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히브리서 연구) 제 5 장 제사장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그리스도
  (125.1)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대표인 동시에 사람의 대표가 되어야 하였다. 하나님을 대표하기에 그 부르심도 하늘로부터 와야 했다. 또한 사람을 대표하기에 본래는 온전한 사람이어야 했다. 대제사장으로 부름 받으신 예수는 온전한 사람이었다. 온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땅에서 난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이 출생하는 방법으로 태어나서 모든 인간처럼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 제사장이 흠 없는 속죄제물을 드리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어야 하셨다. 그렇게 흠 없는 완전한 생애를 요구받으셨기 때문에 그는 모든 육신이 걸어가는 길을 걸으셨다. 고난 가운데 순종을 배우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전하게 되셨다. 예수님이 온전하게 되셨기 때문에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이 온전하게 되셨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셨다는 사실을 바울은 독자들에게 관철시킨다. (126.1)
A. 히 5:1~10, 제사장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그리스도
B. 히 5:11~14, 단단한 식물을 먹고 선악을 분변하는 장성한 자가 되라
(126.2)
 A. 제사장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그리스도(5:1~10)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히 5:1) (127.1)
(왜냐하면)
 원문의 ‘왜냐하면(헬, 가르)’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 생략되었다. 4장의 마지막에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를 부연 설명하고 있다. (127.2)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
 율법에는 오직 레위 자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 대표할 사람도 마땅히 사람이어야 하였다. 옛 제도 하에 제사장은 오실 자의 모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도 사람으로 오셔서 제사장이 되셔야 하였다. (127.3)
하나님께 속한 일
 대제사장은 실상 하나님을 대표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베푸시는 정결과 은혜를 얻도록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다리(중보자) 역할을 했다. 본문의 “하나님께 속한 일”이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이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일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권리에 속한 은혜를 베푸는 일들이 사람에게 전가되도록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렸다. 뿐만 아니라 부지런히 질병을 진단하고(레 13, 14장), 정결의식을 행하고(레 14장), 가르치는 일들을 행했다. 옛 언약 하에서 행한 제사장의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였다. (127.4)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히 5:2) (128.1)
 대제사장의 직분은 동정하는 것이다. 목사들의 직분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가슴에 안아 품는 것이다. 죄인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부드러운 말과 태도로 죄인과 함께 고민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제사장의 덕목인 ‘용납’인 것이다. (128.2)
 죄인에게 돌을 던지고 상처 난 말을 하는 것은 제사장의 역할이 아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들을 용납하라고 했는가? 무식한 사람, 미혹한 사람이다. 옛말에 ‘불학무식(不學無識)’이라는 말이 있다. 그 끝에 꼭 ‘놈’자를 붙여 하게 되는 데, 뜻을 풀어보면 ‘배움이 없어 아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의 “무식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그노에오’도 역시 ‘알지 못하다’, ‘이해하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흔히 ‘불학무식한 놈’이라고 하듯이 사람들의 눈에 무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주님은 어떠하셨는가? 또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6, 7).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마 25:40). (128.3)
미혹한 자
 ‘잘못에 빠진 사람’(현대인의 성경), ‘유혹에 빠진 사람’(표준 새번역)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을 제사장이 건져내는 것은 힘에 겨운 일이다. 그러나 동정의 마음, 그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이 죄인을 용납하고 건져낼 수 있는 것이다. (128.4)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
 제사장들도 연약함(weakness)을 가지고 있다. 본문의 ‘연약’(헬, 아스데네이아)은 ‘육신의 연약함’, ‘도덕적 약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당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의 처지를 동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지극히 교만한 마음과 배타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요 7:9). 바리새인의 눈에는 알지 못하는 무지가 저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128.5)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 5:3) (129.1)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죄 있고 연약한 제사장들이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으로 중보 하는 일을 했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마땅히 속죄제를 드려야 하였다. 제사장 자신도 용서받아야 할 죄인의 신분이었다. 제사장 역시 자신의 죄에 대한 두려운 자각이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맞이하는 대속죄일 행사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면밀히 살피고 하나님께 두렵고 떨림으로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129.2)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인간 제사장의 죄 있음과 불완전성을 드러내어 새롭고 무흠한, 즉 완전한 대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