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고대 세계
 고대 근동 세계에는 부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교리가 없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헌에는 이슈타르와 마르둑에게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나온다(ANET 384, 437). 헬라인들은 영혼의 불멸과 죽음 이후의 의식적 삶을 믿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과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436.1)
 B. 유대교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에는 부활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달랐고 모든 사람이 부활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유대 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띠었다. J. 찰스 워쓰(Charlesworth 68)는 부활 신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 종류의 문헌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마카베오 2서, 솔로몬의 시편 그리고 주간 공동 기도(18개 축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조지 W. E. 니켈스버그(George W. E. Nickelsburg)는 “부활과 불멸과 영생의 시간, 방법 및 장소에 대한 유대인의 정통교리는 없었다”라고 결론짓는다(180). (436.2)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예를 들어 마카베오 2서 7:9에 나온다. “우주의 왕께서는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시편 3:12“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영생으로 일어날 것이다.”라고 확증한다. 다른 부류의 유대교는 이와 다른 관점을 말했다. 요세푸스(Josephus AD 37-100년경)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신약의 증언을 확인한다(Wars 2. 165; Antiquities 18.4. 16). 희년서(BC 2세기)는 영혼불멸 신앙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인들의 뼈는 땅에서 쉬지만 그들의 영은 더 풍성해지는 기쁨을 누린다(23:31). (436.3)
 디아스포라 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론(BC 20년경-AD 50년경)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분명히 가르쳤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는 것은 죽은 이들 중 합당한 자들이 육체가 없는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 준다(Questions on Genesis 1. 70). 에녹의 승천 또한 같은 것을 보여 준다(1. 85). 그러나 필론은 헬라 철학사상을 따르는 유일한 유대인이 아니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견해에 끼친 이런 헬라 사상의 영향은 무덤의 고고학적 유물들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의 벧스아림(Beth She’arim)에 있는 1세기 유대인의 무덤의 비문은 히브리어로 기록 되었는데도 영혼의 불멸에 대한 헬라적인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436.4)
 현대 유대교는 스스로를 육체적 부활 사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개혁주의 운동은 기도서에서 부활에 대한 언급들을 제외시키기까지 했다. 부활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주로 육체와 영혼을 포함하는 전인으로서의 궁극적 구원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이해되곤 한다. (437.1)
 C. 초기교회
 부활에 대한 이단 사상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나타났던 것 같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나 그것에 대한 이단적 관점을 모두 반박하는 것 같다. 디모데후서 2:17, 18에서 바울은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는 잘못된 견해를 주장한 두 선생의 이름을 언급한다 아마도 이들은 주의 날이 이미 도래했다고 주장한 자들로, 데살로니가후서 2:2에 언급되는 이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437.2)
 최초기 교부들의 시대로부터 중세기를 위한 길을 닦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 몸의 부활은 두가지 노선에서 나온 도전들에 대항하는 교부들에 의해 옹호되었다. 첫 번째 반대는 비그리스도인 비평자들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은 부활을 어리석은 것으로 조롱했다. 두 번째 반대는 영지주의자들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은 몸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악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부활을통한몸의 구원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437.3)
