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서 우리는, 죄로 이간(離間)되고 불화하게 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마침내 화목에 이르는 감격을 본다. 문화와 역사, 교리와 성례(聖禮), 교회 정치 형태의 차이 때문에 어차피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린 유대교, 개신교, 로마 가톨릭 교회와 희랍 정교가 모두 시편으로 노래하며 함께 영송(絲桶)할 때, 그들은 시편의 하나님께 시편에 고동치는 인간의 중심을 가지고 연합과 화합을 경험하는 것이다. 시편은 하나님, 인간과 천연계, 죄와 구원 등 심오한 신학적 주제를 망라하여 취급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논란이 되도록 말의 논리로 다루지 아니하고, 누구나 동감을 가지는 경험에 바탕하여 그것에 시의 옷을 입히고 노래의 날개를 달아준다. 그리하여 어린아이도 깨달을 수 있고 노인에게도 어렵지 않은 신학, 못 배운 사람에게는 쉬우면서도 많이 배운 사람에게는 심오한 말인 평등의 신앙을 선물한다. 시편은 하나님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분의 하시는 일을 체험으로 설명함으로써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을 함께 깨달아 믿게 한다. 그래서 오직 바보 곧
“어리석은 자”만이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14편 1절)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시편은 이렇듯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을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와서 여호와의 행적(行積)을 볼지어다”(
46편 8절)라고 확신을 가지고 초청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自信)이 있는 것이다.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