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8 장 예언에 나타난 대 제국들(단 7장)
 개신교회들의 증언 (133.148)
 이상은 안식일의 변경에 관한 카톨릭교회의 자인(自認)이었지만, 이 사실에 대한 개신교회들의 증언은 무엇인지 몇 가지 경우만 열거한다. (133.149)
 ◦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Disciples of Christ) 창시자인 알렉산더 캠벨의 증언: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르기를, “안식일이 일곱 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어디서? 언제? 누구에 의하여? 이와 같은 질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아니다, 그것은 결코 변경되지 않았으며, 창조가 다시 있지 않는 한 변경될 수도 없다. 그 준수나 이유의 동기가 변경되기 전에, 이유 그 자체가 변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이 일곱 째 날에서 첫째 날로 바뀌었다고 하는 주장은, 늙은 마누라의 잠꼬대에 불과하다. 그것이 변경된다면, 이를 변경한 자야말로 때와 법을 변경하는 당당한 인물일 것이다. 나는 그의 이름이 『적(敵)그리스도 박사』(Dr. Antichrist)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의 침례, 1824년 2월 2일, 1권, 44, 성서 기초교리, 134. (133.150)
 ◦ 「침례교 요람」(The Baptist Manual)의 저자인 히스콕스 박사(E. T. Hiscox) 의 증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나, 일요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안식일이 주일(週日)의 일곱 째 날에서 첫째 날로 옮겨진 것을 꽤 그럴듯하게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 . 이런 변경을 뒷받침하는 기록을 찾을 수 있을까? 신약에는 없다. 절대로 없다. . . 물론 나는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초대 교회사에 종교적인 날로 도입된 것을 교부들의 글과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태양신의 이름을 따고, 이교(異敎)의 낙인이 찍힌 이 날이 교황권의 배교(背敎)로 말미암아 채택되고 시인되었으며, 신성한 유산(遺産)으로 개신교회에 물려진 것은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1893년 8월 20일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 일단의 목사들 앞에서 낭독된 E. T. Hisxox박사의 글, 성서 기초교리, 135. (133.151)
 ◦ 유명한 청교도 역사가인 윌리암 프린(William Prynne):

 「제칠일 안식일은. . .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초기의 그리스도 교회가 다 엄숙히 준수한 날인데,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부터 라오디게아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그 날의 준수를 폐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 왔다. 서기 360년경의 라오디게아 공의회가 처음으로 유대인의 안식일 지키는 일을 금지하고 주의 날을 지키도록 결정하였다.」 주의 날-안식일에 관한 연구 보고, 33, 34, 성서 기초교리, 134, 135. (133.152)
 ◦ 교회 역사가인 네안더 (Neander):

 「일요일을 축일로 삼은 것은 다른 모든 축제일의 경우처럼 단지 인간이 제정한 것이다. 안식일 계명을 일요일로 변경하는 명령을 내리고자 하는 의도가 사도들에게나 초대교회에 전혀 없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의 역사, 186, 성서 기초교리, 134, 135. (133.153)
 이렇게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된 것은 전혀 인위적인 것으로, 점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일요일을 최초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지키도록 명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였으며, 이를 성일로 확정한 것은 카톨릭교회의 주장대로 364년의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였다. (133.154)
 ◦ 대영백과 사전 “일요일” 조항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제국을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라고 명령하였다.」 Encyclopaedia Britannica, 9th, ed., “Sunday”. (133.155)
 ◦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 「321년 3월 7일」

