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9 장 세상 역사의 초점(단 8장)
 실상 로마는 알렉산더의 제국이 넷으로 쪼개져 나간 네 방향 가운데 하나인 서쪽에서 출현하여, “남편과 동편과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뻗어 내려왔다고 기록되었다(8:9). 로마제국이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이 세운 나라들을 차지하기는 했어도, 그 나라들 가운데 하나에서 솟아난 것은 아니다. (168.62)
 흔히들 이 작은 뿔을 북쪽의 시리아를 차지한 셀루쿠스 왕조의 여덟 번째 왕으로, 기원전 2세기 유대인을 핍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 175~164 BC)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반증(反證)이 있지만, Thiele, 84, 85, Gane, 67, 71. 결정적인 반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찾게 된다. (168.63)
 즉 마태복음 24장 15, 16절에서 예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을 다니엘서(8장, 9장)에서 인용하시며, 그것을 서기 70년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로마에 적용하셨다는 점이다. 또한 작은 뿔의 역할과 직접으로 관계된 2300 주야가 “정한 때 끝”, 즉 1798년 이후의 마지막 때에 있게 될 일임이 천사에 의해 여러번 강조되었다는 점이다(단 8:17, 19, 26). 뿐만 아니라, 이 작은 뿔이 후에는 교황로마로 이어질 것은 이미 연구한 다니엘 7장의 배경(7:8, 24-26)에서 확실해졌다. (168.64)
 나. 로마제국의 세계제패
 자그마하게 올라온 로마가 어떻게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졌는가. (168.65)
 가) 로마의 초기역사
 ①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야벳이 조상이 된 인도-유럽계 인종(Indo-Europeans)에 속하는 Unger, 83. 이탤리(Italy)인들이 기원전 2000년 초에, 이탤리(혹은 Italia) 반도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 라틴(Latin)족이 가장 두드러졌었다. 김기수, 101, 102. (168.66)
 ② 로마제국이 형성되기 전에 서 지중해 일대는 이미 그리스(Greece), 에트루리아(Etruria), 페니키아(Phenicia) 등 세 민족들이 지중해 제패를 위해 각축(角逐)하고 있었다. 이러한 틈 새에서, 뒤늦은 기원전 7세기 이후, 라틴 민족은 점차 두각(頭角)을 나타내기 시작하다가, 기원전 6세기 초(509 BC)부터 에트루리아인의 속박을 벗어나기 시작하여, 4세기 초에는 그들을 완전히 정복하고, 3세기(BC) 말에는 이탤리 반도를 통일하게 되었다. (168.67)
 ③ 이탤리 반도 통일에 성공한 라틴민족은 당시 서 지중해의 해상권(海上權)을 장악하고 있던 페니키아의 식민지 카르다고(Carthage)와 숙명적으로 대결하게 되어, 100년 이상 세 차례에 걸친 유명한 포에니 전쟁(the Punic War)을 치룬 후, 마침내 카르타고를 궤멸시키고 말았다. 제1차(264~241 BC), 제2차(218~201 BC), 제3차(149~146 BC). (168.68)
 나) “남편과 동편과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지리적으로 이탤리 반도 남쪽이며, 아프리카 북단(北端)에 위치한 카르타고를 정복함으로써, 서 지중해 세계의 여왕이 된 로마는 또 다시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아래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남편과 동편과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져 가기 시작했다. (168.69)
 ① 처음에 로마는 지중해 동쪽에는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제2차 포에니 전쟁(218~201 BC) 당시 동쪽의 마케도니아왕 필립(Philip) 5세가 그리스의 세력을 규합하여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과 동맹을 맺고 로마에 대항하였는데, 이것이 제 1차 마케도니아 전쟁(215~205 BC)이다. 이에 로마는 어쩔 수 없이 지중해 동부의 사태에 개입하게 되었다. (168.70)
 ② 그후 마케도니아의 필립 5세는 소아시아에 자리잡은 셀루쿠스 왕조인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3세(Antiochus Ⅲ)와 동맹을 맺고, 남쪽의 프톨레미 왕조가 다스리는 이집트와 전쟁을 일으키고, 소아시아의 로마 맹방(盟邦)인 버가모 왕국 등을 위협하자, 로마는 다시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200~197 BC)을 일으켜, 키노스케팔라 전투에서 마케도니아를 패배시키고 그 세력을 꺾었다. (168.71)
