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창조를 기뻐함.
 주(週) 1회의 막간.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안식일을 기념하는 세번째의 방식이 가능해진다. 이 세번째 방식은 예배의 경험 속에, 우리의 생활 속에, 다른 사람들의 생활 속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 속에 발견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완전하심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안식일은 우리들에게 이 세계를 남용하지 말고 그 아름다움을 즐거워하라고 권유한다. 안식일은 우리의 시선을 이 세계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죄와 고통의 구름 넘어로 향하게 하여 최초의 인간 부부가 누렸던 놀람과 기쁨과 찬탄을 회복하도록 권유한다. (64.1)
 하비 콕스(Harvey Cox)는 오늘날 수천의 서구인들이 동양의 참선(參禪)으로 마음을 기우리고 있는 까닭이 “동양의 참선이 한 때 안식일 준수에 의하여 얻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얻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등한 어떤 것을 제공해 주고 있기”23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물의 선하심을 명상하고 관찰하고 즐길 배경과 타당한 이유를 제공한다면 왜 서양 사람들이 이상스럽고 비 성서적인 세계관에 기초된 동양의 참선에 주의를 돌리겠는가? (64.2)
 동양의 참선은 이 세계의 슬픈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기본 사상위에 생활의 전체를 이끌어가도록 사람들을 권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안식일은 이 소란스러운 세계로부터의 영구적인 도피를 권하지 않고 단지 질서와 순결과 사랑의 하늘 나라의 섬광을 붙잡기 위하여 주(週) 1 회의 막간을 권유한다. 이렇게 새로워진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내세를 고대할 수 있는 소망과 신앙을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을 준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64.3)
 영원의 창문. 안식일은 우리들에게 에덴의 기쁨을 다소나마 되찾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안식일은 영원의 창문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유대一기독교 전통에서 안식일은 기쁨과 환희의 날로 여겨져 왔다. 이사야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 그리고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날”이라고 부른다(사 58:13, 14).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축제 분위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위한 특별한 의복과 음식과 또 이에 상응하는 마음의 자세를 준비하였다. 금식은 결코 용납되지 않으며 심지어 칠일간의 애곡(哀哭)기간도 중단되어야 한다.24 (64.4)
 이와 유사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기쁨을 경험했는가?25 누가복음의 기자는 우리에게 권하기를 그리스도의 안식일 봉사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다(눅 13:17)고 하였다. 엘 렌 화잇(EDen White)은 부모들에게 권고하기를 성의를 다해서 “안식일을 주일(週日) 중 가장 기쁜 날로 만들고 자녀들이 그 날을 기쁜 날, 날중의 날, 주님의 거룩하고 영예로운 날로 여기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26 (64.5)
 한 교회의 교인이 다른 교회의 교인에 의하여 경험되는 기쁨과 친교와 역설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안식일이 가져다 주는 해방과 평화와 평온의 감정은 이것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Abraham Joshua Hesche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시간을 왕국이라고 한다면 제칠일은 그 왕국 속에 있는 궁전과 같다. 그것은 한날이 아니라 하나의 분위기이다. 그것은 의식(意識)의 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다른 기후(氣候)이다. 그 날은 모든 사물이 어딘가 변해 있는 둣이 보이는 날이다. 첫번째로 알게 되는 사실은 안식일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식일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가 옳은지 틀린지, 또는 우리의 감정이 고상한지 않은지를 알지 못할 수 있으나 우리의 조력이나 인지(認志)를 받지 않고도 대지(大地)위로 넘치는 샘물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날의 공기(空氣) 만큼은 알게 된다.”27 (64.6)
 

안식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느 정도로나마 에덴의 기쁨을 되찾을 수 있다. 안식일은 우리들에게 영원의 창문을 통하여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65.1)
 왜 안식일에는 만물이 더 아름답고 유쾌하게 되는 것 일까? 왜 말트비 D. 바브콕크(Maltbie D. Babcock)가 말했듯이 “만물이 노래를 부르며 하늘의 음악이 나의 주위를 둘러싸서 울려퍼지는 것일까?” 어찌하여 안식일에는 하늘의 은혜가 더 풍족해 보이고 사람들은 더 친절해 보이며 음식물은 더욱 맛있게 여겨지고 숙녀들과 신사들과 어린이들은 안밖으로 모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안식일이 단순히 시간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하나님과 사람과 사물을 감지하여 즐기는 영적인 능력까지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완전한 창조주이며 구속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자들의 신앙을 새롭게 해 줌으로써 신자들은 단지 사물을 있는 그대로서만 지각(知覺)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상태로서의 사물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회복될 상태로서의 사물을 지각(知覺)하게 되는 것이다. (66.1)
 이것은 마치 평면적인 그림을 3차원척인 그림으로 보이게 하는 한쌍의 안경을 24시간 동안 끼고 지내는 것과 같다 하겠다.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 아니라 우울한 날로 느끼는 사람은 어쩌다가 안식일의 시간을 지키게는 되었지만 안식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는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완전한 창조주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새롭게 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구세주로 하여금 그들의 쉼 없는 생활 속에 구세주의 안식을 가져다주도록 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안식일을 축복이 아니라 무거운 짐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기쁜 날이 아니라 우울한 날로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사물에 대한 기쁜 소식의 날이 아니라 해서는 안되는 우울한 날로,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사물에 대한 기쁜 소식의 날이 아니라 해서는 안되는 것들만을 강조하는 나쁜 소식의 날로 여기게 되었다. (66.2)
 결 론
 안식일의 주님을 사랑하고 안식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은 기쁨이 충만한 기념일이다. 그날은 이 세계와 자신의 개인생활속에 이룩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을 기리는 날이다. 금요일 저녁이 다가올 때 기독교인은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안식일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마음은 이제 새로운 안식일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그날, 지난 한주일 동안의 업적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그날, 완전한 창조주시며 구세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심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한날, 시편의 기자처럼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시 92:4~5. 안식일 찬송)라는 안식일 찬송을 부르는 그날,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의 기쁜 소식을 기릴 그날이 당도했다는 생각으로 기쁨이 충만케되는 것이다. (66.3)
 참고문헌
 17. Quoted in Abraham Joshua Heschel, The Sabbath: Its Meaning for Modern Man, 1952, p. 32.

 18. Pacifico Massi, La Domenica, 1967, p. 368.

 19. A good treatment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Apostles’ Creed is found in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1959, II, pp. 528-537; idem, Creeds of Christendom, 1884, I, pp. 3-42; II, pp. 10-73.

 20. George Elliot, The Abiding Sabbath, 1884, pp. 17-18.

 21. Karl Barth (n. 14), III, part 1, p. 22.

 22. Ellen White, The Great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1950, p. 438.

 23. Harvey Cox, Turning East, 1977, p. 65.

 24. For a description of the positive celebration of the Sabbath in the Jewish home, see Nathan Barack, A History of the Sabbath, 1965, pp. 89-105; Jacob Z. Lauterbach, Rabbinic Essays, 1951, pp. 454-470; Abraham E. Millgram, The Sabbath: The Day of Delight, 1944, pp. 23-333, 395-437.

 25. The question of feasting or fasting on the Sabbath in early Christianity is discussed in Samuele Bacchiocchi, From Sabbath to Sunday, 1977, pp. 185-198.

 26. Ellen White, Testimonies for the Church, 1948, VI, p. 359.

 27. Abraham Joshua Heschel (n. 17), p. 21. (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