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은 영혼을 주의 형상대로 재창조하시는 능력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 날은 성화의 표가 된다. 진정한 성화는 하나님과 조화되는 것, 그분과 닮은 품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의 원칙들을 순종함으로 얻어진다. 그리고 안식일은 그 순종의 표이다. 충심으로 넷째 계명을 지키는 자는 전 율법을 순종할 것이다. 그는 순종으로 거룩하게 된다.”11(157.7)
2. 생명의 양식인 만나
1) 금 항아리 안에 있는 만나가 무엇인가?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What is it)라는 뜻이다. 히브리인들은 신비로운 이 만나를 보고 서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만나는 신성을 상징하는 “금 항아리”(히 9:4) 안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신성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생명의 떡”으로써 믿은 자들의 영적인 생명의 양식으로 제공되었다. (158.1)
신성이신 예수께서 마른 땅에 오신 것은 그분의 겸비와 자아 부인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158.2)
3) 만나는 밤에 내린다.
예수께서는 종종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눅 6:12). 그리고 “새벽 오히려 미명에”(막 1:35) 제자들에게 오셨다. 만나는 하나님의 성실하신 돌보심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 이스라엘이 자는 동안에도 만나는 은혜의 소나기가 되어 이스라엘 진영에 내렸다. (158.3)
4) 만나는 진영에 널려 있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각 가정과 개인에게 가까이 찾아오신다. 생명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놓여 있다. 굶주려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제공된 양식이 필요를 느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 우리도 믿음으로 눈으로 그것을 보아야 한다. (158.4)
만나는 아주 작은 것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모아 담아야 했다. 진리를 모으려면 그만큼의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작은 진리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또한 만나는 너무 작아 하찮게 여길 만도 했다. 그러나 성령은 큰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미한 소리”(왕상 19:12)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159.1)
이슬(출 16:13, 14; 민 11:19)은 ‘성령’을 상징한다. 이슬은 씨가 돋아나게 하고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성령의 상징이다.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연구되어야 한다. 특별히 새벽 시간에 하는 말씀 연구에서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쉽다. “내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부르짖었으니 내가 주의 말씀을 바랐나이다”(KJV, 시 119:146). 만나는 이른 아침에 거두어야 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심으로 모본을 보이셨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159.2)
7) 만나는 해가 뜨면 없어져 버렸다.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 16:21).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 13:4). (159.3)
각 사람은 매일 하루의 양식을 거둬들여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일을 위하여 양식을 저장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내일의 필요를 위해 욕심껏 저장한 사람은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보증은 쌓아 놓은 창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순간마다 의지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창조주이신 예수님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라고 기도하셨다. (160.1)
모든 사람이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출 16:18)고 하였다. 하나님은 연약하여 천막 안에 있는 자든지 강하여 많이 거둘 수 있는 자든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양식을 거두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모든 사람이 공정하고 부족함이 없도록 하셨다. 주님 안에서는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동일한 것이다.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