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7 장 지성소 안의 거룩한 사물들
 
 A. 지성소의 목적
 1. 내 마음의 보좌를 위한 지성소
 지성소는 어떤 곳인가? 지성소를 연구하는 독자들은 먼저 지성소가 어떠한 곳인지 알아야 한다.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보좌’‘발등상’을 두시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소를 일컬어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겔 43:7). 본 절은 지성소가 어떠한 장소인지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보좌의 처소”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둘째, “내 발을 두는 처소”로 하나님의 소유인 이 땅, 지상의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는 곳이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곳이다. (144.1)
 하나님의 보좌와 발을 두는 처소는 지성소의 “언약궤”(출 25:22; 삼상 4:4; 대상 28:2; 시 132:7, 8)를 통해 분명하게 나타난다. 언약궤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보좌는 그 발등상이 땅에까지 내려오므로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였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 66:1; 참고 사 60:13; 행 7:49)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보좌는 하늘을 나타내고 발은 땅을 나타내었다. 야곱은 꿈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이곳이 “하나님의 전”(창 28:17)이라고 하였다. 하늘과 땅의 연결은 일찍이 야곱의 사다리로 상징되었다. 특별히 ‘속죄소’‘화목제물’의 피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을, 하늘과 땅을 화목하게 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회중 가운데 계셔서 모든 참회자가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도록 이끌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우리 마음의 성소에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는 것이 구속임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의 쉐키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신 구주의 오심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과 “성령의 전”(고전 6:19)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8)가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144.2)
 2. 나의 죄 도말을 위한 지성소
 성소제도는 인류가 죄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속의 청사진이다. 구속을 두 국면으로 요약한다면 첫째는 죄의 용서이고 둘째는 죄의 도말이다. 뜰과 성소는 죄의 용서의 국면을 나타내고 있다면 지성소는 죄의 도말의 국면을 나타내고 있다. 완전한 죄의 용서는 속죄소에서 이루어지는 죄의 도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죄의 도말은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 성소의 휘장과 향단 뿔로 옮겨진 죄의 기록을 제거함으로 완성된다. 지성소의 죄의 도말 사업은 창조 이래로 진행되어온 구속 사업의 종결(終結)과 완성(完成)을 의미한다. 죄의 도말은 ‘원복음’(창 3:15)의 완전한 성취이며, 각 시대의 선지자들이 전해온 부분적인 복음의 완전하고, 전체적인 성취이다. 다음의 예언의 말씀은 심도(深到)있게 연구 되어야 한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1(계 10:7). 본절의 “하나님의 비밀”“영원한 복음”(계 14:6)이며 영원한 복음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완성되어 마쳐지는 것이다. 요한은 이처럼 전체적이고 완전한 복음을 “영원한 복음”2(계 14:6)이라 불렀다. “영원한 복음”은 예수님의 지성소 사역으로 성취되고 있다. 그러므로 참 복음은 ‘모형의 성소’를 넘어 하늘에 있는 ‘원형의 성소’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또한 참 복음은 마음을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이끈다. 새 언약은 죄인을 위한 중보자가 하늘에 계시며 모형의 성소와 대속죄일로 표상(表象)되고 예표(豫表)되었던 죄의 정결 사업이 하늘에서 원형적으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조각난 유리 거울처럼 수만 갈래로 나누인 현대신학의 파편으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들이 참된 진리의 길을 찾을 수도, 구원의 밧줄을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성소는 우리의 과거의 현재와 미래를 광명하게 조명하고 있다. 독자들이 참 진리를 깨닫고 구원의 길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모형으로 예표(豫表)된 구속 사업의 원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뜰의 봉사로 예표(豫表)된 대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성소와 지성소 봉사는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성소 진리의 확신 가운데 지금 우리가 원형적인 ‘대속죄일’(代贖罪日) 가운데 살고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도말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누가 죄의 도말을 받고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조사하여 확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세한 부분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전개하고자 한다. 지금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 여호와께로 돌아올”(욜 2:13) 때이다. 누가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는가? 성소 진리에 나타난 죄로부터의 구원 사업이 생애에 성취되도록 인도하는 증인들이다. “영원한 복음”(계 14:6)은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심령에 죄를 제거하는 용서와 도말을 통해 성결해진 심령에 그리스도가 영원히 충만하게 계시도록 해야 한다. (145.1)
