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폴리투스는
“안식일에 금식을 명령한” 자들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안식일에 금식하는 것과 같은 예전전인 관습은 단지 공식적인 교회의 권위자들에 의해서만 합법적으로 명령되어질 수 있었고, 또한 역대 교황표(
Liver Pontificales)에 따르면, 칼리스투스 감독은 그 시기에 주기적인 안식일 금식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그 저자(즉, 힙폴리투스)는 그 의식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자로서 로마교회의 성직자단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 같다. 힙폴리투스가 그 관습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로마교회 내에서 보편적으로 보급된 안식일 금식에 대한 논쟁을 약화시킨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저자가 로마에서 가지고 있던 문화적 배경과 지위를 고려해 볼 때, 그 반론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사실 힙폴리투스는 제피리누스(Zephyrinus, A.D. 199-217), 칼리스투스, 우루바누스(Urban, A.D. 222-230), 폰티아누스(Pontianus, A.D. 230-235) 등의 재위시에 로마에 살았지만 로마인도 아니었고 라틴계열의 인물도 아니었다. 그의 언어, 철학, 신학은 헬라적이었다.
68) 게다가 자신의 교구의 주교 선거에서 떨어진 후(칼리스투스가 A.D. 217년에 그를 대신해 선출 되었음), 그는 의견을 달리하는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어 반주교 운동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안식일 금식을 명령한 사람들을 정죄한 사실은 그가 동부지역 출신이라는 점과 그 지역의 신학적인 경향(일반적으로 동방에서 안식일 금식은 정죄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날에 대한 존중심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로마교회의 성직자단과의 대립하였던 내용들에 비추어 설명되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 칼리스투스의 교령에 의해서 주기적인 금식일로서 특별히 명령된 안식일 금식일을 힙폴리투스가 반대한 것은 개인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로부터 기인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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