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요약하면, 우리는 창세기 2:24에 기록된 결혼의 신성한 제도로부터 제2의 원칙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몸이 되”는 결혼 언약을 실감있게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의 배우자에게 충성과 헌신을 약화시키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피하며, 자신의 짝과 즐겁게 연합하여야만 한다. (33.2)
 한 몸이 됨
 결혼 언약의 셋째 기본적 요소는 “둘이 한 몸을 이”(창 2:24)루는 것이다. 이 과정을 주의해 보라. 곧 떠남, 연합, 한 몸이 되는 과정이다. 남편과 아내로서 사소한 관계를 버리고 서로 연합하기를 배움으로 그들은 새로운 “한 몸”이 된다. (33.3)
 “한 몸”이라는 구절은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빈번히 근본적인 성적 결합으로 이해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영어의 혼합어인 모든 사람(every body)과 매우 흡사한데 우리가 모든 사람이란 영어(everybody)를 사용할 때 오직 육체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격체인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혹은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창 6:17, 7:21)를 멸하신 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뼈와 살이 있는 육체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이와 비슷하게 “한 몸”(창 2:24)이 되는 것은 기능적 개체로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루폴드(H. C. Leuprold)는 한 몸이 되는 것은 “관심과 목적의 공동체로서, 교제를 나눌 때 가져오는 연합의 완성은 마치 다른 한 인격과 똑같음을 뜻한다”5고 말한다. (33.4)
 그들이 “한 몸” 즉 한 기능체로서 두 사람이 서로의 생애에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한 적이 있는 신학자나 과학자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남을 우리는 안다! 결혼 생활을 여러 해 하는 동안 부부는 하나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들은 정신과 마음 그리고 소양에 하나가 된다. 이것이 왜 이혼이 쓸데없는 것인지를 말하는 이유이다. 이혼은 두 사람을 서로 각자로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강난 두 조각으로 남게 한다. (34.1)
 “한 몸”은 결혼의 육체적 혹은 성적인 면을 말하기도 한다. 바울은 창녀와 합하는 자의 성교를 말하면서 한 몸이 된다고 분명히 표현했다(고전 6:16). 그러나 성교 그 자체가 남녀를 신비하게나 감정적으로 만들거나, 영적 연합을 자동적으로 하나 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영적인 교제 없이 나누는 육체적 성교는 종종 사람을 갈라놓고 이간하여 서로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와 같이 성교 그 자체가 진정한 하나를 이루게 하는 것은 아니다. (34.2)
 성서적 “한 몸”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결혼에 있어서 성교는 결혼 연합의 완성의 행동으로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되어야 한다. 성교가 진정한 사랑, 존경, 그리고 헌신의 표현이 되지 않을 때 그것은 상대편의 정신적, 영적인 것과는 별개로 단지 육체적 접촉일 뿐인 것이다. 성교는 결혼한 배우자들 사이에 몸과 정신과 영적인 것이 전적으로 연합되어 하나됨을 바라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34.3)
 점진적 과정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결혼 서약을 교환할 때 자동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인격체는 여전히 자유롭고 독자적이며 그들 자신이 원하는 의지대로 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 들이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 사는 동안, 그들이 하나 되기 위하여 애쓰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개성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서로의 차이점이 그들을 나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절대적이 아닌 보완적 위치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여전히 각자인 것 같으나 그들은 연합된다. 남편은 아내를 그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는데, 그 이유는 남편 자신도 그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차이는 서로가 하나됨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데,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자기모순이 아닌 보완적 존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35.1)
 결혼한 부부는 자녀에게서 자신들의 “한 몸”이 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녀 안에서 부부는 나눌 수 없는 연합된 영구적인 한 사람이다. 우리의 세 자녀들(Loretta, Daniel, Gianluca)은 나와 아내 두 사람의 모습을 함께 닮았다. 내가 나의 모습을 나의 자녀에게 그대로 재생하거나, 나의 아내가 그녀의 형색을 똑같이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녀들은 나의 것이며 또한 나의 아내의 것이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놀랍고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우리 둘이 가진 어떤 점에 대한 모음같이 빼닮은 것이다. 자녀에게 생물학적으로 일어난 변화는 새로운 기능적 개체로서 “한 몸”을 점차로 이루는 두 사람인 부부의 관계에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것이 혼외 성관계가 왜 부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한 몸의 관계를 파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35.2)
 연속성
 “한 몸”이 되는 것은 또한 “계속성”을 내포한다. 부부가 연계결혼으로 결코 한 몸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이 왜 연계결혼의 일부일 처제의 현대 풍습을 부도덕으로 거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것은 영원한 “한 몸”의 관계를 계발하는 결혼에 대한 성서의 목적을 망가뜨린다. “한 몸”의 원칙은 일부다처제나 혼외의 모든 종류의 관계를 배척하는데, 그 이유는 어느 남자도 하나 이상의 여자와 “한 몸”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여인 이상을 취함으로 “한 몸”의 원칙을 위반한 구약의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아픔을 당해야 했고, 그들의 아내들이 질투하거나 오용하고, 타락시키고 증오하게 되므로 그들 가족들에게 온갖 종류의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36.1)
 요약하면, 창세기 2:24에 기록된 신성한 결혼 제도로부터 나오는 셋째 원칙은 “한 몸”의 기능적 개체가 되기 위하여, 부부는 그들의 차이점이 서로를 하나로 만드는 법을 배워야만 하고, 그들 서로간의 성적 표현들은 오로지 서로만을 위하여 보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