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6. 세 입구 휘장 (나의 모든 길은 그리스도의 것임)
 예배하기 위하여 성소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제사장이거나 회개자거나, 모두 휘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소 뜰로 들어가게 하는 휘장은 너비가 20규빗 높이가 5규빗이었다(출 38:18). 만일 절반으로 잘라서 그 조각들을 가지런히 맞추면 다른 두 휘장들과 똑같이 한쪽이 10규빗 되는 정사각형이 될 것이다. 각 휘장이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고, 면적과 의미는 같을지라도 제일 바깥 쪽의 것이 좀더 넓고 낮으며, 안쪽의 둘은 좀더 좁고 높게 만들어졌다. 이 사실은 예민한 관찰자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제공된 성소 뜰로 들어가는 입구는 가장 넓고, 사람이 성소에 있는 성화를 향하여 다음에는 지성소 안에 있는 영광화를 향하여 갈 때, 곧 그 길이 보좌에 가까이 접근해 감에 따라 협착해진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았는가? (71.1)
 휘장을 말하는 카타페타스마(katapetasma)는 구약과 신약에서 다 같이 성막의 세 휘장 모두에게 적용된다(출 26:31~35; 27:20; 히 9:8, 10, 19, 20).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문장(門帳)[히브리어로는 마사크(masak, 출 26:37)이라 불리어지고(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hanging으로 되었음—역자 주)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장(張)[히브리어로는 카포렛, kaporeth, 출 26:31, 27:27; 참조—마 27:51; 히 9:3, 그리고 히 6:19에는 둘째 휘장으로 되어 있음)이라 한다(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veil로 되어 있음—역자 주)]. (71.2)
 성소 뜰로 들어가는 입구는 “커튼”(hanging) (헬라어로 kalumma, 히브리어로 masak)이라고도 하지만 장(헬라어로 pule, 히브리어로 saar, 출 27:16)으로 되어 있다(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gate로 되어 있음—역자 주). masak은 이와같이 성소 뜰로 들어가는 문에 있는 휘장에 적용되고(출 27:16), 또한 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에도 적용된다(출 26:37). (71.3)
 라이스(George E. Rice)는 헬라어 구약 성경을 주의 깊이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의 계산에 의하면 모세의 기록에는 katepetasma가 성소 안뜰의 휘장에 대한 6번의 언급 가운데 5번, 성소 앞 휘장에 대한 11번의 언급 가운데 7번, 내부의 휘장에 대한 25번의 언급 가운데 23번 사용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70인역은 휘장에 대한 모세 오경의 42번의 언급중 35번을 katapetasma로, 어느 휘장에 대한 말인지, 혹은 어느 낱말(paroketh 혹은 masak)이 원래의 히브리어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하여 거의 구분을 하고 있지 않다”(1987년 7월 Ministry, “within which veil?”) 휘장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뿌리는 울타리 혹은 칸막이 커튼을 의미하며 격리와 보호를 암시한다. (71.4)
 이 무늬 놓은 두꺼운 천은 다만 상징적인 방벽에 불과했고, 그 천의 망가지기 쉬운 재료는 들어오라는 초청으로 계획되었다. 유대의 주석가 라쉬(Rashi)는 휘장을 왕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칸막이 커튼으로서 왕에게는 사적 자유를 보장하고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나타내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말한다(Rashi의 주석 1권, 모세 오경, 143, 145). (72.1)
 하나님 임재로 들어오라는 초청
 휘장은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을 강조하고, 그분께서는 신비감을 자아내고 그분의 귀의 자들에게 경외심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다만 최소한의 칸막이 커튼만을 원하신다고 알려 준다. 투어의 그레고리(gregory of Tours)는 주후 5세기경에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황색과 청색과 자색과 이중으로 물들인 홍색과 가늘게 꼰 베실로 성막의 휘장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 모든 신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표상으로 앞서갔기 때문이었다.”(The Ancient Use of Liturgical Colors, 39) (72.2)
 지성소 앞에 있는 휘장은 첫째 칸에서 봉사한 제사장을 격려하여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에 접근하게 했다. 속죄소 위에 있는 쉐키나의 빛은 눈을 멀게 하고, 그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가리셨다. 동시에 그분은 당신의 종에게 당신의 빛을 휘장의 씨줄과 날줄의 틈 사이로 일별케 하셨다. 하나님의 영이시여, 이런 설비를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둘러싸고, 제외시키고, 또한 입구를 제공하기 위하여 마련된 이 무늬 놓은 두꺼운 천을 자세히 연구할 때 우리를 인도하소서. (72.3)
