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자들의 모함을 뒤늦게 알아 차린 왕은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렀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6:14). 집행을 촉구하는 고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침내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고 입구는 돌을 굴려다가 막았으며 왕의 어인과 귀인들의 인으로 봉해졌다. 이러한 사자굴은 고대 페르샤 왕들이 스포츠로 즐기던 사냥을 위해 사자들을 가두어 둔 장소로 여겨진다.
페르샤왕 다리우스 1세의 원추형 인장의 부조에도 사자 사냥의 그림이 나타나 있다. Wiseman, 75 . 또한 사자굴을 인봉(印封)한 방법은 고고학에서 발굴된 다른 경우로 미루어 보아, 입구를 평석(平石)의 둥근 돌을 굴려 막은 뒤 가장자리를 석회 반죽을 떡 시루 붙이듯 봉하고, 젖은 석회 위에 원통형 인장을 누르면서 굴리면 부조(浮彫)를 남기게 되어 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왕은 다니엘이 사자들에 의해 해를 받지 않을 경우 고발자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보안조치를 취한 셈이었다. 반면에 고발자들은 왕이 그의 충실한 종을 구출하기 위해 저희도 모르게 다른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의 인(印)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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