 “메에케티 삽바티존테스 알라 카타 쿠리아케 엔 조오에 엔 조온테스”(méketi sabbatizontes alla kata kuriakén zóen zóntes)로 되어있다.20 이 표현의 일반적인 번역은 “더 이상 유대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sabbatizing) 않고 주님의 생명을 좇아 살아가는”이다. (336.1)
 문제의 본문은 주님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나 생활”로 읽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전체 문맥에 대한 고려에서 나오고 있다. 이그나티우스가 “더 이상 유대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sabbatiging) 않고 주님의 것(Lord´s)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한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8:1, 2에서 그는 주장하기를 “만약 우리가 아직도 유대교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거룩한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이라 하였다. 9:1, 2에서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만약 옛날 방식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나왔다면 더 이상 유대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우리의 생활(생명)이 그와 그의 죽음을 통해 일어나는바 주님의 생활(생명)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선지자들 조차도 성령 안에서 (주님의)제자들이 되어 그를 그들의 스승으로 바라보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분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336.2)
 4세기에 이그나티우스의 개찬자가 이 구절 안에서 두개의 다른 날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충돌 요소를 보지 않고 안식일과 일요일을 모두 인정하였다는 것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그는 「마그네아인들에게 보내는 서한」의 제 9장을 개찬하여 쓸 때 “주의 날”을 지키는 “영적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마땅하다고 했다.21 (336.3)
 저명한 교부 신학자 로버트 에이. 크라프트(Robert A. Kraft)는 이그나티우스의 2세기 초의 원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래서 만약 옛날의 관습대로 살던 사람들〔즉 구약의 선지자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나와서 더 이상 유대인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sabbatizing) 않고 그를 통하고 그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생활)을 솟아오르게 하는 생명(생활)인 주님의 생명(생활)에 일치하여 살아가는∙∙∙.”22 (336.4)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내는 플리니우스의 서한
 A.D. 112년경에 소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비시니아(Bithynia) 지방의 총독으로 부임했던 연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는 그 지방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취급하는 문제에 대하여 로마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문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심문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이 행한 모든 과오와 죄들을 문책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날(스타토 디에: stato die)에 해뜨기 전에 모이는 습관이 있는데 이 때 그들은 신(神)에게 하는 것 같이 그리스도에게 가사를 번갈아가면서 찬미를 부르고 어떤 악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둑질이나 간음이나 거짓말같은 것을 하지 않기로 엄숙한 맹세로서 자신들을 단속하였다”는 것이다.23 (336.5)
 그런데 어떤 “특정한 날”(stato die)이 “주의 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분문에서 “주의 날”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의 총독에게는 “주의 날”이란 낱말이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을 의미했다. 우리가 플리니우스의 이 구절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현재의 여러 저술가들이 플리니우스의 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특정한 날”이라는 이 문제의 표현을 “주의 날”이 일요일 뜻한다는 주장의 유력한 증거로 내세워 왔기 때문이다. (337.1)
 게라티는 이 문제의 구절에 관한 토론에서 지적하기를 A.D. 132-135년에 치러진 로마와 유대의 전쟁 때까지는 일 주일 단위로 예배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의 관습이 로마인들의 눈에 “꼭 범죄적인 일로 보여야할 필요가 없었으나” 오히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연례적인 철야 예배야 말로 로마인들에게 범죄적 경계심을 품게 할 수가 있었다고 하였다. “로마인들은 이미 일주일 단위로 특정한 날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안식일 준수 관습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또 이러한 관습을 허용했다. 따라서 태양 숭배자들이 매 일요일에 태양을 숭배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허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제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일년에 한번씩:역자 추가) 특정한 날에 해 뜨기 전에(stato die ante Lucem) 모여 로마황제가 아닌 특정한 사람을 신격시하여 예배하는 신생 종파의 활동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로마인들에게 이 신생 종파의 이러한 활동은 충분히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보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와같은 로마인들의 반응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시간과 예배의 단순함 등은 부활절의 철야 예배를 가르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4 (337.2)
 2세기 증거들의 요약
 요약하건대 “주의 날”이 곧 주간의 일요일을 지칭한다는 것을 증거하는 2세기의 자료는 2세기 말까지의 교부들의 문헌에 나타나고 있지 않다. 즉 2세기 말의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서 나온 언급이 최초의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에 “주의 날”이 주간의 일요일이 아닌 연례적인 부활절 일요일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로마 속령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이 지방의 교회들은 2세기 말까지 14일 교도(Quartodeciman)의 전통을 지켰기 때문이다.25 (337.3)
 이 지역에서 편찬된 「요한의 행적」이라는 경외서에 한 차례 언급이 나오고 있으나 이것은 토요일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D. 130년에 이루어진 알렉산드리아의 바르나바스의 글과 150년경에 이루어진 로마의 유스티노스 마르튀르의 글은 주간의 일요일이 “주의 날”로 알려졌는지의 여부를 증거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 현존하는 그들의 글에서는 그들이 “주의 날”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는 증거도 또 사용했을 것이란 가능성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337.4)
 끝으로 이른바 “주의 날”이란 표현을 언급한 최초의 자료로 일컬어져 온 세개의 문서인 「디다케」(Didache)와 이그나티우스의 서한과 플리니우스의 서한 등에서도 직접 그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문맥상 그 언급들은 주간의 일요일보다는 부활절 일요일 등 다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3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