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반대와 반대자들
 위에서 우리가 개관했던 안식일의 기원에 대한 제설(諸說)들은 지난 세기 동안에 비판적인 학자들에 의하여 제시된 결론들이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 보일지 모르나 안식일의 창조 기원설은 오래전부터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 초대 교부들, 종교개혁의 급진 그룹들, 또 가까이는 근대의 세대주의자들같은 “보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도 도전을 받아 왔다. 어찌하여 여러 세기에 걸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5경 속에 여러차례에 언급된 안식일의 에덴 기원에 대한 사실적인 기사들(창 2:1~3, 출 20:11; 출 31:7)을 거절해 온 것일까? 그 이유들은 한결같지 않다. 몇가지 주요 이유들에 대하여 간략히 검토할가 한다. (26.1)
 주체성의 위기 헬라의 세력이 밀려와 유대 종교의 포기를 압박하던 시대에 유대민족의 주체성을 보존하려는 강력한 열망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랍비들은 안식일을 인류를 위해 제정된 창조 율법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된 모세의 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태 발전은 특별히 희생 제사와 안식일 준수를 금지시킴으로서 (175 B. C.) 유대인들을 헬라화 시키려는 과격한 정책을 추진시켰던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단호한 노력 때문에 더욱 촉진되었다. 이같이 강력한 헬라화 정책의 결과로 많은 유대인들이 배도하여 “안식일을 더럽허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다”(마카비 상 1:43). (26.2)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같은 헬라화 정책에 격렬히 저항하였다. 그들은 안식일을 더럽허느니 차라리 죽임을 당하는 쪽을 택했다(마카비 상 2:32~38). 그같이 위급한 시기에 처하여 유대의 주체성을 보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요성 때문에 안식일에 대한 독립적이고 국수적의적인 사상이 일어난 것이다. 일부 랍비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특권이 이방인들에게는 거절되었고 오직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가르쳤다. 요벨 서(書)(the book of Jubilees)에서는 “그〔하나님〕는 이스라엘 이외의 어떤 민족이나 백성들에게도 이날에 안식을 지키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오직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하나님께서 그날에 먹고 마시며 안식을 지키도록 허락하셨다”(2:31)고 기술되어 있다.69 족장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가끔 언급된 것에 대해서는 “그것〔안식일〕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지기 전”의 한 예외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70 (26.3)
 안식일이 창조 때에 온 인류를 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하여 모세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배타적인 유대 제도로서의 안식일 개념은 최소한 하나님에게 편애와 차별 대우의 죄책을 안기게 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사상은 원래의 전통이 아니라 후기에 와서 나타난 2차적인 사태 발전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헬라화된 유대교에서도 안식일이 창조 때에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법령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확인되고 있다.71 그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묵시 문학과 랍비 문학에서도 하나님과 아담과 셋과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이야기를 빈번히 하고 있다.72 (27.1)
 변증론적인 필요. 안식일이 모세 때에 유대민족만의 독점적인 것으로 제정되었다는 개념은 일부 초대 교부들에 의하여 채택되어 기독교 시대에 와서도 안식일 계명의 구속력이 계속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을 대항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자주 거론되는 논리는 모세 이전에 살았던 족장들과 의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며 따라서 안식일은 모세 때에 제정되었으며 유대인들의 불신앙 때문에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부과된 잠정적인 법령이라는 것이다.73 창조의 법령이 유대민족의 불순종의 수치스러운 표로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은 단기적인 변증론의 필요성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성경이 안식일에 대하여 부여하고 있는 영원하고 숭고한 가치를 간과햐고 있다. (27.2)
 안식일이란 표현의 결여(缺如). 창세기 2:2~3에는 “제칠일”이란 언급이 연거퍼 세 번이나 나오지만 안식일(또는 안식)이란 표현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결여(缺如)야말로 하나의 제도로서의 안식일이 창조 시기에 제정된 것이 아니라 뒤로 내려와 모세의 때에 제정된 것을 시사해 준다고 한다.74 “사바드”란 이름이 그 구절에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어원의 동사형인 사바트(Sabat:그치다, 중지하다, 쉬다)가 사용되고 있으며 U. 캇수토(Cassuto)가 지적했듯이 사바트(Sabat)는 ‘안식일(the Sabbath day)’이란 이름에 대한 암시를 간직하고 있다.”75 (27.3)
 그뿐 아니라 역시 U. 캇수토가 지적했듯이, 안식일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제칠일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편이 이방 나라들의 점성술적인 안식일들과 연관된 연상들과는 전혀 무관한, 독립된 그날의 영구한 질서를 강조하려는 기자의 의도를 더 잘 반영해 줄 수도 있다.76 하나의 영원한 질서를 지적함으로써 제칠일은 창조 이야기의 우주론적인 기별 즉 하나님은 이 우주의 창조주시며 불변하는 지배자라는 기별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77 그러나 출애굽기에서는 제칠일이 우주의 창조라는 맥락에서 언급되고 있지를 않고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창조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있어서 제칠일은 명백하게 “안식일”로 호칭되어 제칠일의 새로운 역사적 기능과 구속론적인 기능을 나타내 주고 있다. 안식일의 이 같은 새로운 차원에 대해서는 III장과 V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27.4)
 명령의 결여(缺如). 창세기 2장 2~3절에 제칠일을 지키라는 분명한 명령이 없는 것도 안식일이 창조 내에 제정된, 온 인류를 위한 도덕적인 명령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모세가 제정하여 그것을 창조의 주일 위에 근거를 두게함으로써 정당화시킨, 잠정적인 제도라는 주장의 구실이 되고 있다.77 (27.5)
 이러한 논거는 모세를 진리를 왜곡시킨 사람으로, 또는 최소한 거대한 오해의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 그는 비록 안식일의 기원을 창조의 시기로까지 끌고 올라갔지만 실상 안식일은 그 자신의 창작물이란 말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비난은 모세나 그밖의 성경 기자들이 기록한 성경의 기술의 성실성과 신빙성에 심각한 의혹을 던지게 한다. (27.6)
