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1장 모든 성경의 초점이신 그리스도
 성경은 인류 문학에 있어서 독특한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께서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바대로 약속과 성취의 형식으로 자기 자신과 인류를 위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 그와 같은 책은 유례가 없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책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영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인간은 타락한 이후 헛된 생각으로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불신한다. 바울은 이렇게 타락한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종교적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4.1)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2:1-3 참조).
(4.2)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지도적인 성서 해석자인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요 3:3)다고 하신 것, 즉 하나님의 왕국의 속성을 이해할 수도 그 축복을 나누어 가질 수도 없다고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중생을 사람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와 선물로 설명하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한 사람의 중생의 경험이 구약을 그 참되고 영적인 내용으로, 구원과 하나님의 왕국의 신학적인 기별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가르치셨다. (4.3)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히브리 성경의 예언들은 선지자 자신의 통찰력이나 발명품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 1:21)이라고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의 예언들은 메시아를 통한 구원이라는 한 도덕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5.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목하는 것이 가 하니라(벧후 1:19, 강조 첨가).
(5.2)
 광명한 새벽별은 그리스도이시다(계 22:16). 고난 받는 종 메시아와 존귀한 왕 메시아의 두 가지 차원을 가진 히브리 성경의 이러한 기독론적 초점은 예수께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한 사실에서 보듯이 자연인들에게는 명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구약이 메시아의 대속하시는 고난과 죽음의 진리를 충분히 증거하지 못한다고 하거나 혹은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왕국과 메시아를 선포하였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문제는 히브리 성경의 거룩한 계시가 어둡거나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영적이지 못한 완고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자신의 제자들마저도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다. (5.3)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5.4)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러한 구약 해석은 유대인들의 심령에 메시아적 진리에 대한 새로운 이상을 갖게 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을 새롭게 사랑하게 되었다. 제자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고 외쳤다. 그리스도는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눅 24:45)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신령한 해석자이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셔야 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은 구약에 나타난 메시아적 빛을 볼 수 있도록 열려져야 만 한다. 이러한 결론은 예수를 그리스도, 즉 이스라엘의 예언의 메시아로 믿는 것이 히브리 성경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구약 성경의 심장으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주석가들은 이스라엘 예언의 진정한 개념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유대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5.5)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후 3:14).
(6.1)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히브리 성경의 중심 진리는 이스라엘과 그, 국가적 미래가 아니라, 메시아 예수, 이스라엘의 주, 세상의 구주였다(롬 16:25-27; 갈 3:16, 29; 빌 3:3-10). 사도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성경에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를 한 사람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0, 12-14; 강조 첨가).
(6.3)
 이러한 바울의 말은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도들에게 주는 풍성한 약속이다. 심지어 엘렌 G. 화잇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확신을 주고 있다. “아직도 발견되어야 할 진리의 맥이 있다. 그러나 신령한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된다.”1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항상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감추고 옛 곳간에서 새로운 보화를 꺼내 오도록(마 13:52), 성령의 지도 아래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7.1)
 예언 해석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의 필요
 마지막 사건들과 관련된 성경 예언들을 해석하는 현대의 주석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분명한 혼란들은 예언 해석의 원칙들이 명백히 정의되어 있지 않은 데서 주로 기인한다. 오늘날 성경 해석을 위한 건전한 해석학적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것은 성경 해석 방법론에 관한 연구, 간단히 말해 바른 성경 해석을 위한 과학과 예술인 성서 해석학이 최근 신학적, 학문적으로 크게 발전한 것에서도 분명하다. 성서 해석학의 근본적 과제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경에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성서 해석학은 한 문서의 의미를 찾기 위한 어떤 원리를 결정하는 하나의 과학이다. 그러므로 이 원리들은 단순한 규칙들의 목록이 아니라, 상호간 유기체적인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2 (7.2)
