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비를 위한 준비(오스굿) 제 7장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리셨음
 그리스도는 인간의 곤궁과 관심에 동참하셨다. 그는 “우리가 그분과 한 정신이 되도록 우리와 한 육체가 되셨다.”(DA 388)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 마음에 그분의 영을 초청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신성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 하는 하나됨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겟세마네는 이 하나됨을 극심하게 시험한 곳이다. (55.1)
 성경은 죄와 불신을 동일시한다. “의심하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 부조와 선지자에서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와는 참으로 사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이 죄의 형벌에서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불신했으며, 이것 때문에 그녀는 타락에 빠졌다.” 아담은 그녀의 불신을 받아들였다. 그는 “현명한 뱀의 말이 참일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PP 55-57) 가나안 접경에서 이스라엘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 가지 못한 것”(히 3:19)이다. 마찬가지로 늦은 비를 받지 못하도록 필요한 준비를 막는 불신이 약속된 하늘 본향의 문을 분명히 막을 것이다. 자기를 우상으로 섬기는 것은 언제나 불신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은 믿을 것인지 불신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고의적 무지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는 말씀보다도 자신의 의견을 높이며, 고의적인 무지는 고의적 불신으로 이끈다. 시험받는 이들에게는 “만사가 의지의 올바른 행동에 달려있다.”(SC 47) 책임을 져야 할 모든 사람들이 보좌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결정자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결정이 최종적이 된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의지를 침노하지 않으실 것이다. (55.2)
 만일 인간이 결정하기를 거부한다면 그가 포기해버린 보좌를 사단이 즉시 강탈해 버린다.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한 정신이 될 것이며, 불신을 통해서 악령과 하나가 된다. “그대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그대에게 달렸다 ∙∙∙ 그때에 그대의 모든 본성은 그리스도의 성령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다.”(5T 513, 514) (56.1)
 어떤 이들은 자신이 수동적으로 있기만 하면 성령께서 인생을 차지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활한 거짓이 아닐 수 없다! 성령은 의지의 기능을 강탈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올바로 행하는 일에 의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협력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보다 백 배나 더 큰 강도로 그대를 강요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대를 ∙∙∙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와 같은 편에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대의 목적과 욕망과 성향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킬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대를 위하여 그 일을 이루어 주신다.”(MB 142) 아무리 의지가 연약하다 할찌라도 성령께서는 한 편이 될 수 있는 거룩한 결단에 대하여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굳건하게 하신다. (56.2)
 예수님 보다도 더 힘겹게 결단한 인물은 없다. 겟세마네에 들어가실 때 주님은 속에 있는 갈등을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도다”(마 26:38)라고 표현하셨다. “주님은 당신이 죄의 심연에 의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분리되시는 것처럼 느끼셨다. 그 심연은 너무 넓고, 너무 어둡고, 너무 깊어서 그의 영은 그 앞에서 떨었다.”(RH 1888. 10. 9) “주님의 영혼의 고통은 ∙∙∙ 온 하늘을 떨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주가 사단의 군대들에 의해 둘러싸였으며, 그의 인간 본성이 심히 떨리는 이상스런 공포로 압박 당하는 것을 보았다.”(ST 1897. 12. 9) (56.3)
 그는 지옥의 문을 부수고 사단의 보좌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셨다. 아직까지 그리스도께서는 거짓 증인들, 조작된 재판, 머리가 잡히고, 더럽게 침뱉음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직까지 그분은 야만적으로 모욕당한다는 생각을 용납하실 수 없었다. 주님은 멸망과 정죄에 빠진 자의 고통을 생각할 때 뒤로 물러나셨다. 그 누구도 그분께서 받으시기에 부적당한 형벌을 그분께 강요할 수 없었다. (56.4)
 “만일 할만 하시거든”—그리스도의 고난에 찬 간구는 절대적인 사랑을 품으신 분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찔렀는지! 그러나 침례 때 들렸던 것과 같은 대답이 하늘에서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의 침묵은 고난당하는 주님께 “불가능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동산 안에 두 개의 의지 아버지의 것과 아들의 것이 있었다. 예수께서 잔을 거절하실 것인가, 혹은 아버지께 의지를 복종시킬 것인가? “여기 신비의 잔이 그 분의 손 안에서 흔들렸다 ∙∙∙ 멸망의 세상의 재난과 비탄이 그분 앞에 나타났으 며, 그분의 결단은 이루어졌다. 그분은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었다.”(고난(sufferings), 24, 25)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는 말과 함께 그리스도는 최고의 희생을 드렸다. 이것은 굴복된 의지이다! 굴복된 의지는 순종의 본질을 이룬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의지를 수용하셨을 때 그는 자기 의지를 희생시켰다. 이제 오로지 한가지 의지, 곧 하나님의 의지만이 남았다. 한 천사가 즉시 엎드러지신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 나타났다-이 고난의 왕으로 하여금 자신을 드려야하는 희생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에게 힘을 주어 행하기로 하신 것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57.1)
