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화잇이 사망하던 1915년에 들어와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조직은 자리가 잡혀갔다. 학교들과 대학들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병원들과 진료소들은 치유와 더불어 건강 교육을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침례들이 많이 베풀어졌다. 교회는 장년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 안팎에서 직면해야 될 도전들도 있었다. (34.1)
 전쟁들이 재림교회에 혼란을 가져왔다. 제1차 세계 대전은 특별히 유럽의 재림교인들과 그들이 아프리카 및 남미에서 유지하던 선교 사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재건과 재조직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교회가 전쟁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어 갈 무렵 전쟁의 그림자가 다시 한번 유럽을 덮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많은 선교 사업을 중단시켰고, 그 때문에 유럽을 위한 구호 및 재건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요구되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재림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였다. (35.1)
 A. 교회의 성장
 성장은 성창통과 함께 교회의 성숙 과정을 특징지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교인 수는 1870년 5,440명에서 1998년 10,163,414명으로 성장하였다. [2019년 현재 전 세계 재림교인 수는 2,000만 명을 넘었다.—편집자 주] 1900년에는 고작해야 전 교인의17퍼센트만이 북미 외의 지역에 살고 있었다. 1998년에 와서는 전 교인의 91.23퍼센트가 북미 바깥에 살고 있었다. 동시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복음 교역자중 81.82퍼센트가북미 이외의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35.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교 프로그램은 1874년에 J. N. 앤드루스를 스위스로 파송함으로써 시작되었고, A. G. 대니얼스의 대총회장 임기(1901-1922) 동안 큰 추진력을 얻었는데, 그는 북미지역 내에서는 출판물을 넉넉히 공급받은 평신도들이 본국에서 선교 사역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목회자들 및 그들에게 지급되는 십일조는 해외로 보내져야 한다. 1902년 한 해에만(미국 내에 교인이 60,000명이 채 안 되던 때) 60명의 선교사와 그들의 가정이 고국을 떠났다. 그들의 노력이 처음에는 영국, 독일 그리고 호주에 집중되었는데, 이들도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낼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안식일학교 선교 보고를 통하여 교회는 먼 곳에 있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진보의 역사를 접할수 있었다. (35.3)
 오늘날 선교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더 이상 북미, 유럽 그리고 호주가 모든 선교사들을 파송하진 않는다 예를 들면, 1%0년에 156명의 새로운 선교사가 북미에서 보내졌던 반면, 북미 지회 이외의 곳에서114명이 그들의 고국을 떠났다 1998년에는 1,071명의 사역자들이 자신의 지회 이외의 장소에서 교회를 섬겼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선교사들은 모든곳에서 모든 곳으로 나아간다. 필리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교회 기관을 운영하고 아픈 자들을 간호하며 아르헨티나인들이 네팔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편다. 인도 사람들이 미국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잡지를 편집하고 가나 사람이 대총회에서 일하고 있다. 20여 개의 나라에서 온 교수들이 앤드루스 대학교의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친다 이러한 지회 간의 일꾼 교류에 더하여, 많은 이가 자신의 나라 주변 지역에서 또는 나라 안의 여러 지역에서 섬기고 있다. (35.4)
 재림교회는 복음 기별을 갖고 사람들과 접촉하기 위하여 많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들은 이웃을 방문하는 조용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수천 명이 참석하는 전도회와 같이 대중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중 더욱 주목을 끄는 방법이나 운동이 아래에 소개되어 있다. (35.5)
 1. 출판사업
 초기 재림교인들의 출판사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소책자, 팸플릿 그리고 정기간행물들 이 선구자들이 발견한 “현대 진리”의 매개체였다(참조I. F. 1). (35.6)
 출판물이 재림 기별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일에도 중요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첫 해외 출판물은 프랑스어로 된〈시대의 징조(Les Signes des Temps)〉였는데, 그것은 1876년 스위스의 바젤에 있는 출판소에서 발행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책과 간 행물들이 재림 기별에 관한 첫 소식을 전하였다. 어떤 경우 그것은 단순히 신자들이 친절한 어떤 선장을 통하여 책자를 먼 곳의 항구로 운반하는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특정 인물을 통하여 우편을 보냈다. 예를들면 1879년에 기별이 브라질의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에 있는 독일인 이민자들에게〈진리의 소리(Die Stimme der Wahrheit)〉라는 간행물로 배틀크리크에서 보내졌다. 문서 전도자들은 책과 간행물들을 전 세계로 가지고 갔다. 예를 들면, 라 루(La Rue)가 홍콩으로(1888), 아놀드(Arnold)가 안티구나(Antigua)로(1889 또는 1890), 렝커와(Lenker and Stroup)이 인도의 마드라스(Madras)로(1983), 데이비스와 비숍(Davis and Bishop)이 칠레로(1904), 콜드웰(Caldwell)이 필리핀으로(1905) 갔다. (35.7)
