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3 장 신약과 재림소망
 제자들의 당혹감. 제자들도 똑같은 혼란을 가졌는데, 예를 들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이해하고 고백하는 데 더디었던 것이 그것이다(마 16:13~16). 그들 중 어떤 이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도 여전히 혼돈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고 했다. 솔직히 부활 후에도 어떤 이는 부활하신 구주에게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는 질문이 시사하듯이 여전히 제자들의 마음속에 불확실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46.4)
 불확실함이 사라짐. 궁극적으로 이러한 불확실함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사라졌으며, 오순절은 제자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한 번의 강림을 묘사하는 듯한 구약의 두 국면, 즉 현재적 성취와 미래의 완성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46.5)
 이러한 이해는 베드로가 성전 뜰에서 오순절날 행한 설교에서 표현되었는 바 그는 담대히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8~20)라고 선포했다. (46.6)
 사도행전의 첫 몇장들은 고대했던 메시야 시대의 현재적 성취와(행 2:23~36, 4:10, 11)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있을 미래의 완성 모두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사도행전 1장 11절에 따르면 승천시에 두 사람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며 안심시켰다. (47.1)
 2. 이미 성취된 것과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
 그리스도의 가르침들. 초림시에 실현된 구원의 현재적 성취와 재림시에 경험되어야 할 영생의 내세적 완성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비록 제자들은 점진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많은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47.2)
 예를 들어 마가복음 10장 29, 3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이 현세에서 받을 보상과 내세에 받게 될 최고의 영생의 선물 사이를 구별하고 계신다.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 30, 16:8 참조).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과 대조되고 있다(눅 20:34, 35).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47.3)
 미래의 성취에 대한 의미를 마태는 분명히 재림과 연관시켜 “세상 끝” 이라는 구절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라고 질문했다. (47.4)
 똑같은 표현이 “세상 끝날까지”(마 28:20) 즉 그의 재림시 하나님의 나라가 설립될 때까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는 예수님의 고별의 약속 가운데서 다시 나타난다. 마지막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막 14:25; 마 26:29 참조). 미래의 완성에 대한 같은 인식이 그리스도의 주기도문에도 나타나는데, 그는 제자들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눅 11:2; 마 6:10 참조)라고 기도하기를 가르치셨다. (47.5)
 신약의 이해. 신약의 남은 부분도 신자들이 메시야의 구원의 현재적 성취와 미래적 완성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분명히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저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겸손한 지상 봉사가 지구를 심판하고 이 세상을 새롭게 하며 영광스럽게 통치하실 여호와 곧 인자의 영광스런 강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약 예언들을 성취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47.6)
 예를 들어 후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8; 빌 1:6 참조), 때로는 “그리스도의 날”(빌 1:10, 2:16), “주의 날”(살전 5:2; 살후 2:2; 벧후 3:10), “큰 날”(유 6; 계 6:17), 더 자주 사용되는 것은 단순히 “그날”(롬 13:12; 살후 1:10; 2:3; 딤후 4:8; 막 13:32) 등으로써 미래를 언급하는 구약의 여호와의 날과 관련이 있는 개념과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47.7)
 마지막 때(사 2:2; 미 4:1; 욜 2:28, 29; 단 2:28)를 언급하는 선지자들이 사용한 “말일”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두 다른 방법, 즉 그리스도의 초림(행 2:17; 히 1:2 참조)으로 시작된 현시대를 의미하는 “말세”(the last days)라는 복수형과, 그분의 재림에 의해 도래될 미래를 묘사하기 위해 “마지막 날”(the last day)(요 6:39, 40, 44, 11:24)이란 단수 형태로 신약에 사용되었는지를 주목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48.1)
 이미 성취됨과 여전히 성취되어야 함. 앞에서 보았던 것은 신약의 신자들이 여호와의 오심에 대한 구약의 약속을 두 가지 방법, 즉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이미 성취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의 재림시에 여전히 완성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48.2)
 그들은 강림하셨던 그리스도를 뒤돌아 보며 우리는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내다보면서 구약 선지자들이 예견한 말일, 곧 마지막 때는 여전히 와야할 것이라고 확증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고대했던 마지막 날, 혹은 말일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그것의 완성은 여전히 미래 곧 재림시에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었다. (48.3)
 제 3 부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통일성
 신약 성경은 초림의 “이미” 성취된 것과 재림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 두 사건들이 서로 다른 일시적이고 기능적이며 또 서로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는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통일되며 계속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가? (48.4)
 신약 성경은 초림과 재림이 실제로는 똑같은 사건, 즉 여호와의 강림의 두 표현임을 풍부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주어졌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48.5)
 1. 복스러운 소망에 대한 용어의 통일성
 초림시에 구원이 성취되는 것과 재림시에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구속의 통일성은 히브리서 9장 28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이 통일된 의미는 특별히 “복스러운 소망”(딛 2:13)을 표현하는 세 용어, 즉 오심(Parousia), 계시(Revelation) 그리고 나타나심(Appearing)이라는 어휘에 의해 잘 예시되어 있다. (48.6)
 파루시아(Parousia). 첫 단어인 파루시아는 헬라말로 “오심”, “도착” 또는 “임재”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이 용어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초림(벧후 1:6)과 그리스도의 재림(살전 3:13, 14:15; 약 5:7, 8; 요일 2:28) 양자 모두를 언급하고 있음을 주의하라. (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