 겟세마네의 위기는 지나갔다. 우리 주님은 갈바리를 바라다보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복음이셨다.”(MS 49, 1898) “하늘의 인이 그리스도의 대속에 인쳐졌다. 그의 희생은 모든 면에서 만족스런 것이었다.”(ST 1899. 8. 16. QD 644에서 인용) 율법과 선지자들은 십자가를 예견했다. 신약은 이것을 해석한다. “하나의 위대한 중심적 진리가 있다- ∙∙∙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힌 분이다. 다른 모든 진리는 이 주제와 맺고 있는 관계에 부응해서 영향력과 능력을 옷입게 된다.”(MS 31, 1890. QD 662에서 인용) “목사들이 좀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분별하고, 그 분의 성령을 포착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중심되시는 단순한 진리를 더욱 더 힘차게 증거하게 될 것이다.”(RH 1896. 3. 24) 이 권면은 특별히 목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57.2)
 죄 때문에 십자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인간은 반역자요 반란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 때문에 사형선고 아래 놓여 있는 죄인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대속자가 죽어야만 했다.”(RH 1887. 7. 5) (57.3)
 누가 인간의 죄악을 계산할 수 있겠는가? “그의 [인간의] 책임져야 할 분량은 오직 갈바리 십자가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BE 1886년 2월) 십자가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이 해를 확장시킨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갈바리 십자가의 빛 속에서 죄인된 자신을 볼 때까지는 알지 못한다.”(RH 1895, 2.26) (58.1)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모두 갚으셨다. 죄인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원하시지 않는다. 공의는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더 이상의 어떤 것을 추가할 수 없다. 조롱과 비참함, 두통과 마음의 고통, 가시와 긴 못-그는 이 모든 것을 견디셨다. 완전한 대속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은 행하셨다. 이제 영원한 시대를 통해 영광과 찬송이 주님께 속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자. 그 혜택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종국에 가서는 모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단 한 사람도 멸망될 필요가 없다”(1SM 96)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의 죄는 그리스도 안에서 처벌되었다. 그것들은 마치 주님의 것처럼 죄를 짊어지신 무죄하신 분 위에 놓여졌다.” (ST 1898. 2. 3) 예수님은 “가야바의 영혼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위선을 아시고 그의 범죄까지도 짊어지셨다.” (5BC 1105) 그리스도는 그를 위해서도 구원을 확보해 두셨다. 의심이 그것을 거절했다. 얼마나 큰 비극인가 ! (58.2)
 날마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자신의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가납하심에 대한 내적 확신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모든 시련을 만나고 사단이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시험을 견딜 때까지는 최종적인 승리를 주장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이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딜 경우에는 모든 구속의 계획이 위기에 빠질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 절대적 위험을 무릅쓰고 적과 더불어 싸우는 것을 허락하셨다.”(ST 1915. 1. 1) 마귀는 사력을 다해서 모든 것을 다 시도했다. “사단의 권세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죄인 중 괴수로 믿게 하고자 악한 이들과 결탁하였다.” “범죄자들 중에 그토록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취급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스도는 고난자들의 왕이셨다.”(DA 760, 710, 752) (58.3)
 사단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단은 속임수로 가장하여 자기가 발각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활동했지만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거민들은 그의 [사단이] 기만을 면밀하게 관찰했다.”(RH 1901. 3. 12) 그러나 사단은 자기 기만에 자기가 넘어갔다. “그의 가면은 찢겨져 나가고 ∙∙∙ 살인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DA 761) 분노를 목격하고 “천사들은 공포로 떨게 되었고, 사단과 천상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마지막 유대의 줄을 영원히 끊어버렸다.”(3SP 183, 184) (59.1)
