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부활만이 죽음을 저지할 것이다.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은 침묵 중에 있다 ∙∙∙그들은 자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 일어나 영광스러운 불멸을 입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50). (411.6)
따라서 죽음은 의인에게 있어서 두려운 경험이 아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마치 순간의 일처럼 말씀하셨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며 한 순간의 침묵과 어두움에 불과한 것이다.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으며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요 8:51, 52; 골 3:4).”(시대의 소망, 787). (411.7)
B. 영혼의 불멸에 대하여
영혼 불멸의 교리는 상당한 주의를 끌고 있고 또한 거짓되고 위험할 만큼 현혹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411.8)
그 교리는 사탄에게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이 구절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술주정뱅이 암논이 죽은 즉시 복된 곳으로 가서 거기서 순결해지고 죄 없는 천사들과 교제할 자격을 얻게 된 증거가 된다고 한다. 그것은 육신적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참으로 적절하게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이것은 사탄 자신이 만든 것으로써 그의 일을 효과적으로 해주는 교리이다. 이런 교리로 말미암아 죄악이 편만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각 시대의 대쟁투, 539). (411.9)
이 교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죽음 후의 의식작용과 죽은 자의 영이 산 자와 교통하고 있다는 교리는 성경상 아무런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론들이 진리로 주장되고 있다.”(복음전도, 603). (41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리는 그리스도교회 속에 잠입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와에게 말한 뱀의 선언은 영혼 불멸에 관한 최초의 설교였다 그러나 오로지 사탄의 권위에 기초를 둔 이 주장이 그리스도교계의 강단에서 반향되고, 마치 우리의 첫 조상이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과 똑같이 인류의 대다수가 그것을즐겨 받아들이고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533). “영혼 불멸설은 로마교가 다신교에서 가져와 그리스도교로 들여보낸 거짓 교리들 중 하나였다. 마르틴 루터는 그것을 ‘로마 법왕의 교령의 쓰레기더미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기괴한 이야기’(E. Petavel, The Problem of Immortality 255)로 분류했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한 말을 그 종교 개혁자는 다음과 같이 주해한다. ‘또 다른 곳에서도 죽은 자는 아무 감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는 의무도, 과학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솔로몬은 죽은 자가 잠을 자고 있으며 아무런 감각도 없다고 판단한다. 죽은 자들은 일단 누우면 날이나 해가 가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깨어날 때에 그들은 잠깐 동안 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Martin Luther, Exposition of Solomon’s Book Called Ecclesiastes 152)”(각 시대의 대쟁투, 549). (412.1)
C. 죽음의 패배
죽음의 해독제는 부활과 그 능력이다. (412.2)
“이와 같이 이 여인의 믿음은 보상을 보았다. 크신 생명의 시여자 그리스도께서는 여인의 아들을 살려 그에게 돌려주셨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곧 죽음이 그 쏘는 힘을 잃고 무덤이 그가 주장했던 승리를 빼앗길 때에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선지자와 왕, 239). (412.3)
만약 의인들이 죽음 후 즉시 하늘로 승천한다면 부활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만일 4천년 동안 의인이 죽을 때에 즉시 승천하였을 것 같으면, 바울이 어떻게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부활은 전혀 필요 없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46, 547). (412.4)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과 사망의 열쇠를 쥐고 계신다. “미구에 몸소 십자가에서 죽으실 그는 죽음의 열쇠를 잡으시고 무덤의 정복자로 서셔서 영생을 주실 수 있는 그의 권리와 능력을 주장하실 분이었다.”(시대의소망,530). (412.5)
오직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살아나는 의인들만이 승천하여 결코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옆에는 예수와 친밀히 이야기하고 있는 두 명의 하늘 거민이 있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야기 한 모세요 그리고 아담의 자손 중에는 다른 한 사람에게 밖에는 허용되지 아니한 귀한 특권, 다시는 죽음의 권세 아래 굴복하지 아니하는 귀한 특권을 받았던 엘리야였다.”(시대의 소망, 421). “살아남은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였다. 그들은 이제 죽지 않을 몸으로 바뀌어져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45). (412.6)
승천도 멸망도 당하지 않는 자들은 죽음 곧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 (412.7)
“아담이 범죄함으로 죽음이 온 인류에게 이르렀다. 모든 사람은 빠짐없이 무덤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구원의 계획으로 모든 사람은 그들의 무덤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행 24:15).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러나 이렇게 부활하는 자들 중에는 뚜렷이 구별되는 두부류가 있다. ‘무덤 속에 있는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 생명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계 20:6)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한 자들은 범죄의 형벌, 곧 ‘죄의 삯’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되, 그 기간과 정도는 다르나 최종적으로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자비에 모순되도록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간직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한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취하신다. 한 영감의 기자는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옵 16)고 선언한다. 그들은 오명(汚名)으로 덮인 채 소망 없는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들어 간다.”(각 시대의 대쟁투, 544, 545). (412.8)
그러나 의인들은 그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음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413.1)
“사람이 죽을 때 의인은 상급을 받고 악인은 형벌을 받는다는 말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족장들과 선지자들도 그런 증언을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사도들도 그런 일에 대하여 암시조차하지 않았다. 성경은 사람들이 죽는 즉시 승천하지 않음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부활할 때까지 자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참조 살전 4:14; 욥 14:10-12).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는 바로 그날에 그 사람의 생각은 없어진다(참조 전 12:6).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은 침묵 중에 있다. 그들은 해 아래서 행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피곤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복된 휴식이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길거나 짧거나 간에 단지 일순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깨어 일어나 영광스러운 불멸을 입을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죽음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2-55). 그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그들은 그의 생각을 그치게 되었던 그 순간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감정은 죽음의 고통이었고 마지막 생각은 그들이 무덤의 세력 아래 넘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때 제일 처음으로 일어나는 그들의 기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승리의 함성 가운데 메아리칠 것이다. ‘죽음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각 시대의 대쟁투, 549, 550. (4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