 예수님의 인성의 표상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을 우주에 나타내기 위한 칸막이 커튼으로서 인성을 취하셨다. 바울은 그분의 인성, 곧 “저의 육체”(히 10:20)가 성소의 휘장으로 표상되었다고 설명했다. 예언은,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낮은 몸’(빌 3:21), 곧 ‘사람의 형체’로 오실 것”을 드러내었다.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 그에게는 홈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육신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빛이셨다. 그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그의 위대하심과 위엄이 감추어진 것은 그가 슬픔과 시험에 싸인 인간에게 가까이 나아가시기 위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시대의 소망, 23, 20). 그리고 요한은 날마다 그분께서 그의 아버지의 본성을 드러내실 때 그분의 모든 표정과 행동을 쳐다봄으로 “그 영광을” 보았다(요 1:14). 이 드러내심은 마침내 모든 사람을 당신의 빛나는 임재로 이끌 것이다(요 12:32). (72.4)
 하나님의 아들은 인자가 되기 위하여 당신의 신성을 인성과 결합하셨다. 그와같이 자신을 가리우셨기 때문에 그분이 사람들 사이에 다니실 때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그분의 인성과 접촉할 수 있었다(요일 1:1~3; 마 9:20, 21). 하나님께서는 이 현현(顯現)의 수단으로서 그의 인간 육체를 특별히 적합하게 만드셨다(히 10:5 난외 주). (72.5)
 

 (73.1)
 예수님의 생애를 명상함으로써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영광스런 진리를 각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많이 깨달을 수 있다. (74.1)
 “하나님의 아들께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그 영광을 지니신채 나타나셨더라면 우리는 그의 임재하심의 광채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 광채를 보고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영광의 나타나심이 가리워졌다. 그의 신성이 인성으로 가리워졌으니 곧 보이지 않는 영광이 보이는 사람의 형체 안에 감취어졌다”(시대의 소망, 23). (74.2)
 15세기 전에 모세는 쉐키나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출 33:12~18).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불같은 임재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를 “반석 틈에” 숨도록 요청하셨다(출 33:19~23; 34:5~8).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손으로 그 입구를 덮어 그 입법자가 이 “렌즈”를 통하여 “그분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리스도의 못 박히신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의 영광을 명상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한 “만세 반석” 안에 숨을 수가 있다. 모세와 이스라엘, 그리고 선지자들이 부조들과 아울러 갈바리에서의 그분의 승리의 영광을 전망하고 있었던 반면에 우리는 십자가의 이편 쪽에서 그것을 뒤돌아본다. 어느 편에서나 동일한 믿음이 요구된다. (74.3)
 휘장들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재료
 여호와께서 휘장의 재료들을 택하셨고, 세부적인 모든 것이 예수님의 성품과 행동의 어떤 면의 상징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짐승들은 그것들을 물들이는 물감 뿐 아니라 청색, 자색, 홍색 털을 제공하였다. 땅이 금과 은을 제공했는가 하면 식물들은 가는 실을 공급해 주었다. 그것들의 모든 특성들이 합쳐져서 성소의 아름다운 무늬 놓은 두꺼운 천을 이루었다. 이 물질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이 지상의 형성물임을 속삭인다(출 21:32~37). (74.4)
 요세푸스는 제사장의 옷은 물론이요, 성막, 수놓은 두꺼운 천에 사용된 모든 섬유를 위한 “날실이 가는 실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상기시켰다(Antiquities, III : VII : 2). 그 가는 직물과 흰 색깔로 오늘날도 가치를 인정받는 옛 삼베 혹은 애굽의 면직물은 가장 섬세한 실로 짜여졌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모세 시대의 직물이 투박한 것이었다고 생각 하지만 바로의 무덤들에서 발견된 옷감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고대 방적공의 기술은 현대의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 북부 아일랜드의 실 공장에서 만든 실은 어떤 고대의 실보다 두 배가 두껍다(The Rt. Hon, The Earl De ta Warr, “Flax production,” The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Arts, 27th Oct. 1944, 623). 이 가는 날실은 모든 성소 직물의 기초로서의 그리스도의 의를 묘사한다. (74.5)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미(美)의 애호가시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53). 창조주께서는 세상을 가장 풍성한 색깔로 칠하셨다. 폭풍을 몰고 온 아치형 무지개로부터 알프스산의 목장에 융단처럼 깔린 갸날픈 봄꽃들에 이르기까지 신성한 예술가께서는 당신의 조색판(調色板)을 풍부하게 사용하신다. “신비스런 빛깔과 색, 변화 무쌍한 대조 및 혼색(混色)의 조화를 이룬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