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3 장 신약과 재림소망
 임박한 구원자의 강림에 대한 소망은 그리스도 당시에 매우 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떤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는가? 당대의 문서들은 고대했던 구세주의 인격과 사업에 대해 상이한 견해들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44.1)
 메시야에 대한 견해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고 이방 나라들을 정복하고 찬란하게 통치하게 될 다윗의 후손인 정치적 메시야(Political Messiah)를 기대했다. 그러나 묵시 집단(apocalyptic circles)은 곧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대를 출범시키기 위해 마지막 때에 나타나시게 될 인자, 즉 하늘의 구속주(heavenly Redeemer)를 기대하고 있었다. (44.2)
 쿰란(Qumran)의 금욕 집단에서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강한 의식은 있었지만 그들이 고대했던 메시야에 대한 견해는 분명치 않았다. 어떤 사본들은 그 분파가 백성들에게 생생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 줄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오심을 기대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다른 사본들은 왕같은 제사장의 메시야를 암시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와 같은 견해를 “삼위 일체적 구세주”(Trinity of Saviors)로 부르도록 한다(선지자, 왕, 제사장). 혁명적인 메시야 시대를 도래케 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력 사용을 옹호했던 열심 당원들(Zealots)은 메시야에 대한 더욱 급진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1 (44.3)
 메시야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의 기원. 메시야에 대한 상이한 견해가 있었던 것은 구약이 다양한 방법으로 메시야의 강림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약속된 구원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다윗과 같은 왕, 고난 당하는 종, 하늘의 인자, 그리고 주 하나님 자신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오시는 구주에 대한 이러한 혼합적인 묘사는 기독교 시초에 존재했던 다양한 메시야적 기대들을 불러 일으켰다. (44.4)
 강림하시는 메시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인물과 사명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히 자신의 백성을 혼란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복합적인 묘사는 오히려 그분의 생애와 사명의 독특성과 탁월성 그리고 풍부함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었다. 고대했던 구 세주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한 분석과 서술은 그들 중 아무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없는 더 위대한 실재를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44.5)
 본 장의 목적. 본 장에서는 예언된 메시야에 대한 외견상의 상반된 역할을 신약이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우리는 신약이 이 문제들에 대해서 제공하는 해답이 우리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고찰하기를 원하는 세 주요 요소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4.6)
 1. 성취에 대한 확신

 2. 현재의 성취와 미래의 완성

 3. 초림과 재림 사이의 통일성 (44.7)
 제 1 부 성취에 대한 보증
 1. 예언의 성취에 대한 인식
 복음서. 신약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구약의 메시야적 예언들을 성취했다는 보증을 말하면서 시작한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출생, 생애, 죽으심, 부활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구약 예언들의 직접적인 성취를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마가는 침례 요한이 고대했던 메시야의 선구자 역할을 어떻게 성취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므로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한다(막 1:2, 3).2 (45.1)
 마가가 기록한 그리스도의 첫번째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막 1:15)였다. 유사하게 누가복음서에서도 아기 예수가 성전에 처음 나타나신 것은 선지자 시므온에 의해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원”(눅 2:30, 31, 2:38)의 성취로 선포되고 있다. 성취에 대한 주제는 누가가 보고한 그리스도의 취임 연설에서도 발견된다. 이사야에서(61:1, 2) 메시야 예언을 인용한 후에 그리스도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주장 함으로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45.2)
 그리스도의 말씀. 마태와 누가는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이 구약의 강림의 소망에 대한 이와 같은 성취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눅 10:23, 24참고, 마 13:16, 17). 이러한 선언은 분명히 강림하시는 구속주에 대한 지난 세대의 소망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현재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대했던 하나님의 나라도 역시 “임하였느니라”(마 12:28), 또는 “가까웠느니라”(막 1:15)고 선포되고 있다. 분명히 이것은 고대했던 하나님의 마지막 우주적인 왕국이 아니라 메시야적 구원의 현재적인 경험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당황하고 있는 요한에게 한 답변에서 설명된 것처럼 구약의 약속이 자신의 구원의 사명 속에서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 5; 눅 7:22 참조). (45.3)
 2. 성취에 대한 말씀들
 제사 제도. 성취에 대한 의식(意識)은 다양한 방법으로 신약에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제사 제도가 “이제 자기가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 신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히 9:26).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극적으로 전해졌다(마 27:51). (45.4)
 마지막 시대. 요엘이 예언한 메시야의 마지막 때는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성취되었다고 선포되었다(행 2:16, 17). 구약에 예언된 구속의 정확한 성취의 시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때가 차매”(갈 4:4), “말세를 만난”(고전 10:11), “이것이 마지막 때라”(요일 2:18) 등과 같은 다른 표현들 속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구약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마지막 시대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었다는 신약 시대 신자들의 확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 주기에 넉넉하다. (45.5)
 제 2 부 현재의 성취와 미래의 완성
 1. 최초의 당혹감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이 구약의 메시야적 소망을 성취시켰다는 신약 신자들의 의식은 갑자기 또는 초창기에 혼란이 없이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의 오심과 관계된 세상의 심판, 죽은 자의 부활, 새로운 세상 질서의 확립과 같은 어떤 사건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동안에 구체화된 것이 아니었다. (46.1)
 침례 요한의 당혹감. 이러한 상황이 침례 요한이 감옥에서 밀사를 예수님에게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라는 당혹감을 유발시키게 되었다. 침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라고 설교했을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주님께서 심판과 구원을 전하시므로 그의 영원한 왕국을 설립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었다. 표상적인 예언의 전망 가운데서 요한은 마지막 구원이 여호와의 오심으로 가까운 장래에 있을 것으로 보았다. (46.2)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의 신학을 논쟁으로 바로 잡으시려고 시도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는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봉사와 메시야의 구원이 비록 요한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이미 왔다는 많은 증거들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신시키기를 요구하셨다.3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모든 구약에 있는 메시야적 약속을 성취시켰는지를 생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결코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다. (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