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잘 되고 사업이 잘 될 때처럼, 자식이 잘 못되고, 사업이 망해도 하나님을 변함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거래가 아니고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려내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것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하나님)를 경배하라”(14:7)는 세 천사의 기별의 요지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선택해야 할 대쟁투의 대쟁점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이웃을 거래 아닌 관계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117.2)
 8. 영원한 신앙 고백, 영원한 예배
 요한계시록 13장의 내용은 다니엘 3장 사건의 재연(再演)이요, 표상(表象)입니다. 모두 바벨론에서 겪는 남은 백성의 영적 경험입니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는 말로 요약된 바, 참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단의 대응(對應)이요 보복입니다. 다니엘 2장에서 꿈 해석의 결과로 사단의 왕국인 바벨론 왕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표로, “느부갓네살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단 2:46)는 어처구니 없는 패배를 당한 후, 이에 대한 대책으로 다니엘 3장의 금 신상 제작과 금 신상 제막식을 계기로 한 범바벨론적인 금 신상 경배대회가 개최됩니다. 모든 계급의 모든 사람은 주저없이 금 신상에게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이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순간에 하나님의 남은 자손을 표상하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들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118.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118.2)
 풀부불이면 모든 것을 끝장내리라고 생각했던 왕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왕보다, 바벨론의 신보다, 더 높고 능력이 더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선언함으로써 바벨론의 권위는 다시 한번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 의하여 정면으로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118.3)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119.1)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잇는 세 젊은이의 다음 번 선언은 참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신앙고백의 극치였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 아옵소서”(But if not, be it known to you, O king). 이 말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왕에게서나 풀무불에서 우리를 능히 건지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를 건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그냥 죽게 되더라도, 풀무불에서 사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길이어서, 설사 우리가 죽게 된다 해도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19.2)
 참으로 하나님께 대한 조건 없는 절대 순종의 고상한 모본으로 결과를 묻지 않고 부르심에 응한 아브라함의 신앙(히 11:8)을 방불하게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일 ∙∙∙ 을 해 주시면 (If ∙∙∙ , then ∙∙∙ ) “내가 ∙∙∙ 을 하겠나이다”라는 팥죽 장사하던 야곱의 실리주의(實利主義)적인 조건부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지 모른다(창 28:20~22). (119.3)
 유프라데스강을 이용한 무역 상거래(商去來)로 살아가는 상고(商價))의 나라 바벨론에서 우상숭배인 거래예배(去來禮拜)를 단연히 거절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if not]”의 신앙고백에 드러난 관계예배(關係禮拜)를 위해 목숨을 내건 세 젊은이들이, 바로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賣買)를 못하게”(계 13:17) 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계 13:15)하는 마지막 때 대쟁투에서 끝까지 충성한 남은 자손들인 것이다(계 12:17).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욥처럼 모든 혜택과 거래가 끊어졌어도 끝까지 하나님과의 생명을 나눈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인 예배 관계를 유지한 그들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값 없이 물려주는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자녀의 신분으로 값 없이 물려받게 되어(롬 8:16, 17) 영생과 천국을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를 고집스럽게 거절한 느브갓네살이 다니엘 4장에서 자신을 소처럼 생각하는 정신병[boanthropy]에 걸려 짐승처럼 행동했듯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짐승의 속성을 지닌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이다(느브갓네살은 회복되었으며 마침내 구원을 경험함).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의 예배 시련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남은 자손이 겪을 경험이요, 그들이 경험한 관계예배(關係禮拜)가 우리가 어떻게 대가와 희생을 치르더라도 고수해야 할 진정한 예배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주적인 대쟁투에서의 영원한 승리요, 사람의 본분인 영원한 예배요, 사람이 사는 목적인 영원한 행복인 것이다. (119.4)
 9.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120.1)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늘에 가도록 해주시기 때문이 아니고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해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120.2)
 오 나의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날 안아주시고

 나의 죄 위해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어

 많은 고난을 보셨습니다. (120.3)
 질고와 슬픔 무한히 겪으시고

 고뇌의 피와 땀 흘리시며,

 영원한 죽음까지, 당신을 반역한 날 위해 당하셨습니다. (121.1)
 오 복되신 나의 주님, 그리스도시여

 나 어찌 주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을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옥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121.2)
 무슨 이득을 보려거나

 상을 바라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 사랑의 주님

 당신께서 친히 나를, 나를 사랑하시는 연고랍니다. (121.3)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렵니다. 찬양하렵니다 ∙∙∙

 당신은 나의 사랑의 하나님

 나의 영원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