 3. 나의 정결을 위한 새 언약의 피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는 하늘에 있는 참 언약궤의 모형(pattern)이다(출 25:10~22; 37:1~9; 40:20, 21). “십계”(출 34:28)를 넣어둔 “속죄소”(출 25:17) 위에 머무른 쉐키나의 임재는 율법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의 기초이며, 동시에 참회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시은좌’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새 언약의 중보”(히 9:15; 12:24)자가 하늘에 계셔서 “자기 피”(히 9:12)를 가지고 지금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심을 분명하게 예표(豫表)하고 있다. 지성소는 참회자가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서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어떠한 참회자의 죄도 속죄소 위에서 “피로써 정결케”(히 9:22) 된다는 보증의 언약을 준다. (147.1)
 B. 우리의 인도자인 언약궤
 1. 언약궤의 명칭
 법궤3와 법궤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상징하는 것들로 충만하다. 법궤에 대한 명칭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권위가 부여된 것들로서 성경에는 10가지 다른 명칭으로 185회 정도 언급되었다. 이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삼하 6:2)다. “율법이 담긴 법궤는 그분 자신의 상징”4이다. 이 밖에 신성의 상징으로서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 “만군의 여호와의 궤”(삼상 4:14), “거룩한 궤”(대하 35:3)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구원에 대한 계약의 증거물인 십계명이 궤 안에 있기 때문에 “증거궤”(출25:22)라고도 칭하였다. 이것의 보관자 즉 증거물의 소유자가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우리 하나님의 궤”(대상 13:3)라고 불렀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궤”(엘로힘, 삿 20:27)와 “여호와의 언약궤”(민 10:33)가 있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로힘(Elohim)이시며, 언약을 스스로 이루시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로 “주 여호와의 궤”(수 3:13)라 칭한다. (147.2)
 2. 언약궤를 만든 재료
 언약궤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언약궤 = 율법을 넣어둔 궤 + 속죄소(시은좌)) (148.1)
 첫째, 부분은“궤”의 몸체 부분으로 아카시아(조각목) 나무를 깎아 궤를 만들고 안팎을 금으로 입혔다. 그리고 그 안에 증거판(출 25:10~14)을 넣어 두었다. (148.2)
 둘째, 부분은 궤의 덮개 부분으로 “속죄소”라고 불리는 정금으로 만든 덮개이다. 정금 덮개 양가에는 정금으로 만든 ‘덮는 그룹’ 둘이 있었다(출 25:17~20). 궤를 만드는데 사용한 아카시아(조각목)는 가시가 있는 나무로써 “떨기나무”(출 3:2~4) 안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던 겸허한 표상처럼 “우리의 낮은 몸”(빌 3:21)을 취하실 것에 대한 예표(豫表)였다. 그러나 이 궤의 전체 안팎은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신의 성품인 예수의 믿음과 예수의 사랑의 상징인 정금으로 입혀져 있었다. (148.3)
 3. 우리의 인도자가 되는 언약궤
 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의 상징물로서 항상 이스라엘을 인도하였다. 이것은 브살렐이 만들어 궤의 네 발(feet)에 붙인 금고리로 잘 상징 되었다. 그는 금고리 넷을 만들어 네 발에 달았다. 이것은 아카시아목에 금을 입힌 채를 궤의 양쪽 고리에 끼어 이동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출 25:12~15). 궤의 이동은 이스라엘의 필요를 위하여 자신의 보좌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예표(豫表)하였다. 광야를 여행할 때 이 궤는 고핫 자손에 의해(민 3:31) 어깨로(민 7:9) 운반되었다. 모세는 “여호와의 언약궤가”(민 11:33)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셨다”(신 1:33)고 말한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민 10:35~36). 신자들이 믿음으로 전진할 때에 앞에 있는 난관이나 대적으로 인하여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보좌가 우리 앞서 행하시도록 우리의 모든 걸음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149.1)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횡단하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도 여호와의 법궤가 앞서 행하였다. 이것은 요단강 물의 흐름을 멈추신 능력이 40년 전에 저희 조상들 앞에서 홍해를 가르신 능력과 동일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감명 깊게 증거 하였다. 또한 가나안 입성과 더불어 시작되는 삶의 중심은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하였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수 3:13~14). (149.2)
 C. 궤의 덮개인 속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