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3. 야훼—“나 곧 스스로 존재하는 자” (이상적 재판장)
 구약에 가장 많이 사용된 하나님의 성호는 야훼 이다. 이 이름은 흔히 “여호와(Jehovah)”로 표기되었다. 이 칭호는 히브리 성경에 무려 5,500번이나 나타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KJV의 번역자들은 이 말을 GOD (창 6:5) 또는 LORD (창 2:4)로 번역하고 모두 대문자로 표기했다. 그래서 이것은 God(창 1:1)으로 표기된 엘로힘, 또는 엘로아 , 그리고 Lord (창 15:2, 8; 18:3)으로 표기된 아도나이 와 구분이 된다. 후자의 경우는 첫 글자만 대문자이고 나머지는 소문자를 쓰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41.1)
 야훼(Yahweh)란 이름은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가 다시 소개될 때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엘로힘 이란 이름과 함께 나오기 때문에 KJV은 이를 “LORD God”(창 2:4)로 표기했다. 언제든지 성경에 하나님의 새 이름이 처음 나올 때는 반드시 독자가 이미 친숙히 아는 다른 이름과 함께 소개된다. 그래야 독자가 새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이름은 물론 유일하신 신격의 다른 어떤 측면을 나타낸다. 이렇게 소개된 새 이름은 나중에 단독으로 사용되면서 그것이 가진 독특한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41.2)
 성경을 연구하다가 창조의 첫 기사의 첫 주말에 이르면(창 1:1-2:3) “만들어진 것들”(롬 1:20)을 통해 엘로힘 의 특성을 상당히 많이 깨닫게 된다. 성령의 인도로 우리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창세기 2장에서 접할 때, 성령께서는 야훼 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다시 소개하신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보다 깊은 차원의 지식을 얻는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영감은 엘로힘야훼, 이 두 이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창 2:4) 두 칭호가 한 분의 것임을 알게 한다. (42.1)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영도 아래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소프림(soperim)이라 불리는 히브리 학자들이 일어나 정확한 히브리 성경 원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소프림 의 히브리 어원은 사파르(sapar)란 동사인데, 이 말은 “셈하다, 계산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므로 소프림 이란 말은 그들이 원본과 사본의 어떤 줄이나 페이지의 글자를 세어서 그 줄이나 페이지의 중간까지의 글자 수로 필사본의 정확성을 검증한 방법에서 유래되었다. 소프림 야훼 란 이름을 너무도 경외한 나머지 그 이름을 134번 아도나이('Aḏonay)로 고치고 엘로힘 이란 이름도 20번 이상 아도나이 로 고쳐 썼다.1) (42.2)
 이런 변조는 여호와께서 부조들에게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신 사건의 기록을 다룰 때 이루어졌다. 소프림 학자들은 사람이 그분을 상면했을 때, “나의 야훼 여” 하는 것보다 아도나이, 즉 “내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야훼 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경우를 보자(창 18: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야훼 란 호칭으로 불렀으나(3절), 소프림 학자들은 이를 아도나이 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때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42.3)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의 수수께끼
 소프림 시대의 랍비들은 야훼 란 이름은 너무도 거룩하기 때문에 사람이 감히 입밖에 낼 수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야훼 를 히브리 문자로 쓸 때 사용되는 “네 글자”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이라 한다.2) 그래서 그들은 그 이름은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을 부를 때 쓰도록 규정하고, 그것도 그가 대속죄일에 성소의 둘째 칸 지성소에 들어가 기도할 때에 한한다고 못박았다. 옛날 랍비들은 야훼“사람이 감히 말못할 이름”이라 불렀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 이름을 읽거나 말할 때 하—솀(ha—Šem, 그 이름), 또는 아도나이(나의 주)로 발음한다. (43.1)
 혹시 성경을 읽을 때 부주의하여 그 이름을 원명대로 읽거나 발음하는 실수를 막기 위해 옛 필생(筆生)들은 테트라그람마톤 이나 두루마리 성경의 여백에 아도나이 의 모음 기호를 표시해 놓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배경을 모르는 초기의 영어 성경 번역인들은 갈라티누스의 전철을 따라 아도나이 의 모음 부호를 야훼란 단어에 사용되는 네 자음 글자 Y, H, W, H와 결합시켜서 Jehovah란 이름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요즘의 어떤 학자들은 “여호와”야훼(Yahweh)” 또는 야웨로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Jehovah)”에 익숙한 사람들의 귀에는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70인역」을 만든 이들은 이 이름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대부분 퀴리오스(kurios)란 말로 옮겼다(단, 잠 29:26에서는 데스포테스[despotēs]를 썼으므로 유일한 예외). 퀴리오스(kurios)는 “주(主)”란 말이다. 영어 성경은 그 전통을 전수하여 LORD로 썼다. (43.2)
 야훼 의 약칭인 는 출애굽기에 두 번 나오고(출 15:6; 17:6), 이사야에 3번, 시편에 35번 나온다(예: 시 77:11; 89:8; 등). 성경 독자들에게 야 는 익숙한 이름이다. 할렐루야( 를 찬양하라)의 마지막 음절이 인 것처럼 엘리 (나의 하나님은 다), 아도니야 (내 주인은 다)도 로 끝나는 이름이다. (43.3)
 야훼 의 뜻
 야훼 의 의미와 어원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상면했을 때 하나님의 하신 말씀에서 발견된다. 모세에게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을 영도하라는 사명을 주실 때(출 3:6), 엘로힘 은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스스로 존재하는 자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 곧 스스로 존재하는 이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15). 그런데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존재 동사의 형태 때문에 이 이름은 “나는 곧 내가 되고자 하는 대로 되는 자” 또는 심지어 “나는 곧 내가 만드는 대로 되도록 만드는 자”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시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런 모든 의미의 혼합적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야훼 란 이름은 그러므로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절대적 존재임을 말할 뿐 아니라 그는 자기의 원하는 대로 자기의 백성이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정해진 이상에 도달하게 만드시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계시한다. 야훼 는 그러므로 절대적 촉진자(促進者)의 이름이다. (44.1)
