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한 낱 지방 교회의 수석 장로에 불과했던 로마교회의 감독이 세계적인 교황으로 추대된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역사의 신비이다. 다음의 로마교회 지도자들이 이 일을 점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Thiele, 65. ◦ 빅토르 1세(Victor I․193-203) — 동방 교회에 부활절을 일요일로 정하라고 명했으나, 거절하자 그들을 출교시켰다.
◦ 율리우스 1세(Julius․341-352) — 343년에 열린 사르디카 종교회의에서는 로마의 감독이 서로 분쟁하는 다른 감독들을 재판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 인노센트 1세(Innocent I․402-417) — 로마교회의 감독은 온 세상의 감독이라는 개념을 부각시켰다.
◦ 식스터스 3세(Sixtus III․432-440) —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교회를 보살피도록 임명되었다”고 주장했다.
◦ 레오 1세(Leo I․440-461) — 로마교회의 감독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그에게만 아버지를 뜻하는
“Pope”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게 했으며,
본래 주교(bishop)을 “아버지”라는 뜻인 “papa”로 불렀으나 이 때부터 교황만을 가리키는 “pope”로 변했다. 그러나 교황의 공식 명칭은 고대 이교 로마의 대제사장의 명칭인 Summa(혹은 Maximus) Pontifex이다. 로마교회의 감독이 가장 높다는 조서를 반포했다.
◦ 시마쿠스(Symmachus․498-514) — 로마교황은 하나님 대신으로 재판장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자의 대리자로서 이일을 이행하게 되었다.
◦ 요한 2세(John II․532-535) —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533년 그를 모든 교회의 머리라고 선포했다.
◦ 그레고리 1세(Gregory I․590-604) — 자신이 왕인 것처럼 행동했다. 로마 교회는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교황은 최고의 재판장으로 왕들과 황제들을 마음대로 폐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여 세속권을 강화했다.
◦ 인노센트 3세(Innocent III․1198-1216) — 교황권은 절정에 달하여, 유럽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되었다.
교황권의 성장과 쇠퇴의 역사는 다니엘서 주석, 200-207을 참조. (13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