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가지는 약속의 소망을 얻으려고 전력을 다해 피하여 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152.7)
피하여 가는 우리
우발적인 살인자가 보복을 피하여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도피성(민 35장)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죽음을 피하여 도망하는 자가 제단 뿔을 잡은 관습(출 21:13, 14; 왕상 2:28-34)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것이 소망을 가진 자의 삶의 모습이다. (153.1)
“우리는 죄를 지었다. 죄의 삯은 무엇인가? 사망이다. 사망의 권세를 누가 잡고 있는가? 사단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가? 사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향해 도망한다.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회중: ‘그리스도 안이다’] 누가 우리의 도피성, 즉 피난처인가? [회중: ‘그리스도이시다’] 누가 우리의 도피성인가? [회중: ‘그리스도’] 누가 우리의 원수인가? [회중: ‘사단이요, 사망이다’] 우리가 우리의 도피처인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사단이 우리를 건드릴 수 있겠는가? 그는 건드릴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여러분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게 말씀하시므로 알 수 있다.”5(153.2)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히 6:19) (153.3)
대제사장이 계신 성소는 죄인의 도피성이다. 우리의 입장이 아무리 절박할지라도, 율법의 형벌을 피할 수밖에 없을 때에라도 성소 안에 계신 예수님께 피하면 우리의 보장이 된다. (153.4)
13절에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된 약속의 기업과 보증의 맹세를 열거한 다음 바울은 그 기업의 소망을 얻기 위하여, 그것을 바라보고 성소 안으로 피하라고 말한다. 기업의 소망을 얻는 방법은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바울은 9절부터 약속들을 기업으로 얻는 방법과 확실성을 설명한 다음에,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방법은 성소의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귀납법적인 결론을 내린다. (153.5)
① 바울은 앞선 장들(3-4장)에서 가나안을 약속으로 받고 향하여 가는 자들이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해야 할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는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라고 결론을 지었다. (154.1)
② 다시 바울은 본 장에서 약속의 기업을 받을 자들은 소망을 얻으려고 달려가 휘장 안으로 들어가라는 결론을 짓는다. (154.2)
둘 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를 다루고 있다. 아브라함을 통해 주셨던 언약이 옛 언약이라면 예수님을 통해 주신 언약은 새 언약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가졌던 것처럼 우리는 새 언약 하에서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다. (154.3)
[휘장에 대한 용어 이해]
① “휘장”을 뜻하는 헬라어 ‘카타페타스마’(katapetasma)는 신약 성경에 6번 나온다(마 27:51; 막 15:38; 눅 23:45; 히 6:19; 9:3; 10:20). 이 중 3번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찢어진 휘장에 적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안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진 것은 곧 마지막 크신 제물이 드려졌다는 것과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가 영원히 종말을 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6(154.4)
② 나머지 3번은 모두 히브리서(6:19; 9:3; 10:20)에 기록되었다. 이 중 9장 3절에서는 “둘째 휘장”이라고 특별히 묘사되었다. 이곳은 지성소를 가리킨다. (154.5)
③ 70인역에서는 ‘카타페타스마’(katapetasma)7가 다음 세 가지로 사용되었다. (154.6)
이처럼 70인역 성경에서는 ‘카타페타스마’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둘째 휘장’, ‘성소 앞 장막문 휘장’, ‘뜰의 문을 위한 성막 앞 휘장’ 등으로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155.2)
④ 그러나 70인역에서 “휘장 안에”(에소테론 투 카타페타스마토스)라는 말로 씌였을 때에는 네 번 모두 다 지성소를 가리켰다(출 26:33; 레 16:2, 12, 15). (155.3)
⑤ 위에 살펴본 것에 의한 결론은 단지 “휘장 안”이라고 했을 때 이것이 성소인지 지성소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별히 히브리서 9장 3절에는 “둘째 휘장”에 서수가 사용되어 지성소임을 명백히 한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의 “휘장 안”(6:19)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55.4)
이에 관하여 김상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막, 성소, 지성소 앞에는 모두 ‘휘장’이 있었다. 그러므로 첫째, 둘째 등의 서수가 없이 그냥 ‘휘장’이라고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의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특별한 한 장소를 가리키기보다, 그 모든 ‘휘장 안’에 있던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휘장 안에’ 들어가시고 그분이 곧 ‘새롭고 산 길’(10:20)이 되셨다. ··· 그가 의도했던 바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바로 그 앞으로 즉각적이고, 자유로우며, 온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8(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