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7 장 지성소 안의 거룩한 사물들
 궤의 덮개는 정금으로 덮인 아카시아 나무(조각목)로 만들어진 널빤지였다. 이 널빤지는 “속죄소”라고 불리웠다.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캅포레트’인데, 덮어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에는 율법을 범한 형벌은 사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의 죄를 덮어 도말하신다는 의미가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덮개가 은혜의 보좌(히 4:16)로 칭하여지기도 하였다. (150.1)
 D. 구원받을 후사들로 채워질 영광의 “그룹”(출 25:18~20)
 1. 신성의 위엄을 가진 영광스런 그룹
 속죄소 위 두 끝에는 “금으로 그룹 둘”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을 바울은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히 9:5)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룹들은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반사하는 특별한 지위에 있는 천사들이다. 본래 “덮는 그룹”(겔 28:14)이었던 ‘루시퍼’5(Lucifer, 개역성경 “계명성”)를 통해 그룹의 참된 의미를 연구해 보자. 본래 루시퍼(Lucifer)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겔 28:14)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고 있었다. 쉐키나의 영광이 황금 그룹에 의해 반사되는 것처럼 루시퍼는 하나님이 보좌의 영광의 포화로 둘린 것을 의미하는 “화광석 사이에 왕래”(겔 28:14)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죄짓기 전에는 하나님의 품성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완전한 인”(겔 28:12)이었다. 그는 성품에 있어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닮은 존재였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속죄소의 그룹들은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드러내며 구속 사업에 협력하는 하늘의 존재자들임을 알 수 있다. 리즐리 하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어(G. Bramley Moore)는 오래 전에 그룹의 히브리어 첫 글자 ‘k’‘같은(like)’을 뜻하고, 두 번째 음절 ‘rb’‘권능, 지혜, 영광이 크신’ 분, 또는 ‘어떤 것이든지 완전하다고 칭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제시하였다(Philale-thes, The Cherubim of Glory) ... 그룹이란 용어는 마치 신성한 위엄과 같은 이를 묘사”6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덮는 그룹들을 통해 신성의 위엄을 가지고 그룹의 자리에 들어갈 미래의 구원받을 후사들의 모형을 본다. (150.2)
 2. 구원을 얻을 후사들의 모형
 우리는 구원받을 후사들이 얼마나 큰 영광에 들어가게 될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스가랴서에는 “여호와의 사자”인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에게 직접적으로 ‘언약 축복’을 주시는 것을 이야기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슥 3:7). (151.1)
 여기에 세 가지 ‘조건부 미래 언약적 축복’이 나타난다. 축복의 조건은 말씀과 율례에 대한 순종이다. 첫 번째 축복은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하는 축복으로써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두 번째 축복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참여하는 “내 뜰을 다스릴 것이요”, 세 번째 축복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옹호하는 그룹 천사의 직임을 받는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약속을 제임스왕역에는 “곁에 서 있는 이 자들”이라고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였는데 이 사람들은 다름 아닌 4절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선 자들”로써 그룹천사들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순종하면... 그는 이 세상에서도 수행하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행하겠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두른 영광 받은 무리에 가담할 것이다.”7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계 7:15)길 자들의 이야기는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인’(계 7:3~4; 14:3~5)로 구체화된다. (151.2)
 구원받을 후사들이 그룹의 자리에 들어가는 약속은 놀랍고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시내산에서 첫 성막이 세워진지 450년 후에 다윗은 영감을 받아 성전을 설계 하였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다(대상 28:11, 12, 19). 이때 솔로몬왕은 감람나무로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왕상 6:23)어 “금으로 입”(대하 3:10)히고 내소(지성소)의 바닥에 놓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소에 쓰여진 나무가 인성을 상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시은좌 위에 정금으로 만든 두 그룹 외에 두 그룹을 더 만들어 보좌 앞에 있는 네 그룹을 완성한 것은 인성으로 신의 성품을 가장 완전하게 반사하는 자들이 이 그룹의 자리에 들어갈게 될 것이라는 예시(例示)일 것이다. (152.1)
