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3 장 신적 권위를 직접 드러내신 기적들 기적 3 ►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야고보, 요한, 이리 와서 좀 도와주게.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진다네.” (156.4)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었다. 그들이 와서 힘을 합쳐 함께 그물을 끌어 올려 두배에 실으니 고기가 너무나 많아 모두 만선(滿船)이 됐으며 배는 무게 때문에 물에 잠길 정도가 됐다.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뱃길을 따라 뭍으로 향하니 노래가 절로 나왔으며 정말로 신명이 났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기적을 몸소 체험한 후 불현듯 자신이 교만하여 잠시 주님을 불신했던 게 떠올라 너무나 부끄러웠다. 우주 만물을 주님이 지배하고 계심을 확인했다. 수십년간 같은 장소에서 고기를 잡았지만 딱 한 번 그물을 내려 그만큼 많이 잡은 적은 없었다. 그분과 비교할때 자신은 죄인이요 너무나 무가치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베드로는 그만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크게 부르짖고 말았다. (156.5)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156.6)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156.7)
 참으로 비전을 주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그들이 해안에 도착했을 때에 주님은 다른 세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156.8)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157.1)
 “예, 기꺼이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157.2)
 놀라운 기적을 목도(目暗)한 그들은 배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 (157.3)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 기적을 행하셨을까? 물론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기적은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를 영원한 제자로 삼아 사람 낚는 어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 이 기적을 통해 당신이 저들의 일상 생애의 필요를 능히 채워 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셨다(시대의 소망 246, 249). 결국 기적을 목격한 그들은 배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 낚는 어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157.4)
 둘째, 비록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여 행동에 옮길 때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이 배를 사용하자고 요구했을 때 그들은 고기잡이도 안된 마당에 배까지 빌려 달라고 하니 화가 날 만한 일이었다. 그것도 잠을 자야하는 시간에 배를 몰고 나가 일을 해야 하니 마음이 언짢았다. 거기다가 고기들이 물 밑으로 숨어 버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고기까지 잡으라고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 있어도, 또는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적합한 밤이 지나고 시기가 적절치 않은 대낮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경험과 지식과 기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했을 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는 기적을 체험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시기가 지났다느니 내 경험으로 봐서 안될 것이라느니 그런 핑계를 대지 말고 환경을 초월하여 “주님의 허락과 말씀에 의지해서 하겠나이다”하고 순종할 때 제자들처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157.5)
 셋째, 자아를 불신하고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됨과 무가치함을 깨달은 것을 본 후에 당신의 사업에 부르신다. 인간의 꾀나 기술을 의지하지 않고 당신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사야를 부르신 것과 마찬기지로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을 때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가 자신이 깨어져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부르짖었을 때에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시며 주님께서 그를 부르셨다. 화잇 부인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첫째로 배워야 하는 일은 자아를 불신하는 교훈이다”(시대의 소망 250)라고 했다. (157.6)
 나는 오늘 이 기적에서 절망에 빠져 고통중에 있는 자를 도와주시기 위해 직접 찾아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무한한 감명을 받는다. 그분은 밤새도록 결과 없는 수고로 실의에 빠져 허둥대던 제자들을 새벽 미명에 찾아오셨다. 오늘날도 삶에 지쳐 실의 속에 밤새도록 고민하며 뜬눈으로 지새우는 자들에게 그분은 바로 새벽 미명에 도와주시기 위해 직접 찾아오실 것이다. 제자들처럼 삶의 현장에서 주님 없이 홀로 바동거리다가 낭패와 실의에 빠진다 할지라도 동정심 많은 주님께서는 도와주시기 위해 여전히 찾아오실 것이다. (1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