 1998년에 와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출판물들(교인과 비교인 모두를 위한 책자, 잡지, 팸플릿)은 272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같은 해에 전 세계의 57개 출판소가 285가지의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였고, 출판물의 총 판매량은 거의 1억1천4백만 달러에 달했다 1998년 말 재림교회 출판물을 판매하는24,400명의 문서전도인 중 4,680명은 학교에 진학한후 학비를 충당하고자 일하는 학생들이었다. (36.1)
 2. 라디오와 텔레비전
 1926년 재림교회 전도자 Η. M. S. 리처즈(H. M. S. Richards)는 라디오에 데뷔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 중부 지역의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서 종종 방송하였다. 라디오를 통하여 수백만 명과 접촉할 수 있다고 확신한 리처즈는 1930년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주간 방송을 시작하였다. 1936년에는 한 남성 사중창단이 합류하였다. 1937년에 그들은 “킹스 헤럴즈”(King’s Herlads)라고 불렸다. 그 프로그램은 〈예언의 소리(Voice of Prophecy)〉 알려지게 되었다. 1942년 1월 4일 그것은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첫 프로그램이 되었다 같은 해에 ‘예언의 소리 성경통신학교’(Voice of Prophecy Bible Correspondence School)가 개설되었고 첫 달에 2천명 이상의 청취자가 듣게 되었다. (36.2)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재림교회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다른 나라에서(호주, 1943) 그리고 다른 나라 언어로도(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1943)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원어민들이 복음 기별을 그들의 언어로 전하였다. 어떤 방송국들은〈희망의 소리(Voice of Hope)〉는 명칭을 선택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지역의 음악가들이 프로그램에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였다. “킹스 헤럴드”는 20여개의 언어로 노래하였다. 새로운 통신 과정들이 영어와 다른 언어들로 준비되었다. (36.3)
 〈예언의 소리〉가 미국 전역에 방송된 지 50주년이 되던 1992년에, 133개의 성경학교가 전 세계에서 66개의 언어로 교과를 제공하였다. 2,000개 정도의 라디오 방송국이 36개 언어로 방송을 진행하였다. (36.4)
 “재림교회 세계 라디오”(Adventist World Radio)가 1971년 처음으로 방송되었는데, 포르투갈에 있는 시설을 사용하였다. 22개의 주간 방송이 13개의 언어를 방송 첫 주에 사용하였다. 몰타(1975년), 스리랑카(1976년), 안도(1980년), 아프리카의 가봉(1983년) 같은 곳에 다른 방송국들도 생겨났다. 1987년부터 재림교회 세계 라디오 소속으로 괌에 소재한 KSDA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방송을 보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예언의 소리〉외에도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오는 반응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36.5)
 1950년 윌리엄 페이걸(William Fagal)과 그의 팀은 뉴욕의 방송국에서 사실상 미국 최초로〈오늘의 신앙(Faith for today)〉이라는 전국적인 종교 텔레비전 방송을 생방송으로 개시하였다. 1963년〈오늘의 신앙〉은 칼러로 방송되는 첫 종교 텔레비전 방송이 되었다. 1985년 이 프로그램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Lifestyle Magazine)〉이 되었고, 진행자는 댄 매튜스(Dan Matthew)였다. 해를 거듭해 가면서〈오늘의 신앙〉은 시청자들에게 성경 통신과정, 읽을거리 그리고 교회 목회자와의 연락 방법을 제공하였다. (36.6)
 후기에 활동한 두 명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방송인이 주목을 끈다. 조지 밴더먼(Goerge Vandeman)은 〈기록되었으되(It Is Written)〉라는 방송을 1956년에 시작하였다. 밴더먼과 그의 팀은 수백개의 세미나를 제공하였고, 더 깊이 공부하기 원하는 시청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준비하였다. 1973년 C. D. 브룩스(C. D. Brooks)는 〈생명의 호흡(Breath of Life)〉이라는 프로그램을 개시하였다. 이 방송은 특별히 미국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제작되었다. 음악과 설교가 이 방송의 특징을 이룬다 (37.1)
 3. 선교 선박과 선교 비행기
 1921년 리오 홀리웰과 제시 홀리웰(Leo and JessieHalliwell)은브라질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마존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홀리웰은 강변 지역의 고립과 빈곤 그리고 질병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40,000마일의 항해 가능한 강들을 따라 아마존 유역에 있는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접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작은 배를 띄우는 일이라고 확신하였다. 북미와 남미의 재림교회 청년들이 이 선교사업에 착수하는데 필요한자금을후원함으로써 응답하였다. 1930년 홀리웰은 그의 휴가 중 열대 의학에 관한 학업 과정을 밟았다. 브라질로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의 배를 설계하고 그것을 건조하는 일을 도왔다. 다음 28년 동안 홀리웰 부부는 아마존과 그 지류들을 여행했는데, 매해 12,000마일 정도의 거리를 “루제리오 호”(Luzerio, “빛의 전달자”)를 타고 다니면서 강변의 주민들에게 희망과 치유를 가져다 주었다. 일곱 척이나 되는 배가 한꺼번에 아마존 유역의 강들을 정기적으로 왕래하기도 했다. 그 배들은 계속하여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였다. 1992년에 배가 도합 23척이나 되었다. “루제리오 제23호”(Luzeiro X X )는 마나우스(Manaus)에서부터 운항하였다.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