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4 장 재림소망의 확실성
 이 말을 그리스도께 대한 전문적 용어로 적용한다면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고대하였던 재림에 대한 개인적 기쁨의 특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성도들을 부활시키고(고전 15:23; 살전 4:16), 산 자와 죽은 자를 그에게로 모으며(살후 2:1; 살후 2:8) 그리고 반대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권능과 영광으로(살후 2:8) 다시 지상에 개체적으로 오실 것을 기대한다. (65.7)
 부활과 변화. 파루시아의 필수 불가결한 국면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산 자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명백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고전 15:42, 51~54). 이 행위는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악의 세력을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언급한 직후에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왕국의 최종적인 국면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의인의 부활과 변화와 함께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받은 자들이 당신의 영원한 임재에 들어오게 하실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그러므로 파루시아는 신자들의 부활 또는 변화, 불신자들의 멸망,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의 시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승리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66.1)
 3. 계시
 재림을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로 묘사하기도 한다(고전 1:7; 살후 1:7). “계시”라는 단어는 감추어진 실체의 “벗김” 또는 “나타냄”을 의미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를 번역한 것이다. (66.2)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남.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있어서 드러나야 할 비밀은 그가 하늘 성소의 하나님 우편에 높이 들리워 계신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통치 하시고 인류를 위해 중보하신다(고전 15:25; 빌 2:9). 그러나 그리스도의 현재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세상에서는 분명치 않다. 그러므로 그분의 재림은 자신의 현재의 권능과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는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가 될 것이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고전 1:7) 있다. (66.3)
 인간의 운명이 나타남. 그리스도께서 장래에 나타나시는 일은 모든 인간의 행위와 신분을 드러내는 마지막 심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파루시아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롬 2:5, 6)는 순간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때에 자신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날”(롬 8:18)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과 공의가 미래에 나타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롬 8:19)을 말하는 것이다. (66.4)
 이 미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신자들은 성령의 역사(롬 8:18~24)를 통해 이미 그것을 미리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그를 아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어 “그의 기업의 영광의 품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도록 기도한다(엡 1:17, 18). (66.5)
 4. 나타남(The Appearing)
 강림의 찬란함. 강림의 웅장함과 가시적(可視的) 국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용어는 일반적으로 “나타남”으로 번역된 “에피파네이아”7(epiphaneia)라는 헬라어이다. 이 용어는 헬라 세계에서 특별히 입성하는 통치자의 승리와 기쁨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아마도 그러한 왕의 기쁜 행렬을 목격한 바울은 그 용어가 그분의 파루시아 때에 있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출현의 웅장함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8 (66.6)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여(Parousia), 나타나심(epiphaneia)”(살후 2:8)으로 불법한 자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설명한다. 디도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바울은 “복스러운 소망”“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딛 2:13)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파루시아는 은밀한 사건이 아니며 믿지 않는 자를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인 출현이 될 것이다(살후 1:8, 9). (67.1)
 은혜와 영광. 바울은 “나타남”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의 재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초림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사용한다. 이 지상에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그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으므로 어떤 의미에 있어서 영광스러운 것이었다(딤후 1:10). (67.2)
 초림 때에 근본적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딛 2:11, 13) 것이다. (67.3)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초림과 영광스러운 재림, 이 두 표현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수를 그들의 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딤후 4:8)들이다. 그들은 “그의 나타나심과 나라를”(딤후 4:1) 확실하게 고대하면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즐거워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출현에 대한 확실성이 바울로 하여금 디모데에게 “책망할 것이 없는”(딤전 6:14) 생애를 살면서 그의 가르침과 전도 봉사를 완수하도록 호소하게 했다. (67.4)
 창조의 절정. 신약의 다른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파루시아에 있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출현과 계시를 모든 피조물이 그 곳으로 향해 움직이는 큰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주권, 성도들의 부활을 통한 죽음에 대한 그의 승리, 그 나라의 시민들과 원수들 사이의 최종적인 분리,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통치 등을 역사 속에 나타낼 것이다. (67.5)
 재림은 겸손한 역사적 예수에 의해 완성된 구속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강림 때 완성될 것을 보증한다. 그분의 강림은 물질계의 질서를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룩하여, “하나님은 만유의 주”(고전 15:28)가 되실 것이다. (67.6)
 제 4 부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의 증언
 1. 히브리서
 제사, 봉사, 영광.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 제사장들의 봉사보다 탁월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재림을 이야기한다. 레위 제사장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드려진 제사와는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히 9:26, 12, 28절 참고)다. 그분의 위대한 제사가 그리스도께 하나님의 우편의 영광과 존경의 자리에 있게 한다(히 1:13, 9:24). (67.7)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신 곳에 들어가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였다(히 10:19, 20, 9:24). 이 지상에서 드려진 최고의 제사가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드려지고 있는 최고의 봉사가 있게 했다. 다시 말해서, 이 봉사에 이어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게 될 때(히 2:8, 9)에 최고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최후의 승리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두번째 나타나”(히 9:28)실 때 있을 것이다. (67.8)
 소망의 근거.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로 인하여 연결된 초림과 재림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한다. 초림의 목적은 분명히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림의 목적은 “구원하기 위해서”, 즉 “자기를 바라는 자들”(히 9:28)에게 약속하신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다. (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