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는 즉시 일만여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에테메난키(Etemenanki)의 잔해를 정리하도록 하였다. 100 미터 높이의 “바벨탑”을 다시 세우고자 함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들에게 지불된 설형 문자의 노임 영수증이 발굴되었다. 알렉산더는 지난날 바벨론이 누렸던 종교 중심지로서의 영광을 회복시키려 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의 해군(海軍)기지로, 또 인도 등지와의 해상 교역을 위한 중심 기지로 발전시키려 했다. 그는 홍해와 나일 강 사이에 운하를 개척하여, 바벨론을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만들 생각이었다. 바벨론에 1천여 척의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선박을 제조하는 일은 페니키아에 주문했다. 일단 제조된 선박은 부품 혹은 부분 조립의 형태로 육로를 통해 유프라테스 강까지 운반하여, 조립을 완성한 후 강에 진수시킬 계획이었다. (83.3)
 이렇게 되면, 예레미야를 통해 “메마른 돌 무더기들이 되고 사람이 거하지 않는 광야가 되리라”고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되는가? (83.4)
 아! 그러나, 알렉산더조차도 하나님의 예언을 바꿀 수 없었다! 이 젊은 황제는 질병에 걸려 동년인 기원전 323년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는 32세의 나이로 세계를 정복했지만, 하나님께서 황폐한 땅으로 예언한 도시를 재건할 수는 없었다. (83.5)
 알렉 산더의 장군들이 그의 제국을 나누어 가졌다. 장군 중의 하나인 셀루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는 바벨론 북방 185 킬로미터(115 마일) 지점의 오피스(Opis) 시를 재건하여 수도로 삼고 셀루키아(Seleucia)라 이름하였다. 이 도시를 재건할 때 사용된 벽돌등 건축 자재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운반되었는데, 이 바벨론의 황폐는 이로써 더욱 가속화되었다. (83.6)
 다시 300 년이 지난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서, 바벨론은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된 그대로 음산하고 고적한 유령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83.7)
 중세 시대에는 댐들과 운하들이 거의 파괴되어 관개 시설이 완전히 사용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문자 그대로 바벨론의 물이 마르게 되었다. 스라야는 “영영히 거민이 없으며 대대에 거할 자가 없으리라”고 낭독했다(렘 50:39). (83.8)
 필자는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에 가보았다. 나는 그 성의 견고한 성문들과 유명한 가공원(架公園一hanging gardens), 그리고 가로 17 미터 세로 53 미터(56X174 피트)가 되는 연회실(벨사살이 수천의 귀인들과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라고 믿어짐)의 폐허들을 바라 보았다. 바벨론은 메마르고 음산하며, 죽은 자의 도시처럼 적막하였다. (83.9)
 이 도시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이 폐허 더미는 성서의 예언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피 끓는 결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방에 흩어진 그 수많은 벽돌들 하나하나가 사람 대신 외치는 돌이 되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기별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84.1)
 실제상의 바벨론에 관한 예언들은 현재까지 놀라울 만큼 정확히 성취되었다. 이제 상징적인 바벨론에 대한 예언들도 꼭 같이 성취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일부의 예언들도 결국 완전히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이 확고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애 중에 그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을 우리와 우리의 가족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 (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