 「존경할 만한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주는 것들을 상실하지 않기 위하여,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그토록 적합한 날이 없는 때가 자주 있으므로, 적기(適期)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날 완전히, 자유롭게 농경(農耕)에 종사하도록 하라.」 A. H. Lewis, History of the Sabbath and the Sunday, 201. ed., rev., 1903, 123, 124. 원전은 Codex of Justinian, lib. 3, tit. 12, leg. 13. (133.156)
 ◦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364년 법규 29」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날에 반드시 일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바대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인처럼 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 것이다」 Andrews and Conradi, History of Sabbath, 409. (133.157)
 나) 십계명의 단축 및 삭제
 로마교회는 십계명의 두번째 계명을 첫째 계명에 포함된 것이라 하여, 이를 삭제하는 한편, 열째 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조항으로는 십계명이 되었으나, 내용상으로는 안식일 계명의 변경과 둘째 계명의 삭제로 심각한 차이를 가져 왔다. 네째 계명을 세째 계명으로 하고, 그 날짜를 일곱째에서 첫째로 옮긴 것 외에도, 그 내용을 대폭 삭제하여, “주일을 지키고”라는 한 마디로 단축함으로써, 안식일의 시간과 의미는 물론 이에 연관된 하나님의 창조주 신분(身分)을 말소해 버렸다. “어느 날에, 누구를, 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의 일체의 내용이 삭제됨으로써 논리에도 맞지 않는 법 조항이 되고 말았다. (133.158)
 둘째 계명을 첫째 계명에 포함시킨 것은 그 내용의 중복 때문이기보다는 오히려 교황권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로마제국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은 뒤(AD 313) 급속도로 타락하여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받은 이교(異敎)의 영향으로, 로마교회 자체가 이교의 의식(儀式)을 모방하거나 용납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빠져든 모순에 대한 합리화(合理化)에 불과한 것이다. 저명한 교회사가(敎會史家)인 모쉐임(J. L. Von Mosheim)의 이에 대한 진술은 정확하다. (133.159)
 「그리스도인 감독(司敎)들은 이전에 희랍과 로마의 다른 종교의 숭배자들이 그들의 상상적인 신들에게 존경과 신앙심을 표현하였던 종교의식들과 제도들을 조금씩만 고쳐서, 그리스도교 예배에 끼어 넣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교도(異敎徒) 대중들로 하여금 이런 의식들은 자기들의 조상들로부터 전래(傳來)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바뀐 것이 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순교자들도 이전에 자기들의 신들이 경배받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예배되고 있는 줄로 안다면, 그들이 더욱 쉽사리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콘스탄틴 황제가 자기 조상의 종교를 포기하자마자, 곳곳에 으리으리한 성전들이 서게 되어, 여러가지 그림들과 우상들로 단장되었는데, 이것들은 외관으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이교 신들의 신전과 흡사한 것이었다」 J. L. Von Mosheim, Ecclesiastical History, I, 369.

  (133.160)
 실제로 8세기에 이르러서 카톨릭교회들은 각종 성상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것들에 입맞추고, 기도하고, 분향하고, 절하는 일이 지나쳐, 오히려 우상을 섬기지 않는 회교도들로부터 우상숭배자라는 조롱을 받는 등 그 퇴폐함이 극에 달했다. (133.161)
 보다 못한 동로마 황제 레오 3세(Leo III)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등은 종교회의를 열어 우상 숭배를 금하고 교회당에서 이를 제거할 것을 명하고 강제로 부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 3세(Gregory III)는 우상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섬으로써 동서(東西)교회 간에 장기간에 걸친 논쟁과 분쟁으로 들어섰다. 심지어 로마교회의 일각에서는 “하나님은 성만찬에서와 마찬가지로 만들어 놓은 우상(偶像)에도 임재하신다. . .그려지거나 묘사되지 아니한 그리스도는, 실제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 라고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Qualben, 153, 153. (133.162)
 이것이 그 유명한 성상 파괴 논쟁(Iconoclastic Controversy)인데 우상에 대한 로마교회의 견해는 지금도 그 때와 변함이 없으며, 지금의 바디칸 성 베드로 성당에도 395개의 성상과, 44개의 제대(祭臺)가 차려져 있어, 경향잡지, 22. 불교의 사찰(寺刹)을 방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로마교회가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5)는 둘째 계명을 달가와할 리가 없고, 첫째 계명에 포함되었다는 애매(曖昧)한 이유를 붙여 삭제(削除)해 버린 것이다. (133.163)
 이와 같이 둘째 계명이 삭제됨으로써, 한 조항이 모자라게 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아내나, 종이거나, 혹은 소유를 막론하고 탐심을 갖지 말도록 명한 열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결국 아래와 같은 천주(天主) 십계(十誡)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133.164)
 「 1.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2.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헛 맹세를 발하지 말고

 3. 주일을 지키고

 4.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5. 사람을 죽이지 말고

 6. 사음을 행하지 말고

 7. 도적질을 말고

 8. 망령된 증참을 말고

 9.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10.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천주교 요리, 제1권, 제28절. (133.165)
 차. 1260년 간 전성함(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