 요한은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왕과 제사장으로 즉위하실 때 “네 생물과 장로들”(계 5:8)의 찬양 소리를 들었는데 “그들이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며 그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 하시니이다 이는 죽임 당하였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 위에서 통치하리이다’(제임스왕역, 계 5:8~9)라고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개역 성경에서처럼 네 생물을 “사람들을”이라고 하지 않고 제임스왕역 성경에서는 “우리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구원받은 후사들이 네 생물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152.2)
 3. 그룹천사들의 태도
 속죄소 위의 그룹들은 “존경과 겸손의 표시로서 각 천사의 한쪽 날개는 높이 쳐들려 있었고 다른 쪽 날개는 몸 위에 접히어 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경건하게 머리 숙여 법궤를 내려다보는 그룹의 자세는 하늘 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과 구속의 경륜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나타냈다.”8 그룹들은 자신들의 모든 사상과 행위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사야가 본 스랍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2~3) 노래하였다. 두 얼굴을 가린 두 날개는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영광을 가리는 것을 말하고, 두 발을 가린 두 날개는 자신의 길과 행위를 살피고 수치를 가린 날개였고, 나는 두 날개는 성전 문지방이 요동하도록 감동을 울리는 날개였다. 우리는 종종 이 스랍들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성소의 내부는 쉐키나의 광채가 황금 그룹들의 얼굴, 날개, 발에 의해 더욱 찬란하게 반사되었으며, 내부의 황금 벽과 금실 은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천장의 앙장과 휘장들에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이루었다. 이것은 모두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우리는 모형을 통해 하늘의 천사들의 존재들을 보고 구속받을 자들의 예표(豫表)를 본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손상된 형상을 인간 안에 회복시키시고 부패로부터 건지시고, 고상한 위치로 끌어 올리시며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드셔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옷 입히시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살기에 합당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153.1)
 E. “두 그룹 사이에”(출 25:22) 계신 쉐키나
 1. 종의 형체 안에 나타내신 쉐키나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는 쉐키나는 성막의 “두 그룹 사이에” 현존해 계셨다. 이 쉐키나는 인간이 죄를 범한 이후에도 인류는 결코 하나님과 단절되지 않았고 버린바 되지 않았다는 증거물이 되었다. 쉐키나(cherubim)의 어근은 히브리어 ‘샤칸’‘거한다’라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밖으로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강력한 증거물이 되었다. 최초의 쉐키나는 인류가 타락한 이후 동산 동편 입구에 위치했던 ‘원시 성소’에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창 3:24) 하셨다. 여기에서 ‘두어’는 그룹들 사이에 계신 여호와의 영광(쉐키나)이 장막을 치고 그룹 사이에 ‘거했다’(샤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후에 지성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顯現)을 쉐키나라고 불렀다(출 25:22; 시 80:1; 사 39:16). 여기서 우리는 에덴 안에 계신 쉐키나와 더 나아가 인류 안에 계신 쉐키나를 본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고 했는데 ‘거하시매’(스케네오센, ἐσκήνωσεν)에서 ‘거하다’의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장막을 치다’, ‘임시로 거처하다’는 뜻으로 신성의 가시적인 현현인 쉐키나가 우리 가운데 육신으로 거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154.1)
 예수님은 인간들 가운데로 오셨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인간 성전’(골 2:9; 고후 6:16; 요 14:23)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볼품없는 가시나무 안에 자신을 영광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의 낮은 몸을 입고 오신 것을 표상하는 ‘쉐키나’“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7),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으로 오신 하나님의 다함없는 희생과 겸비의 상징이다. (154.2)
 2. 자신의 뜻을 그룹 사이에서 알리신 쉐키나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엄숙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임재 속에 법궤 앞에서 봉사할 때 그가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시지 않을 때에는 빛과 영광이 법궤의 오른편에 있는 그룹 위에 비치어 시인하는 표를 주셨다. 만일 저희의 요구가 거절을 당할 때에는 왼편 그룹 위에 구름이 머물러 있었다.”9 (155.1)
 3.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쉐키나의 날개
 뜨거운 광야의 사막을 지날 때 날개를 펴듯 쉐키나로 이스라엘을 덮어 에어컨이 되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덮어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임재(쉐키나)는 늦은비의 최종적인 현현(顯現)을 통해 영적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준비하도록 이끌 것이다. (155.2)
 F. 언약궤 안에 들어있는 세 가지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