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7 장 위대한 노년(단 6장)
 ② 벨사살이 죽던 밤에 나라를 “얻었”으며(단 5:31),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었”다(단 9:1). (116.17)
 ③ 가계(家系)는 메대족이었다(단 5:31, 9:1, 11:1). (116.18)
 ④ 바벨론이 멸망하던 기원전 539년에 그의 나이는 약 62세였다(단 5:31). (116.19)
 ⑤ 그의 통치 첫 해에 관해서만 언급되어 있다(단 9:1, 2, 11:1). (116.20)
 ⑥ 전국에 120명의 방백을 세우고 다니엘을 세 총리 중 수석총리로 임명했다. (116.21)
 나) 고대 역사의 기록
 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아래와 같이 썼다. (116.22)
 「페르샤 왕 고레스와 메대 왕 다리오(Darius)는 그(나보니더스)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 · · 다리오와 그의 친척인 고레스와 함께 바벨론을 함락시켜 바벨론의 통치를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 그는 아스티아게스(Astyages)의 아들이었으며 희랍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다른 이름을 가졌다.」 Josephus, Antiquities, X. xi. 2, 4. (116.23)
 ② 희랍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메대에서는 아스티아게스가 죽은 시악사레스(2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고레스의 어머니 만다네와 남매 관계이기 때문에 고레스에게는 숙부가 된다. 고레스는 어린 시절 외조부인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의 궁전에서 자랐기 때문에 숙부인 시악사레스(2세)와는 친숙하였다. Cyropaedia, i. 3. 1:4. 1, 6-8, 20-22 ; 5. 2.

 후에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뒤 그는 숙부인 시악사레스(2세)의 딸 카산다네(Kasandane)와 결혼하였으며 장인은 결혼선물(dowry)로 나라(메대)를 사위에게 주었다. 다니엘서 주석, 162. (116.24)
 이러한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레스는 자신이 메대를 복종시켰을지라도, 메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목상, 숙부인 시악사레스(2세)를 메대 왕으로 세웠다. 바벨론을 함락한 다음에는 그를 장인으로 삼아 당시 나이가 약 40세 안팎인 자기에 비해 이미 노년에 접어든 62세의 장인을 잠시 바벨론의 명예 왕으로 앉힐 수 있었다. (116.25)
 다) E. G White 의 진술
 ① 메대 사람 다리오의 조카였다(선지자와 왕, 500). (116.26)
 ② 고레스는 메대와 페르샤 연합군의 총 사령관이었다(상동). (116.27)
 ③ 다리오는 메대의 군주였다(상동, 532). (116.28)
 ④ 다리오는 바벨론이 함락된지 약 2년 이내에 죽고 고레스가 계승했다(상동). (116.29)
 이상에 비추어 볼 때, 5장 31절6장의 다리오는 시악사레스 2세 임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그의 이름을 다리오(Darius)라고 하였을까. 이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하나는, 다리오(Darius)는 그 자체가 고유명사인 이름이 아니라, 여러 왕들에 의해 채택된 통칭(通稱)인 보통 명사로 “정복자”(Subduer)를 뜻하는 말이요 보좌 명칭(Throne name)이라고 한다. Frederick Tatford, The Climax of the Ages(Grand Ripids :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64), 93. (116.30)
 또한 다리오를 아하수에로(Ahasuerus)의 아들이라고 했는데(9:1), 이 곳의 아들은 손자나 더 먼 자손을 의미할 수 있으므로, 고레스의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가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음이 밝혀졌다. Anderson, 82. 지금까지의 모든 자료를 종합해 볼 때 6장의 다리오는 고레스의 숙부요, 장인인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일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페르샤에 대하여는 7장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116.31)
 다. 메대 사람 다리오 왕의 신원에 관한 견해들
 다니엘 5장 31절, 9장 1절, 11장 1절에 나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가 누구인가에 대하여는 그 동안 많은 견해들이 있어 왔다. 물론 잘 알려진 페르샤의 세번 째 왕인 다리우스 1세(Darius I, 522-486 BC)와는 다른 사람이다. 언급된 이름들로는 William H. Shea, “Darius the Mede: An Update”,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 Autumn 1982, vol. 20, No. 3, 229-247. 고레스가 정복한 메대의 왕이요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Astyages), 아스티아게스의 아들이요 고레스의 숙부이며 장인이기도 한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 고레스(Cyrus) 자신,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 2세(Cambyses II), 고레스의 장군으로 그보다 두 주일 반 앞서 바벨론에 입성한 구바루(Gubaru, 혹은 Ugbaru, 헬라어 표기로 Gobryas로도 부름) C. Mervyn Maxwell, 오만규 역, 멕스웰의 다니엘서 연구(서울: 시조사, 1988), 104, 105. 등이다. (116.32)
 이 여러 후보 가운데 성경의 기사를 모두 충족시키는 역사적 인물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시악사레스 2세와 구바루로 압축되어 왔었다. 실제로 기원전 539년 10월 바벨론을 함락시킨 고레스의 장군인 구바루가 유망하여 윌리암 쉐이(William H. Shea)나 맥스웰(C. Mervyn Maxwell)은 그 가능성을 택했다. Ibid. (1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