 그러나 교부들이 이 두 가지 반대 전선(戰線)에서 부활을 옹호하면서 한 중대한 진전이 일어났다. 영혼 불멸이라는 가르침의 영향력은 부활에서 그 본래의 능력과 의미를 빼앗는 방식으로 부활과 결합되었다. (437.4)
 이미 1세기 말에 로마의 클레멘트는 하루 중 낮과 밤의 순환, 취침과 기상 파종과 재 가운데서 부활하는 피닉스의 전설 등의 예증을 들어 부활의 교리를 비판자들로부터 변호했다. (437.5)
 부활에 대한 첫 주요 논의는 유스티노스의 〈부활에 대한(Fragments on the Resurrection)〉에 나온다. 여기서 유스티노스는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 사상을 헬라-로마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시도한다. 그는 부활이 헬라 철학자들의 생각과 조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육체와 영혼을 구분하지만 후자를 불멸적인 것으로 보진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소망은몸의 부활이다. (437.6)
 영지주의자들의 나그 함마디(Nag Hammadi) 도서관에〈부활에 관한 논문(The Treatise Resurrection)〉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2세기에 나왔을 이 저작에서 구주, 우리 주 그리스도는 자신을 일으키고 자신을 영원히 소멸될 수 없는 존재로 변환 시킴으로써 죽음을 삼킨다. 이것은 “영적인” 부활이지, 몸의 부활이 아니다. 사망 시 신자들은 몸을 뒤에 남기고 떠난다 부활은 단지 이미 부활한 자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 부활은 이미 일어난 실재이기 때문이다. (437.7)
 이레나이우스(115-202년경)는 〈이단 반박문(Against Heresies)〉에서 이런 입장에 맞선다 영혼은 필멸적인 것이며, 전체가 아니라 인간의 일부일 뿐이다. 육체와 영혼을 포함하는 전인적 존재가 구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소망은 육체적 부활에 기초하고 있다. (437.8)
 2세기에 저술한 아테나고라스는 틀림없이 인기를 누릴 다른 관점을 취한다. 그 또한 부활을 유사한 여러 반대로부터 변호하지만, 그는 사람이 불멸하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다. 부활은 둘의 결합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 존재의 고유한본질이 몸과 함께 사는 것이 되도록 뜻하셨기 때문이다(Resurrection of the Dead 1-25). (437.9)
 테르툴리아누스(160년경-240년경)는 신약으로부터 훨씬 더 벗어난다(Against Marcion 9,10; On the Resurrection of the Flesh), 영혼은 불멸할 뿐 아니라 형체가 있는 것으로서 지각하고 고통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종류의 결속을 지닌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 없이는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므로, 한사람이 영원한 고통이나 영원한 구원에 직면하기 전에 육체와 영혼이 육체의 부활을통해 재결합되어야한다. (438.1)
 오리게네스(185년경-254년)는 죽음 및 육체와 영혼의 재결합에 관해 비슷한 관점을 제시하지만(On First Principles 3. 6), 불멸하는 자가 존재하기를 그칠 수 없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것이므로, 비록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이 죽음 이후에 올지라도 모든이가 결국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부활은 모든 이성적인 영혼이 회복되어 신령한 육체를 받을때 일어난다. (438.2)
 닛사의 그레고리우스(330년경-395년경)는 〈영혼과 부활에 관하여(On the Soul and the Resurrection)〉에서 영혼의 본질에 대한 억측을 훨씬 더 강하게 제시 하지만, 죽은 자의 부활과 영혼불멸을 혼합하려는 이 추세의 절정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시작된다(354-430년). 그는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 22권에서 이 주제에 대해 논하지만, 이보다 더 간결한 논의는〈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Faith, Hope and Charity)〉이라는 책의 23장과29장에서 찾아볼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플라톤주의자들을 대항하여 육체의 부활을 옹호하였다. 모든 이는 본래 몸을 이루고 있던 물질의 총체로부터 육체를 회복시키는 재창조 가운데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이것은 육체가 죽음 이후에도 계속 생존하는 불멸적인 영혼과 재결합하는 것이다. 죽음 이후 분리된 영혼은 그것을 위해 특별히 지정된 장소에 머무른다. 영혼은 지상에서의 삶의 방식에 따라 안식하거나 고난을 받는다 부활 후에 의인들은 영원한 복락 가운데 살 것이지만 악인들은 둘째 사망을 경험할 것인데,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둘째 사망은 영혼이 육체를 영원히 떠나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서 받는 영원한 형벌이다. (438.3)
 죽은 자의 부활 사상이 이 시점에서는 아직 옹호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아주 다르다. 점차로 영혼불멸은 부활 사상과 결합되었는데, 전인의 재창조에서부터 이미 고통이나 평화를 경험하고 있는 의식을 가진 영혼과 육체의 재결합으로 부활을 변질시키는 방식으로 결합되었다. 이것은 중세에 걸쳐 연옥에 관한 점증하는 사변적인 추론들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 (4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