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3 장 신약과 재림소망
 레벌레이션(Revelation). 두번째 용어인 레벌레이션(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의 번역)도 비슷하게 그리스도의 현재적 나타남(계 1:1; 롬 16:25; 고전 14:26)과 그분의 두 번째 강림시의 미래적인 계시(살후 1:7; 벧전 1:7, 13, 4:13; 고전 1:7) 모두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 (49.1)
 어피어링(Appearing). 세번째 용어인 어피어링(헬라어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도 앞에 나온 두 용어와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에서 현재의, 볼 수 없는 출현(딛 2:11, 3:4; 딤후 1:10) 과 그분의 강림 때 미래에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출현(살후 2:8; 요일 2:28)을 의미한다. 두 의미가 디도서 2장 11~13절에 함께 등장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has appeared)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the appearing)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49.2)
 이 세 단어에 담겨 있는 이중적 의미는 신약 신자들에게 있어서 미래의 강림이 현재 매일의 생애 속에서 열정적으로 느껴진 바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미래에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출현과 계시와 임재에 대한 기대는 그분의 볼 수 없는 임재의 현재적 경험의 결정이요 완성으로 간주되었다. (49.3)
 2. 구약 소망의 성취 속에 있는 통일성
 초림과 재림 사이의 통일성의 의미에 대한 의미 심장한 다른 암시를 구약 소망 성취에 대한 신약적 이해를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우리는 2장에서 그러한 소망이 적어도 중요한 세 사건 즉, 죄인 위에 임할 심판, 신실한 자에 대한 축복, 그리고 악한 세력의 파멸과 그 뒤를 이은 새롭게 될 세상 등의 사건들이 실현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구약의 소망에 대한 각각의 국면이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처음으로 성취되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으로 나타나 있다고 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49.4)
 마지막 심판. 불순종하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심판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 상의 죽음으로 발효되었으나(요 5:24, 12:31, 9:39, 3:19; 막 10:45),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행 17:31; 고후 5:10; 롬 14:10 참조) 정하셨다. (49.5)
 마지막 축복들. 역시 생애의 마지막 축복들도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딤후 1:10; 요 10:10, 17:3; 11:26 참조)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신실한 자에게 주어졌으나, 여전히 우리의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게 될 때는 그분의 재림의 때이다.(고전 15:53). (49.6)
 마지막 멸망. 같은 방법으로, 악한 세력의 최종적 굴복과 거기에 수반되는 새로운 창조가 그리스도의 초림시에 무질서와 질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통하여(눅 10:17, 18; 골 2:15; 막 3:23~27; 엡 1:20~23; 고후 5:17) 이미 일어났으나, 여전히 악한 자의 멸망과 신자에 대한 보상은 인자의 재림시에 있을 것이다(마 25:31~45; 고전 15:24). (49.7)
 디데이(D—day)와 브이—데이(V—day).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초림과 재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예증하기 위해 적절한 군사적인 예를 들고 있다.4 결정적 전투(D—day)는 전쟁의 초기 단계에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으나 그 전쟁은 승리의 날(Victory Day)까지 확정할 수 없는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디—데이는 그분의 초림시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적들에게 가해진 결정적인 패배를 대표한다. 브이—데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있을 원수들의 마지막 항복과 승리의 축제를 나타낸다. 재림시의 최후의 승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결정적인 전투가 이미 초림시에 그리스도에 의해 승리하였다는 흔들리지 않는 보증으로 고무되고 있다(골 2:15). (50.1)
 이러한 예들은 초림과 재림 사이에 깔려 있는 개념의 통일성이 신약 성경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둘 다 구약의 강림 소망의 성취로도 본다. 그러므로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통일성은 궁극적으로 강림의 소망에 대한 신약과 구약의 이해 사이에 존재하는 더 큰 통일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50.2)
 3. 성령의 사역을 통한 통일성
 미래에 대한 보증. 여러 요인들이 현재와 미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깊은 통일성의 의미를 신약 신자들이 표현하고 경험하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오순절—선지자들에 의해 “말일”로 예언된(행 2:16, 17)—에 새 시대로 인도하기 위해 일하셨고, 신자들에게 내세의 축복을 미리 맛보게 하고 또 확신을 주려했던 성령의 사역(事役)이다. (50.3)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승천과 다시 오심의 계곡 사이에 있는 교량으로서 보혜사(保惠師)라 불렀다(요 14:16, 17). 그분의 기능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상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고, 또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며 모든 진리로 인도하고 미래의 일을 선언하는 것이다. (50.4)
 미래에 대한 기대감. 바울은 신자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현재에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성령의 중요한 기능을 강조한다. 안토니 훼케마(Anthony A. Hoekema)는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은 미래를 현재로 연결하는 것을 뜻하며, 그래서 능력과 특권과 미래의 축복들은 이미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기록한다. 신자의 현재의 삶 속에 미래를 실현시키는 일, 즉 현세화 하는 일은 성령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성취된다. (50.5)
 무엇보다도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미래의 상속을 강림(파루시아) 때에 받게 될 것을 확신시켜 준다(롬 8:14~17; 갈 4:4, 5; 엡 1:14).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수확의 첫 열매를 거두는데, 말하자면 우리가 “우리 몸의 구속을”(롬 8:23) 얻게 될 재림시의 다가올 큰 수확의 시작을 경험하게 된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보증을 준다(고후 1:22, 5:5; 엡 1:14)6. (50.6)
 우리의 생애에서 성령의 기능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인쳐 주는 것이며 우리를 “구속의 날”(엡 4:30, 1:13; 고후 1:22 참조)까지 보존하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히 6:5)을 맛본다. 내재하시는 성령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바울은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라고 기록한다. (50.7)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이러한 성령의 다양한 기능은 공동 목표, 즉 신자들이 재림시에 받게 될 더 큰 장래의 축복을 맛보고, 그 확실성을 현재에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재림의 소망과 장래의 영생에 대한 실재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불확실성은 그들의 생애 속에 성령의 영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51.1)
 신령한 것들은 단순한 지적인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영접과 조명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2, 14)고 말했다. (51.2)
 4.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를 통한 통일성
 보혜사. 신약 신자들로 하여금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통일성을 이해하고 경험하도록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에 대한 그들의 신뢰심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지상의 성령의 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와 성령 모두를 파라클레토스(대언자, 보혜사—Parakletos—요일 2:1; 요 14:16, 26, 15:26)라고 부르며 모두가 우리를 위해 중재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암시한다(롬 8:26, 34; 히 7:25). 성령은 지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요 15:26; 16:13, 14; 행 2:33)의 은혜를 중재해 준다.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