 히브리어의 “나 존재한다(I am)”는 몇 곳에서 “나 ... 되리라(I will be)”로 번역되었다(창 26:3; 31:3; 출 3:12). 그러나 그것은 현재형으로 번역해도 좋다(헬라어 성경의 요 8:58; 행 18:10을 보라). 야훼 란 이름은 “항상 계신 이,”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스스로 존재하시는 이,” 만물을 존재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신 이를 주목하게 한다. 프랑스어 성경은 이 이름을 레테르날(“L'Éternal” [영원하신 이])로 번역했다. 야훼 란 이름은 인격적이고 영속적인 하나님, 그러므로 예측이 가능한, 자기 의지를 소유하신, 변치 않고 영원하신 분임을 암시한다. 그의 존재는 질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므로 그분 외에는 아무도 “나 곧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언명할 자가 없다. (44.2)
 자신이 소유한 모든 미덕과 특성의 궁극적 완전이신 야훼 는 그러므로 이상적 존재이다. 그가 미칠 수 없거나 결여한 미덕은 없고, 그분 외에는 선(善)이 있을 수 없다. 그의 존재, 그의 의지는 지고(至高)하다.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그는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성품을 충만히 소유하게 되기를 바라신다(벧후 1:4).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거룩하게 될지니라. 이는 내가 거룩함이니라”(레 11:44)는 말씀으로 그는 우리에게 목표를 제시하시며 격려하시고 도전하신다. (45.1)
 오 나의 하나님, 주의 이상을 내 생애 최고의 목표로 삼기 원하오니 나에게 강력한 의지를 허락하옵소서. (45.2)
 야훼 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선언하셨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의 성품을 온 인류가 본받아야 할 이상(理想)으로 정하신 것이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실 때 그는 자신의 “형상”을 모델로 삼으셨으므로 인간 남녀들은 그를 전형(典型)으로 삼고 날마다 자라나야 했다. 그러므로 창조자와 본(本)이신 그는 우리에게 “너희는 거룩할지니라. 이는 나, 야훼 너희 엘로힘 은 거룩함이니라”(레 19:2; 11:44)고 말씀하신다. (46.1)
 그러므로 모델이신 당신의 형상을 벗어난 인간의 모든 이탈 행위에 대한 심판은 그분만이 하실 수 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야훼 의 사자”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을 조사하러 가는 길에 두 동행자와 함께 그의 장막에 들렀을 때 부조는 그가 바로 야훼 이심을 알아보고 그를 “온 땅의 심판자”(창 18:25)란 호칭으로 불렀다. 성경에서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최초의 사례이다. 야훼 는 구원의 드라마에 언제 어디에 나타나시든지 그분은 건설적 비판자 또는 최후의 심판자로서 나타나셨다. 그는 사람의 행위를 살피고 시험하시며 표준을 정하시되 모든 것을 당신의 온전하신 성품을 토대로 해서 결정하신다. (46.2)
 유대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랍비로 알려진 11세기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그 옛날 이미 말하기를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모든 이름은 그가 이루신 행적의 메아리인 동시에 그 행위의 어떤 국면을 주목하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달리는 헤아릴 수 없는 신격의 특성과 본질,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서 발견된다(롬 1:20)고 갈파한 바울의 말은 이 예리한 통찰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야훼는 예외적이다. 이 이름은 그의 전 존재와 그의 모든 충만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46.3)
 자신을 위대하신 “나”로 소개하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그가 어떤 분인지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야훼 이다”(창 15:7; 출 6:2, 6, 8), “나는 엘로힘 이다”(창 46:3)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영감의 기록인 성경은 그 밖에도 그분이 누구인지, 그분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야훼 는 자기를 무엇이며 누구라고 말씀하셨는가? “나는 ...” [아브라함의] 방패이다(창 15:1), 전능자이다(창 17:1; 35:11), 조상의 하나님이다(창 28:13; 31:13; 출 3:6),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출 6:7, 외 30번). 치유자(출 15:26), 질투하는 하나님(출 20:5; 신 5:9), 은혜를 베푸는 자(출 33:16), 거룩한 자(레 11:44; 20:26),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자(레 11:45), 성결케 하는 자(레 20:8; 21:8; 22:32), 분리시키는 자(레 20:24), 구원(시 35:3),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화(애 2:1), 죄를 도말하는 자(사 43:25), 처음과 나중(사 41:4; 48:12), 주와 구속자(사 60:16), 선하신 주(렘 31:12), 등, 그 밖에도 많은 이름으로 그는 자기를 우리에게 알리신다. (46.4)
 “I AM (나는 존재한다, 나다)은 영원한 임재를 뜻하며, 그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이다. 그에게는 아득한 옛날의 역사적 사건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먼 훗날의 일들이 현실처럼 생생하다. 우리는 하루 앞을 못 보나, 만일 본다면 우리의 영원한 복리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신 (I AM)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연습할 기회를 주신다”(MS 5a, 1895).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실 때 두렵고 위엄 있는 심판자요 법을 주신 이일 뿐 아니라 당신의 백성을 동정하는 수호자로 자기를 나타내셨다”(PP 305). (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