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3 장 신적 권위를 직접 드러내신 기적들 기적 2 ►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아, 이게 웬일인가! 그것은 기가 막히게 맛있는 진한 포도즙이 아닌가! 물에 질적(質的) 변화가 일어나 순수한 포도즙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화잇 부인은 이 때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는 순수한 포도즙이었다(시대의 소망 1권 191)고 했다. 예수님께서 성경과 위배되는 술을 만드실 리가 만무하다(잠 20:1; 23:29-32). 그 당시 포도즙은 처음에 짤 때 순수한 포도즙이었지만 오늘날처럼 보관하는 기술이 없어 하루 이틀 지나면서 포도주로 변해 갔다. 예수님께서 일으킨 기적을 모르는 연회장(宴會長)은 포도즙이 너무나 맛있어 신랑을 불러 칭찬 했다. (149.8)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149.9)
 “예,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149.10)
 영문도 모르는 신랑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149.11)
 오늘날 우리가 시장에 가서 과일 한 상자를 사서 보면 십중팔구(十中八九) 위에는 굵고 온전한 것이지만 밑에는 좀 작고 혹은 썩은 게 더러 나온다. 예수님 당시에 살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진한 포도주를, 취한 후에는 낮은 것을 대접했던 것을 보니 동양의 관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150.1)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영광을 들어내셨고, 제자들은 초인간적 위대한 능력의 표적을 목격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백했다(요 2:11). (150.2)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야 그분은 진실로 메시야이심이 틀림없어.” (150.3)
 “맞아, 나도그렇게 생각한다네.” (150.4)
 며칠 전 나다나엘을 부르실 때에 예수님은 당신의 전지성(全知性)을 나타내셨으며, 오늘 행한 첫 번째 기적에서는 전능성(全能性)을 나타내셨다. (150.5)
 학자들 간에는 성경상 가나의 위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통상 오늘날의 “카파르 카나”(Kefr Kenna)와 동일시 한다. 이는 성경의 가나 혼인 잔치를 목격한 자로부터 구전(日傳)으로 전승(傳承)되어 온 바로 그 자리에 1879년 가톨릭 소속의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기념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나는 가나 동네 중앙에 있는 그 교회에 들어가 봤다. 안내서에 자기들 교회가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장소라고 명시돼 있었고, 교회가 3세기경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위해 있던 회당 위에 세워진 것을 증명이나 하듯 예배당 안 모자이크 바닥에 주후 3세기경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가 기록돼 있었으며, 벽에는 비아 돌로로사의 14장면이 담긴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예배당 지하에 내려가 보니 가나 혼인 잔치에 쓰여졌던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요 2:6)의 진품(眞品)이라고 주장되는 것이 전시돼 있었고 포도즙 짜던 흔적도 거기에 있었다. 사실 진품의 항아리는 현재 독일의 콜로뉴 성당에 옮겨져 있으며 가나에 것은 단지 모사품(模寫品)일 뿐이다. 그 항아리는 몸체가 풍만한 경상도식 장독도 아니고 곡선이 유연한 전라도 장독도, 더구나 늘씬한 서울식 장독도 아니며 단지 큰 찻잔같이 참하고 아담하게 생긴 하나의 항아리다. 역사가 조세푸스는 이 항아리는 8과 3/4 갈론이었다고 했다(Antiquities VIII. 2. 9). 아무튼 오늘날 그 항아리는 찾아오는 순례객들에게 물로 포도즙을 만드신 주님의 기적을 무언(無言)으로 전하고 있다. (150.6)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즙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을까?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들을 메시야로 믿고 신뢰하는 어머니의 믿음에 영예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당혹스런 처지에 빠졌던 모친 마리아는 아들이 분명히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었으므로 어려움을 호소했고 그 믿음 때문에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렀던 것이다. 예수님은 아직 자신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신을 신뢰하는 어머니의 믿음에 영예를 돌리기 위해 기적을 행하여 그녀가 부탁한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당신을 구세주로 믿고 신뢰하는 자들이 난관에 봉착하여 간구할 때에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당황하던 마리아를 구해 준 것처럼 오늘날도 곤경에서 헤어나도록 기적을 베풀어 도와주실 것이다. (151.1)
 둘째, 주님께서 첫 이적을 행하신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편견에 대항하는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요 2:11). 공생애를 이적으로 시작하신 것이다. (151.2)
 셋째, 딱한 처지에 빠진 주인을 도와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셨다. 포도즙이 다 떨어져 없게 되면 잔칫집으로서 수치와 모욕(侮辱)을 당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난처해하는 그 소박한 가정을 경멸과 수치를 당하는 일에서 구하기 위해 물로 향기로운 포도즙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순전히 주님의 부드러운 동정심 때문이었다. 오늘날도 만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그와 비슷한 당혹스런 입장에 빠질 때에 주님에게 구하면 분명히 기적으로 도와주실 것이다. 오늘날 허다한 사람들이 만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발견하면 그를 도와 해결해 주려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떠벌려 화제로 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절망케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잔칫집 주인의 약점을 도와 해결해 주신 것이다. (151.3)
 넷째, 주님께서는 혼인 예식을 축복하고 축하 잔치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다. 그 당시에는 혼인을 정죄하는 금욕주의자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쿰란 동굴 주위에 살았던 단체는 그릇된 종말 사상에 젖어 아예 혼인을 금하고 집단 생활을 했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혼인을 못하게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당신이 혼인 잔치에 친히 참석하심으로 인간의 행복에 관심을 보이셨으며(시대의 소망, 144) 그 자리를 거룩케 하셨다. 그리고 혼인 잔치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기적까지 행하셨던 것이다. 주님의 행위는 그 당시의 금욕주의에 일격을 가한 격이 됐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데 관심이 있으셨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것과 하객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는 아주 좋은 일인 것이다. (152.1)
 우리는 오늘의 기적에서 놀라운 주님의 보증을 찾을 수 있다. 즐거운 혼인 잔치의 초청에 응하사 제자들과 함께 참석하여 축하해 주신 주님의 행보에서 오늘날도 인간의 대소사(大小事)에 직접 동참하시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하실 주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로 향기 나는 포도즙을 만들어서 곤궁에 처한 잔칫집 주인과 당황하는 당신의 어머니를 도와 문제를 해결해 주신 사건은 오늘날도 동정심 많은 주님께서 우리의 곤궁한 삶의 현장 속에 오셔서 모든 난처한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보증을 주신 것이다. 물에 질적 변화를 일으켜 순수한 포도즙을 만드신 기적 사건에서 주님께서 오늘날도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켜 불완전한 품성을 완전한 품성으로 바꾸어 주시는 기적을 행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