 ③ 그러나 필립 5세의 아들인 페르세우스(Perseus)는 또 다시 그리스까지 다스리려고 하자, 로마는 동맹국인 버가모 왕국의 요청에 따라, 로마의 용장(勇將) 파울루스(Paullus)를 출병(出兵)시켜 피드나(Pydna) 전투에서 대승하였는데, 이것이 제 3차 마케도니아 전쟁(171~168 BC)이다. 이로서 알렉산더 대왕의 고국인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케도니아 왕조는 알렉산더 사후에 그의 장군 가운데 하나인 캇산더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가, 후에는 입수스 전쟁에서 네 장수의 연합 세력과 싸우다가 전사한 안티고누스 1세의 아들 데메트리우스 1세에 의해 다시 세워져 재기를 꿈꾸었으나, 168 BC 피나드 전쟁에서 패하여 로마에게 치명상을 입고 146 BC에는 로마의 일개 속주가 되고 말았다. 공식적인 명맥이 기원전 168년에 끝나고 바야흐로 로마제국은 서 지중해에서와 마찬가지로 동 지중해의 여왕으로 발판을 굳히게 되었다. 조의설(편), 세계사 대사전(서울: 민중서관, 1976), 247. (168.72)
 ④ 기원전 133년에는 그 동안 로마의 충실한 동쪽의 맹방국이었던 소아시아의 버가모왕국의 아탈루스 3세(Attalus III)가 유산(遺産)형식으로 왕국을 로마에 헌납(獻納)함으로써, 로마는 소아시아를 힘들이지 않고 차지하여 아시아도(道)로 편입시켰다. 버가모 왕국은 알렉산더 사후 네 장군 가운데 하나인 셀루쿠스의 영토가 되었으나, 후에 아탈루스 1세가 일어나 독립을 쟁취(爭取)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헬라문화를 창달시켰으나, 국제정세의 소용돌이에서 133 BC에는 아탈루스 3세가 스스로 자신의 왕국을 로마에 양도하여 아시아도(道)로 편입되었다. (168.73)
 ⑤ 알렉산더의 네 장군 가운데 하나였던 셀루쿠스 왕조가 다스리던 시리아는 이미 기원전 190년경에 대부분의 서쪽 땅을 로마에게 잃고, 기원전 65년에는 로마의 폼페이(Pompey)장군에게 정복되어, 로마의 한 도(道)로 편입되었다. 다니엘서주석, 215, Gane, 32. 폼페이는 씨이저, 크라수스와 함께 제 1차 삼두(三頭)정치의 실력자가 됐으나 후에 실각됨. 단 11:16에 언급된 인물. 이리하여 “동편을 향하여” 뻗어나온 로마제국의 모습이 분명해졌다. (168.74)
 ⑥ “영화로운 땅”은 어디이며, 어떻게 로마의 수중에 들어갔는가. “영화로운 땅”(the glorious land)은 예루살렘이 위치한 팔레스틴임이 다니엘 11장 16, 41절에서도 분명해지는데,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위해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도록 계획하신 “영광”의 땅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beauty), “영광”(glory), “장식”(ornament)의 뜻으로도 쓰이는데, 렘 3:19, 겔 20:6, 15등에도 나타남.

 팔레스틴 역시 시리아에 이어, 기원전 63년 폼페이에 의해 정복되어, 로마의 시리아도(道)에 편입되어, 서기 67년까지 지났으나 서기 66년에 일어난 유대인의 반란 이후, 시리아에서 분리되어 황제 직할영(直割領)이 되었다. 기원전 63년, 예루살렘은 3개월간이나 로마 군사에 의해 포위된 후에 함락되었는데, 이 때 폼페이 장군은 지성소까지 들어갔다는 것이다. Antiquities, xiv. 4. 4. (168.75)
 ⑦ 남쪽에 위치한 이집트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장군 가운데 하나인 프톨레미 왕조(Ptolemaic dynasty)가 들어서서, 셀루쿠스 왕조가 다스리는 시리아와 각축하며, 거의 300년을 다스렸다. 카르다고와의 오랜 전쟁을 통하여 이미 남쪽인 아프리카에 깊이 개입한 로마는, 시리아의 침입으로부터 이집트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기원전 168년 이후 실제로 이집트의 후견인(後見人)이 되었다. (168.76)
 그러다가 기원전 31년 옥타비안(Octavian)이 로마에 복종치 않는 안토니(Antony)와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의 연합세력을 악티움(Actium) 전투에서 패배시키고, 이집트에 쳐들어가, 기원전 30년 로마제국의 한 도(道)로 편입시킴으로써, 로마의 영토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남쪽과 동쪽과 영화로운 땅이, 다니엘의 예언대로 모두 로마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로마제국의 영역(領域)에 혈혈단신(孑孑單身)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 12장 3, 4절에 구체적으로 표상된 제국(帝國)로마의 모습으로, 사단은 이교로마를 통하여 탄생 직후,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으며(계 12:4),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앞두고, 로마제국이 영화로운 땅을 점령한 것은 사단의 이러한 저의(底意)를 실현시키고자 함이었다. 여기에 역사의 촛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168.77)
 가. 작은 뿔의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