 하나님의 계명을 도덕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어떤 율법이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할 때 우리는 그것을 도덕적인 율법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친히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운 원칙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선언된 원칙보다 구속력이 약한가? 행동이 말보다 힘이 약한가? 존 머레이(John Murray)가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활동방식은 전형(典型)이며 그 전형을 기초로 하여 인간을 위한 연쇄(健鎖)행위들이 모조(模造)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3절에 최소한 인간의 주일(週日)속에 있는 제칠일의 축복에 대한 암시가 들어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나위가 없다.78 (28.1)
 창조의 설화속에 안식일이 인간을 위한 하나의 명령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한 귀감으로서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죄의 세상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의도하셨던 것, 즉 안식일을 사람의 감정을 불편케하는 부담이 아니라 고마우신 창조주에 대한 하나의 자발적인 화답이 되도록 하려고 하셨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자발적인 선택에 의하여 안식일에 자신을 자신의 창조주에게 맡김으로써 인간은 지(知) 영(靈) 체(體)의 새로운 소생과 농축을 체험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요구되었기 때문에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 보편적, 항구적 기능들은 나중에 명령의 형태로 반복된 것이다.79 (28.2)
 본보기의 결여(缺如). 안식일이 오래 전 에덴의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반대 논거(論據)는 창세기 2장 이후 출애굽기 16장까지의 족장 시대의 전(全) 기간을 통하여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백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80 이미 앞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성경 밖의 자료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셈족들 사이에 있던 “안식일”의 원시적 형태의 희미하고 불확정적인 암시를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본성을 고려해볼 때사람들은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안식일을 준수했다는 분명한 증거들을 발견하리라는 기대를 좀처럼 갖기 어렵고, 충성스러운 족장들에게서 그같은 증거를 발견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분명한 침묵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28.3)
 어뗜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안식일은 비록 제정되기는 했다해도 아담과 모세 사이의 기간에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여호수아와 느헤미야 사이의 약 1, 000년에 걸치는 기간에 초막절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의 병행 현상으로 제시됨직도 하다(느 8:71).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안식일 준수가 너무나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안식일 준수 습관이 언급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에 있어서 후자 쪽이 훨씬 그럴듯하게 들린다. (28.4)
 첫째로, 안식일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경우는 신명기와 열왕기(下) 사이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침묵을 가지고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는 해석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열왕기하 4장 23절에는 뜻밖에도 안식일에 선지자를 예방하는 습관에 대한 언급이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9.1)
 두번째로, 창세기는 출애굽기에서처럼 율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고 세계의 기원에 대한 다소 간략한 개략을 알리고 있다. 다른 계명들에 대해서도 일언반구(一言半句) 언급이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예외적인 것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81 세번째로, 창세기 전체와 출애굽기의 처음 몇 장(章)에는82 안식일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칠일 주일의 사용에 대한 충분한 형적(形逐)들이 있다. (29.2)
 칠일의 기간에 대한 언급은 대 홍수의 이야기 속에 4번에 걸처 나온다(창 7:4, 10; 8:10, 12). “칠일기간”은 야곱의 결혼식 축하 기간을 말할 때 (창 29:27)와 그가 사망하여 그를 위하여 곡(哭)한 기간을 말할 때(창 50:10)에도 사용되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려는 자신들의 마음을 표시할 때도 같은 기간이 나온다(욥 2:12). 아마토 여기 언급된 모든 의식들은 안식일의 도래와 더불어 종료되었을 것이다. (29.3)
 끝으로, 출애굽기 16장20장에서는 안식일이 이미 기존하는 제도로 나와있다. “제 6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찌니 날마다 거둔 것의 갑절이 되리라”(출 16:5)하여 46일에 만나를 평일의 갑절로 거두게한 지시는 안식일의 의의에 대한 사전(事前)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제 6일에 갑절의 몫을 거두도록 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는 사실은 안식일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사전(事前) 지식을 고려하지 않을 때 납득키 어려운 현상인 것이다. (29.4)
 출애굽기 20장에서도 상황이 비숫한데 여기서도 안식일은 기지(旣知)의 어떤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주어진 명령은 “안식일을 알아라”가 아니고 “안식일을 기억하라”(출 20:8)이다. 이것은 안식일이 기지(旣知)의 사실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안식일 계명은 안식일이 창조의 사건에 뿌리를 둔 것임을 밝힘으로써(출 20:11) 안식일의 출애굽 기원의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있다.83 (29.5)
 족장들이 어떻게 안식일을 지켰을까에 대하여 추측을 하는 것은 공연한 헛 수고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추측은 유효한 정보 위에 기초되어있지 않고 상상에 기초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진수(眞髓)는 의식들을 치르기 위하여 찾아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들과 다른 자들이 함께 있기 위한 고정된 시간이란 것을 생각할 때 족장들이 자신의 가정에서 창세기에 기술되어 있는 예배 행위들,84 예컨데 기도(창 12:8; 26:25), 제사(창 12:8; 13:18; 26:25; 33:20), 훈도(창 18:19)따위를 행하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