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1장 총론 제3절 “제3의 새 종교”의 특성과 그 유물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그 가운데서 선지자들의 배역(背逆)함이 우는 사자가 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전재(錢財)와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로 그 가운데 많게 하였으며,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聖物)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俗)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安息日)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겔 22:23-26). (48.1)
 1. “제3의 새 종교”의 특성과 그 상징물들
 a. 개요
 A.D. 313년에 내려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 제국의 국가적 차원의 박해가 중지되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자 그리스도인들은 햇빛을 보게 되었다. (48.2)
 A.D. 321년에 반포된 “일요일 휴업령”으로 인해 “불패의 태양”인 아폴로(Apollo)를 섬기는 태양신교와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리스도교를 통합시키기를 원하는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열망에 부응하여, 로마 제국 황실 점성관 율리우스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Julius Firmicus Maternus)와 가이사랴 교회 감독 유세비우스가 어전에서 “일요일” 곧 태양의 날을 매체로 해서 “제3의 새 종교”를 탄생시켰다. (48.3)
 

캔터베리의 주해 달린 시편서에서 인용한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타내는 삽화인데 태양이 기독교의 하나님 되심을 묘사한 삽화.
(48.4)
 여기서 “제3의 새 종교”라는 것은 그리스도교 본래의 유일신교의 그 성질과 태양을 주신으로 하는 다신교의 성질이 서로 섞여져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혼합된 종교 즉 기독교적이면서 태양신교적인 교회, 또는 태양신교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종교 형태를 지닌 교회를 지칭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태양신교”“제3의 새 종교”이다. (49.1)
 그리스도교는 창설되던 때부터 그 본질상 여신(女神)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에, 서양의 이교에서는 여신이 반드시 있어야만 종교라는 것이 성립된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가 모두 그들의 신화에서부터 발생했기 때문이다. (50.1)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작된 “밤하늘의 빛난 별들”에서 유래됐던 그 신화가 이집트 신화와 함께 헬라와 로마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것들을 가미한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남신(男神)뿐만 아니라 여신들이 항상 등장했었고, 또한 그 남신들과 짝지어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남신 보다는 오히려 여신들을 선호했기 때문에 남신전보다 여신전들이 더 많았고 더 크고 화려했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여신전”은 그 규모와 화려함, 그리고 그 웅장함에 있어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명하지 않는가! (50.2)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 사데, 터키
(50.3)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과 여신상. 에베소, 터키
(51.1)
 

아브 심벨에 있는 람세스 2세의 대신전. 주 출입구 위에 태양 호루스신이 양각되어 있음을 주목하라. 이러한 태양 신전의 건축 문화는 성당 건축에 크게 영향을 끼쳤기에 반드시 태양 원반인 장미창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의 새 종교”를 설립하려면, 이 모든 것들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제3의 새 종교”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52.1)
 ① 숭배의 대상은 태양신이지만 기독교적인 것이어야 하므로 그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

 ② 숭배의 대상의 명칭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 실체가 태양이므로 그 숭배의 주기적 예배일은 “태양의 날” 곧 일요일이나 역시 기독교적인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 명칭만은 “주일”

 ③ 이 종교의 명칭은 그리스도교이지만 실질적으로 숭배의 대상은 아폴로 태양신이므로 그 배우 여신이 있어야만 그 골격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 여신의 명칭은 “마리아(Maria)”로 하여 “성 마리아”(Santa Maria)라 개명키로 했다. 그리고 교리(敎理)는 교부 철학(敎父哲學, 성경을 헬라 철학 특히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사상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점성학으로 논증 또는 설명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다가 이교 사상과 신화를 가미했다. (52.2)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상, A. D. 2세기경. 에베소 박물관 소장, 터키
(53.1)
 위에 열거한 그 “제3의 새 종교” 설립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자 중에서 그 누가 감히 선뜻 이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제3의 새 종교”를 설립하는 실체였던 “흑암의 권세자” 사단은 매우 지혜스럽게 간계를 꾸며냈다. 그는 우선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로 하여금 “제2차 유대 전쟁”(A.D. 132-135)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 곧 “반 유대주의”(Anti-Judaism) 감정을 일으켜서 안식일에 대한 혐오증을 갖게 하였다.1)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한 점성술을 통해 일요일 신성설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 계략이 적중하여 “니케아 총회”“라오디게아 총회”에서 안식일을 배척하고 일요일을 “주의 부활일”로 준수할 것을 결의하게 했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자들을 “이단”으로 의결하고 추방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2) 그런 다음에 A.D. 430년에 개최되었던 에베소 총회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하나님을 낳으신 이”라는 명목으로 “신의 모”“성모 마리아”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또 성공했다.3) 그 다음은 태양신의 탄신일인 양력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4), “태양신 부활절”“그리스도의 부활절”로 명칭만 고쳤다.5) (53.2)
 이처럼 아주 천천히, 매우 서서히 해내었다. 참으로 놀라운 솜씨다.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곳곳에 기독교적인 여신전인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6))이 로마 이교의 여신전을 대신했고,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여러 곳에 “노트르 담”(Notre Dame7), Our Lady)들이 세워졌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 여러 세대를 교체하면서 교계에서 투쟁과 격돌,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대 살륙과 암투가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그 완성 단계가 바로 중세기의 유럽 “암흑 시대”를 개막했던 때였다. (54.1)
 이 무렵이 스콜라 신학(Scholasticism, 성경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논증하는 학문으로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A.D. 1225-1247년에 완성했다)의 절정기로 “제3의 새 종교”의 꽃이 최고로 만발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제자인 단테(Dante Alighieri, A.D. 1265-1321)는 신곡 (Divana Comedia)을 저술하여 그의 스승의 신학 사상을 잘 대변하였다. 그리고 화가들이 신곡에 나타난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작품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도미니코 디 미켈리노(Dominico di Michelin)의 “단테와 그의 시”이다. (55.1)
 

신곡을 손에 든 단테. 단테가 왼손에 신곡을 들고, 오른손으로 지옥의 문을 가리키고 있다. 지옥에서는 마왕들이 죄인들에게 영겁의 벌을 가하고 있다. 뒤쪽의 7고리의 언덕은 연옥을, 머리 위의 승천은 천국을 나타내고 있다. 화면 오른쪽은 피렌체의 경관으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파라치오 탑이 있다. 도미니크 엘 미켈라노 그림. 1465년. 쳄페라.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소장.
(55.2)
 그리스도교 복음의 순결성을 보전하고, 각종 이설과 오류의 유입을 막아주는 진리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제칠일 안식일(Seventh Day Sabbath)이 폐지되고, 그 예배일을 이교의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로 변경하게 되자 이교의 신화와 점성술, 영혼 불멸설 등등 헬라의 철학과 미신이 그리스도교 내에 범람하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