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6 장 봄 절기로 탄생된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속주의 모형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구속사가 예수님에게서 반복되었다. (123.4)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로 오셔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만회하시고 실패를 승리로 바꾸시는 생애를 사셨다. 예수께서 갓난 아이셨을 때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시는 이를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꿈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마 2:13)라는 지시를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이 죽은 다음에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셨다. 이 사건을 마태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15)고 기록하였다. (123.5)
  (124.1)
 구약의 어떤 선지자도 예수님을 애굽에서 부를 것이라는 예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호 11:1)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한 것이다. 호세아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호 13:4). 마태는 호세아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과 구속의 역사를 두고 말한 것을 예수님의 생애에 적용시켜 설명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에서 침례를 받고 광야에서 40년 여행을 시작했으며 오순절 하루 전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께서 애굽에서 나온 사건을 기록했고 마태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침례”(마 3:16~17)를 받은 사실을 기록했고, 4장에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마 4:1~11)을 받으신 사실을 기록했다. 그리고 5~7장까지는 율법을 확대 적용시킨 ‘산상보훈’을 기록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이셨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실패를 했지만 예수님은 세 번의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124.2)
 예수님의 공생애는 A.D. 27년 가을, 씨 뿌리는 시기에 침례를 받으시므로 시작되었다. 3년 반 동안 말씀의 씨를 뿌리는 사역을 감당하신 후에 A.D. 31년 봄, 정확하게 봄절기인 유월절에 “유월절 양”(고전 5:7)이 되셔서 희생을 당하셨다. 그리고 무교절에는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셨고”(눅 23:56), 요제절인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요제단을 드리는 “안식일 이튿날”(레 23:16)에 정확하게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레 23:15) “합 오십일”이 되는 날에 제자들에게 “오순절”(행 2:1) 성령을 부어 주셔서 오순절의 “새 소제”로 제자들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참으로 너무나 정확한 예언의 성취였고, 예수님은 참 이스라엘이신 것이 증명되었다. (125.1)
 B. 봄절기의 성취와 완성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성까지의 절기 경험은 일련의 구속사적 경험이었다. 이것은 참 이스라엘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성취되어 왔고, 오늘날 현대 남은 자손들의 구원의 경험과 구원의 일정이기도 하다. (125.2)
 1. 십자가로 성취된 유월절과 무교절
 1) 유월절은 더 큰 구원을 예시(例示)함
 출애굽의 거국적인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7대 농사 절기를 새롭게 제정하심으로 새로운 구속의 달력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예수님의 구속 사업을 표상하는데 사용하셨다. 유월절을 통한 애굽에서의 구원은 인류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속박에서 구원받을 더 큰 구원을 예시(例示)하였다. (125.3)
 2) 유월절의 원형(原形)이신 그리스도의 몸
 우리는 유월절의 표상(type)을 통해서 원형(antitype)이신 “그리스도의 몸”(히 10:10)을 본다. 유월절에 대한 준비는 성력 1월 10일이 되면 “한 집에 어린양 한 마리”(제임스왕역, 출 12:3)를 준비하고 집안에 누룩을 두루 찾아 제거하므로 애굽에 임하는 심판과 구원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말씀의 등불을 켜고, 죄의 누룩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1월 14일 저녁, 애굽 전역에 장자와 생축의 초태생의 죽음이 임하는 저녁에 구원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피를 문에 바르고, 그 밤에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는 것’(출 12:6~8)이었다. 이것은 오직 구원의 효력이 십자가에서 제공된 “그리스도의 몸”인 피와 살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에 손에 지팡이를 들고 허리를 동이고 신을 신고 곧 떠날 준비를 하였는데 그것은 임박한 해방을 준비하며 긴 여행길을 위해 힘을 얻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26.1)
 3) 무교절은 안식일과 성화된 생애로 기념됨
 무교병은 15~21일까지 한 주일 동안 먹어야 했다. 이것은 애굽에서 급히 나오면서 먹은 “고난의 떡”(신 16:3)으로 그들에게 해방과 안식의 “기념”(출 13:3) 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안식에 들어갈 것을 예표 하는 것이었다. 비록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출 12:34)을 걸쳐 메고 급히 나오느라 고생은 되었지만 이날은 종살이에서 해방을 얻은 안식의 날이 되었다. 그러므로 해방을 얻던 그 날을 “아무 일도 하지 말”(출 12:6)고 “안식일”(레 23:11)로 기념해야 했다. 이것은 죄의 멍에를 메고 있는 인류에게 ‘안식’을 주시는 자가 그리스도인 것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성에서 나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까지 인류의 죄의 누룩을 제거하시는 “고난의 떡”을 드시고 인류에게 안식을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셨다”(눅 23:56). 그러므로 우리도 죄의 누룩을 버리고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히 4:11)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성화된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 죄의 누룩을 제거하고 제공해 주신 무교병과 하나가 되어 죄 없고 성화된 “새 덩어리”(고전 5:7)가 되라는 초청을 받고 있다. (126.2)
 “성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남김없이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 우리가 성화되는 것은, 즉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것은 진리와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3 “성화란 다름이 아니라 자아가 매일 죽는 동시에 또한 매일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이다.”4 (127.1)
 4) 율법을 세우시고 인류의 죄짐으로 돌아가신 그리스도
 유월절 양은 “뼈도 꺾지 말”(출 12:46)고 잡아서 먹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의 뼈도 상하지 않고 돌아가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십자가형을 집행할 때의 관례에 따르면 사형수의 수명을 단축시키기 위해 다리를 꺾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의 무게로 인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아니 하”(요 19:33)였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린양의 원형(Antitype)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127.2)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시는 인성의 골격, 즉 그가 의지하여 사신 율법, 그의 아버지와의 언약 등이 그분의 당하신 무서운 시련과 고통에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말해 준다(요 14:30; 15:10).”5 (127.3)
 5) 유월절이 성만찬으로 기념됨
 예수님께서 친히 유월절 만찬을 떡과 포도주로 기념하라고 하셨다. 성만찬의 무교병은 죄 없는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유월절 식사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잔치의 음식’(마 22:2~4)으로 주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화목제였다. 이것은 또한 요한이 그리스도의 가슴에 기대어 유월절을 먹었던 것처럼 ‘안식’의 의미가 들어 있었다(요 13:23, 25). 그리고 음식을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받아들이는 ‘언약 식사’(covenant meal)였다. 이 언약은 아직도 새 언약 안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언약 식사’를 하늘에서 있게 될 초대로 사용하셨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26:29). 포도즙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유월절 잡수실 것”(마 26:17)을 예비한 것에도 나타난다. 이날에 먹는 떡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이었던 것처럼 포도즙도 발효되지 않은 것이 사용되었다. 떡은 소제의 의미가 있다면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는 전제와 같은 의미가 있었다. (1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