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는 먼 길 온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마음에는 자기 집에서 사경을 헤매는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의 생명에 조바심이 일어났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경각(煩刻)을 다투는 아들의 생명이 혹 끝나지 않을까 염려됐다. 사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90.3)
“애라 이곳까지 왔으니 한 번 요청이나 해봐야지. 만일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난 그를 메시야로 믿지 않을 거야”(90.4)
조심스런 탐색을 끝낸 신하는 믿기 전에 무엇이 성취되기를 원하는, 그런 조건적 믿음을 가지고 둘러싼 군중을 뚫고 주님께 나갔다. 정부 고관의 옷차림에 사람들은 길을 비켜 준 것이다. 예수님 앞에 당도한 신하는 청을 했다. (90.5)
“주님이여, 가버나움에 내려 오셔서 거의 죽게 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90.6)
이것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께 한 제일 첫 번째 치유의 요구이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의 먹구름이 덮여 있는 신하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셨다. 묘한 이 질감과 부조화를 감지하셨다. 신하에게 조건적 믿음, 곧 의심하는 믿음이 없어지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질 때까지는 아무런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가시는 것에 Yes나 No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꾸짖기만 하셨다. (90.7)
주님은 이제 신뢰하는 믿음으로 아들을 위해 간원하는 신하의 마음을 읽으셨다. 전적으로 신뢰하는 간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아들을 향한 애절한 사랑과 동정을 보신 주님께서는 신하에게 치유를 보증하는 간단한 선포를 하셨다. (91.4)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91.5)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평안해지더니 아들이 치유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신하는 머리 숙여 예수님께 거듭 사례했다. (91.6)
“주님 감사합니다.”(91.7)
“제 아들을살려 주셨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91.8)
신하는 아무런 증거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현실로 믿고 자기의 아들이 치유됐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처음에는 보고 믿으려고 했으나 회개하고 이제는 믿음으로 보게 됐다. 그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충만했다. 그것이 바로 산 믿음이다. 아들의 병이 치유돼 살았다는 것을 믿었을 때에 신하는 너무나 기뻤다. 이제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하룻밤 가나에서 묵기로 하고 종들에게 일렀다. (91.9)
“천하에 위대한 메시야를 만났으니 좀더 교훈을 얻어야겠어. 내 아들은 이미 살았으니 내일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자.”(91.10)
아들의 병이 치유돼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거나 눈으로 확인함이 없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병이 물러간 것을 그대로 믿고 하룻밤 지체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다: (9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