 그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의 증거들을 통해 이것이 명백해진다. “도덕률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사람만 대속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1SM 229)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는 죽음 너머의 죽음을 겪으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이들에게 선고되었던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다.”(5BC 1103) 우주에서 인간의 입장을 취하시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께서는 신적 공의의 분노를 견디시며, 그대 때문에 죄 자체가 되신다.”(DA 756) (59.2)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적개심은 강력하고 압도적이다”(RH 1898. 2. 8)는 것을 입중하는데는 그리스도의 수치스러운 죽음 이상의 증거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더할 나위없는 공의가 십자가를 조명해 준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당신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한치의 형벌도 감하지 않으셨다.”(ST 1899, 12) 그분의 위대하신 사랑의 심장은 고통에 의해 찢겨졌다. 정말로 “하나님은 친히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셨다.”(5BC 1108)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끝내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승리의 함성은 온 세계에 퍼졌다.”(PP 70) (59.3)
 그리스도의 사망은 사단의 왕국의 기초를 뒤흔들었다. “하나님 아들의 죽음은 사단의 죽음이 불가피해지도록 했다.”(RH 1897. 9. 7) 그러나 사단은 홀로 멸망 당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무 인자하시기 때문에 죄인을 처벌하 실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그의 의로운 율법을 범한 모든 이들에게 형벌이 분명히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갈바리를 쳐다보아야만 한다.”(BE 1886년 2월) (59.4)
 십자가는 십자가를 통해 해방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중의 죄악을 정죄한다. 그들은 범한 죄 뿐만 아니라 그토록 값지게 얻게 된 구원을 거절한 것 때문에 죽어야만 한다. 우리 주님은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잠 8:36)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이 어떤 죽음을 겪어야 하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가? 물론이다! “하나님의 영은 언제나 슬퍼하지 않으실 것이다 ∙∙∙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이 이뤄진 후에 만일 그들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예수께서 제공하시는 자비를 경멸한다면 사망이 그들의 몫이 될 것이며, 그것은 너무 값비싸게 얻는 죽음이 될 것이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죽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느끼셨던 그 고통을 느껴야만 하기 때문이다.”(1T 124) 영원한 밤의 어두움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분의 모습을 감쌌던 것처럼 회개하지 않은 이들은 소멸속에 삼켜질 것이다. (60.1)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지상에 태어난 당신의 자녀 모두를 사랑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 사랑의 결과로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셨다.”(RH 1890. 9. 2) 이상으로 “갈바리는 그분의 결정적 사업을 대표한다.” “그분의 선물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으며, 그 분께서는 이것 이상으로 더욱 깊이 있게 사랑을 풍성히 드러내실 수 없다.”(YI 1895. 10. 17) “강렬한 사랑의 충동 때문에 ∙∙∙ 주님은 우주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 하셨다.” 인간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이 대속의 덕택으로 주께서는 인간에게 완전한 의를 제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7BC 924, 925) 그의 대속은 “범죄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치료제를 마련했다 ∙∙∙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위 뿐 아니라 우리 심령과 품성 속에 임할 수 있는 하늘이 임명하신 수단이다.”(Letter 406, 1906) (60.2)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그토록 빨리 죽게 한 것은 신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 그의 심장을 부숴뜨린 것은 자기 아버지의 진노 의식이었다. 의심까지도 죽어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공격했다. 믿음과 소망은 꺼져가는 고민 속에서 흔들렸다 ∙∙∙ 구속주께서는 ∙∙∙ 여태껏 당신을 굳건하게 해왔던 증거들을 의지했다 ∙∙∙ 그는 오로지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했다.”(고난(sufferings), 35-38) (60.3)
 경외심과 경건한 두려움을 갖고 십자가 가까이로 모이자. 무서운 긴장때문에 그 분의 결의가 흔들릴 것인가? 잡아 매달리는 사망 때문에 그분의 믿음 이 소진될 것인가? 헐떡이는 가슴과 끊어질 듯한 숨소리를 통해 마지막이 가까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곳에는 고함과 고통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은 절명했다. 그는 심장이 터져 죽었다.”(ST 1898. 4. 14) 온 우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교통의 중단 때문에 하늘 조정은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사태에 휩싸이게 되었다 ∙∙∙ 하나님은 ∙∙∙ 구주께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 진노의 잔을 비우시는 동안 ∙∙∙ 구주를 숨기셨다.”(5BC 1108) 태초에 사단은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의 노력을 통해서 끊어질 줄 모르는 상호결합을 입증했을 따름이다. 엘렌 G. 화잇은 분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신적 능력들이 갈라지는 일은 영원 시대를 통해서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TBC 924)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