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7 장 위대한 노년(단 6장)
 즉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30일 신(god for a month)이 되라는 제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의 위치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한다. 면장은 군수가 되고 싶고, 군수는 도지사가 되고 싶어한다. 도지사는 장관이 되고 싶고, 장관은 총리가, 그리고 총리는 대통령 되는 것이 싫지 않은 것이다. 왕이나 대통령은 어떠한가.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마침내는 자신이 신(神)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루스벨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했던 하늘에서의 반역 이후(사 14:13), “하나님과 같이”되라는 속삭임이 최초의 인간을 타락시킨 유혹이었으며(창 3:15), 역사적으로는 황제 예배와 영웅 숭배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사실은 각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 숭배의 보좌가 있다는 사실이다. (116.64)
 자기 숭배의 함정에 빠진 왕은 지체없이 「메대와 바사(페르샤)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 · ·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다(6:9). 그러나 왕은 이 법령이 왕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함이 아니요, 충성된 다니엘을 제거하여 자신에게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하는 조신(朝臣)들의 사악한 계교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자기 숭배는 진정한 자기 향상(向上)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함정에 빠진 왕은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였」으나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메대와 페르샤의 법은 일단 반포되면 취소나 변경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에 1:19, 8:8와 다리우스II세가 카리데모스(Charidemos)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자신의 판결이 잘못임을 알고 후회했으나 취소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등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 다니엘서 주석, 152. 자기 숭배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어리석음이다. (116.65)
 나. 위대한 신앙인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116.66)
 가) 변함없는 신앙
 자신이 엄연히 나라의 총리인데도, 신앙과 민족적 이질성(異質性)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저의가 분명한 법령을 통과시켜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살벌한 현실에 처해진 다니엘의 느낌과 처신은 어떠했는가.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초조했는가. 자기 연민(憐憫]이나 비하감(卑下感)의 그림자는 조금도 없이, 더더구나 외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 · · 전에 하던 대로」 변함 없이 행동한 것이다. (116.67)
 원수들이 자신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감시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온종일 국무(國務)에 충실했으며, 여전히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으며, 두려워하는 대신 여전히 감사로 가득찬 일과를 보냈다. 세상이 보든 말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는 항성(恒星)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구름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봉우리처럼, 다니엘은 인간 세상의 기상(氣象)변화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전천후(全天候) 인간이었다. (116.68)
 서기 155년 2월 23일 안식일, 사도 요한의 제자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Polycarp)이 86세의 고령으로 개회 중인 서머나의 경기장에 끌려 나와 화형(火刑)으로 위협받으며, 총독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는 얼마나 분명한 대답을 했었는가. 「나는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겨 왔는데, 그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한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지 않으셨으니 내가 어떻게 나의 구주이시요, 주님이신 나의 왕, 그분을 모욕할 수 있겠오」 Ante - Nicene Fathers, vol. 1, 31. 참으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 26:3, 4). (116.69)
 「.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5-8). (116.70)
 느브갓네살 앞에서도, 벨사살 앞에서도, 곧바르게 섰던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찾는 원수 앞에서도, 그리고 종래에는 사자굴에 던지워진 후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꼿꼿이 섰다. 리비에르가 그린 그림 가운데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팔을 뒤로 묶이운 채, 여전히 꼿꼿이 서서 늠름한 자세로 사자들의 포효(咆哮)를 압도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명 깊다. 하늘이 무너져도 굳게 서야 하는 마지막 성도의 귀감(龜鑑)이 아닌가. (116.71)
 나) 값 비싼 기도
 다니엘에게 이른 치명적인 도전은 바로 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30일 간은 하나님께 기도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니엘은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30일 간 만 기도하는 일을 중지한다고 큰 일이 있겠는가. 아니면 기도하는 자세를 바꾸어 무릎을 꿇고 드러나게 하는 대신 명상으로 대신하거나, 침상에서 은밀히 기도드릴 수도 있지 않는가. 위험스러운 기도를 드리다가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기도를 중지하고서라도 사는 것이, 포로 중에 있는 동족들을 위해서도 더욱 큰 유익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형식을 고집하는 것은 과잉(過剩) 신앙이 아닌가. 그러나 다니엘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116.72)
 「다니엘은 금령을 만드는 그들의 악의에 찬 의도를 재빨리 알았으나 그의 행동을 조금도 바꾸지 아니하였다. 그에게 기도가 가장 필요되는 때인 지금에 왜 그가 기도하기를 멈출 것인가. 차라리 그는 생명 그 자체를 버릴지언정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그의 소망을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방백들의 수령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였고 기도의 시간에는 그의 방에 들어가 평상시의 습관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문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그의 소원을 아뢰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요하지 아니하였다. 그를 멸하려고 음모하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는 하늘과 자기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나타내는 것 까지라도 허락하고자 하지 않았다」(선지자와 왕, 517). (116.73)
 다니엘이 받은 도전은 기도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출 32:26)는 모세의 요구처럼, 그리고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깊은 뜻이 드러나 있다. 다니엘은 공공연한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야 한 것이다 (롬 10:10). (116.74)
 「이와 같이 선지자는 담대하나 침착하고 겸손하게,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우상숭배자들에게 둘러싸인 다니엘은 이 진리에 대한 충성스러운 증인이었다. 의에 대한 다니엘의 굴하지 않는 집착은 그 이교의 궁정의 도덕적 흑암 가운데 빛나는 밝은 빛이었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인의 담대함과 성실함의 값 있는 모본으로 오늘날 세상 앞에 서 있다」(선지자와 왕, 517). (116.75)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7, 18). (116.76)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그것은 영적 능력의 비결이다. 다른 어떤 은혜의 수단도 이를 대신할 수 없으며 영혼의 건강을 보존할 수도 없다」(GW, 254). (116.77)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두움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청하실 때에 그 주신 바 특권을 사용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정로의 계단, 76). (116.78)
 「그런데 기도를 게을리하고는 하루라도 한 순간이라도 안전할 수는 없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에는 특별히 기도할 것이다」 (각시대의 대쟁투 하권, 349). (116.79)
 죄짓는 사람은 기도하기를 그칠 것이며, 기도드리는 사람은 죄짓기를 그칠 것이다. 다니엘은 이제 자신의 생명과 바꾸게 될 값 비싼 기도, 그러나 가장 위대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신앙에서의 기도의 효능(效能)과 중요성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다니엘에게 기도가 그토록 시급하고 중요했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가. (11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