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지도자
 3장은 예수님께 “너의 생각들을 고정시키라”는 초청과 함께 시작한다. 설교의 끝 부분(12:1-3)에서 바울은 유사한 호소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하기를 촉구하고 있는가? (90.1)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에 대하여 말한다고 하는 것은 신학적 문제들과 논란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된 신비들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이 한 개인이 어떻게 참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그의 인성의 복잡․미묘함을 탐구한다—그의 인성이 우리의 것과 같았는가? 그의 인성이 아담의 타락 전인가 후인가? (90.2)
 이제, 그러한 질문은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의 말로써 각 사람에게 도전하면서 그리스도인 믿음의 중앙에 서 계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모든 것은 우리가 주는 답변에 달려 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그를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은 주와 구세주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90.3)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논의들과 불일치들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신성을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그가 죄지으실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들에게 이의(異議)를 제기하기 위하여 확고한 교리적 기초를 수립하여야 한다. (90.4)
 그러나 예수께서는 독특한 분이시다. 그를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탐사하는 셈인데, 우리의 이해력은 필연적으로 미치지 못한다. 엘렌 화잇이 제시하였듯이, 우리가 거룩한 땅을 걷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을 벗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The Youth's Instructor, Oct. 13, 1898). 우리는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순수한 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사람이 되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한편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다른 편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90.5)
 예수님께 “우리의 생각들을 고정시키라”는 초청을 하면서 히브리서는 그러한 추측을 고무시키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히브리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인 행위의 모본으로 생각하도록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제2장과 전 책을 통하여 예수님의 위격과 사업에 대한 논의가 다른 방향에서 행해지고 있다. 우리는 그가 행하신 것을 행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가 행하신 것을 신뢰하여야 한다. (91.1)
 그러므로 3:1에서 저자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그의 사도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과 연결시킨다. 믿음에 대한 일반적인 노래가 말해 주듯이, 우리는 세상에서 돌이켜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돌려 그가 얻으신 승리를 명상해야 한다. (91.2)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히브리서의 대주지(大主旨)를 형성하며 우리는 이어지는 장들에서 그것을 자세히 연구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이 호칭은 전 신약을 통하여 오직 여기에만 등장한다. 이 단어 자체의 의미는 선교의 관심을 제시하는 “보냄을 받은 자”이다. 바로 이것이 히브리서 1-2장에서 그려 온 것이다. 아들의 선재(先在), 그가 사람이 되셔서 천사들보다 낮아져 높임을 받은 위치가 잠시 끊겼을 때, 그리고 그가 높임을 받으셨을 때, 곧 십자가 후—“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을 때. 예수께서는 거룩하신 기별자,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으신 자이셨다. 그는 하나님의 사도이셨다. (91.3)
 성경의 이 곳에서만 예수님을 “사도”라 부르고 있을지라도, 그 사상은 전 신약을 통하여 나타난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자주 예수님을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으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91.4)
 그러므로 3:1에서 사도는 지나간 이전의 것을 요약하며, 제사장은 앞으로 있을 흥미있는 신학적 윤곽을 함께 모으는 것이다. (91.5)
 첫째,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충성에 대한 논의를 보게 된다. 바울은 예수님과 모세를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핵심을 찔러 간다—후자는 구약의 탁월한 지도자이며, 전자는 신약 최고의 인물이시다. (91.6)
 하나님의 백성의 이러한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뛰어난 특성을 지니고 있다-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 더 위대하시다: (92.1)
예수 모세
1. 아들 1. 종
2. “집”의 건축자(“집”을 다스리는) 2. “집”의 부분(“집” 안에 있는)
3. 구약 계시의 성취 3. 다가오는 계시에 대한 증인
(92.2)
 3:2-6a에서 우리는 역사의 두 기간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출애굽과 그리스도 아래에서의 신(新)출애굽. 우리는 그의 의무를 아낌없이 수행한 탁월한 인물인 모세를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가 하나의 상징이었고 그가 증거하였던 훨씬 더 탁월하신 한 분을 보게 된다. (92.3)
 모세는 히브리서의 논란에서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를 믿음의 영웅들 중에서와(11:23-29), 12:18-24의 현저한 구절에서도 그를 발견한다. 그러나 모세는 히브리서의 신학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근본적으로 옛 성소 제도와 희생 제물의 대표자로 서 있다—시내 산에서 주어진—그리고 히브리서는 계속적으로 새 것의 탁월성을 강조할 것이다. (92.4)
 3:2-6a은 하나님이 모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민수기 12:7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는 나의 온 에 충성됨이니라.” 은 모세의 시대이든 기독교 시대이든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나타낸다. (92.5)
 우리는 3:1-6a의 핵심인 예수님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정절과 임무에 대한 헌신으로써 인도했다면, 우리의 인도자(Leader)께서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셨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한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을 예수님 안에 모시고 있음을 안다. 그것은 확증의 말씀들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의 인간 경험들에서 흔들림 없는 정절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유혹을 받으시고, 시험을 받으시며, 고난 당하시고 죽으신 그가 결코 굴복치 않으셨으며, 결코 넘어지지 않으셨으며,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 되셨다. (92.6)
 충성—그리스도인의 확신은 그것에 달려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둘 수 있다. 누군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분. 누군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13:8). (93.1)
 예수, 그분은 우리의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시다. (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