 성서 해석학의 원리들을 기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주석을 위한 신학 학습 과제이다. 그러므로 주석은 응용 해석학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성경의 묵시 문학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한 점진적 계시의 본질을 드러내는 예언적인 원리의 특수 해석학에 대해서는 전혀 출판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정당한 성경 해석 원칙들은 적법하고도 조직적으로 성경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고, 성경의 생생한 유기체적 구조 안에서, 성경의 전체 체제 구조를 통합하는 ‘영감된 원칙’들이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성경의 종말론적 예언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성경의 묵시적인 부분들은 성경 전체의 예언적 — 메시아적 구조에서 분리시켜 그것들만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지리적 인종적 문자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주석가들은 성경의 예언들을 ‘낱말 맞추기 퍼즐’에 비유하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H. 린 제이). 그러나 성령이 없다면, 이 예언은 비 영적인 것이며 축복된 소망은 나태한 망상과 미래의 시기 설정으로 변할 것이다. 성경의 고립된 어느 한 부분에 대한 역사적—문법적 주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성구의 문자에 집착하여 직접적인 문맥과 더 넓은 신학적 문맥을 무시하고 결국 그 구절들을 메시아의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언약과 연결시키지 않는 모든 증거 구절식 연구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적 통일성을 부정하고, 하늘과 땅 사이의 묵시적 전쟁의 종교적 — 도덕적 이슈를 희석시킨다. (7.3)
 그와 같은 ‘방법’은 신학적 진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제한적인 도구이다. 좀 더 근본적인 것은 해석자가 그것으로 성경의 예언적인 구절을 접근해 가는 영적 개념과 신학적 전제이다. 그리스도인 주석가는 유대인 주석가와는 전혀 다른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구약을 취급한다. 예언상 마지막 전쟁에 대한 그들의 결론은 전혀 같지 아니하다. (8.1)
 그리스도인들의 구약 이해는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 성경을 해석한 방법인 그리스도 중심적인 초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모세의 글, 시편, 그리고 선지자의 글들을 이해하고 주석한 그 원리와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구약의 예언을 비기독교적 방법으로 읽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고, 그리하여 단지 구약을 신약이란 열쇠로 해석하지 않는 단순한 이유로 성경 예언을 오해하고 곡해할 수 있다. 구약은 예언의 메시아 자신이 마지막 말씀으로 오신 이래로 더 이상 종말의 예언에 대한 마지막 말씀이 아니다. 신약은 이스라엘 예언들의 성취와 해석을 위한 궁극적인 표준으로 기록되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구약을 폐쇄된 것으로, 메시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과 상관없이 구약에 대한 신약의 설명을 배제시키고 유대인을 위한 하나님의 충만한 최후의 기별로만 읽는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과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8.2)
 그러므로 먼저 성취된 예언들 속에서 약속과 성취의 형태들이 어떠 했는지 분석하여 구약의 미성취 예언들을 연구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성취에 대한 신약의 패턴을 명백히 이해하는 것이 예언의 모든 상징들과 이미지를 바르게 해석하는 핵심이 된다. 우리는 아는 것으로부터 모르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약을 적용하는 신약의 원리들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은 전체로서의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전제는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계획과 언약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통일성을 갖는다는 역사적인 프로테스탄트 고백이다. 루터와 칼뱅에게 있어서, 종말론은 모두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모든 성경의 중심적인 진리로 보았다. 비록 이 종교 개혁자들의 종말론이 예언의 어떤 면에 대한 부주의로 인해 성서적 소망의 우주적인 범주와 아름다움은 다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복음적 신학의 기독론적 조망은 모든 주석상의 문자주의나 우화주의의 사변적 해석을 거절할 수 있는 확실한 안전판이다. 우리는 예언의 상징들과 의미들에 대한 사변론적 접근을 간파해내기 위해 성경 자체의 충만함에서 나온 성경적 원리들을 필요로 한다. (9.1)
 사도 바울은 그의 젊은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딤후 2:15)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그의 언약의 백성들을 이스라엘의 마지막 때의 예언 들에서 제외시키는 현대의 예언 해석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인을 잃어버리고 거짓 예언의 탑을 높이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예언의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시다” (계 22:13).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원하시는 임재로 모든 언약의 약속과 예언을 밝히시는 광명한 새벽별이시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시다”(계 22:16). 그것은 그가 다윗의 자손일 뿐 아니라, 또한 다윗의 주가 된다는 뜻이다. 그는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나타나셨다(요 12:44-50).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이 너무나 밀접히 연합해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중심의 초점은 이스라엘 예언의 말씀을 성서적 신학적으로 주석하기 위한 변개할 수 없는 지표의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들은 그들의 예언 해석에 있어서 소망의 중심으로 모든 눈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라는 특별한 권면을 받고 있다. (9.2)
다니엘이 말하게 하라, 계시록이 말하게 하라,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지 말하라. 그러나 어떤 주제가 제시되든지 간에,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를 모든 소망의 중심으로 높이라.3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