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3 ►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본문 : 막 2:1-12, 참조: 마 9:1-8, 눅 5:17-26
 갈릴리 호수 동쪽에 길게 자리잡고 누워 있는 골란 고원은 그 산자락에 점재(點在)한 여러 고을들을 보호하듯 마치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예수님께서 그곳들을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던 첫 번째 여행을 마치시고 배를 타고 다시 갈릴리 바다 서북 해안에 위치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그분에게 여로(旅路)의 종착역은 늘 가버나움이었다. 주님은 회당 바로 곁에 있는 베드로의 집으로 가서 좀 쉼으로 여독(旅毒을 풀고자 하셨으나 동네 사람들이 가만 둘 리가 만무했다. 주님이 다시 돌아오셨다는 소식이 이집 저집으로 퍼졌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버나움 사람뿐만 아니라 갈릴리 지역 사방에서도 허다한 사람들이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지난 번에 들었던 주님의 매혹적인 말씀을 또 듣고 싶어 안식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갈급하여 모여든 사람, 호기심을 가진 구경꾼들, 주님의 치유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환자들이 삽시간에 베드로의 집 안팎으로 둘러 진쳐 인산 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불행하게도 군중들 속에는 산헤드린이 파견한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정탐꾼들도 숨어 있었다. 이를 괘념치 않으신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도 (道)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도”란 구원의 복된 소식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31.1)
 수족(手足) 이 마비돼 자력(自方)으로 일어 앉거나 서지도 못하는 단지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한 중풍 병자가 있었다. 죄악의 방종 생활로 빚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오늘날도 여간해서 근치(根治)가 안 되는 중풍병은 성경 시대에도 쉽사리 고쳐지지 아니하던 만성 불치병(不治病)이었다. 환자는 들것에 실려 이 의원 저 의원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의원들이 좋다고 하는 약은 다 사 먹어 보았으나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했으며 결국 재산만 탕진하고 불치병이라는 선고만 받았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의 병이 하나님의 진노로 온 것으로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아주 냉정하게 대했다. 그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이 개종하여 비록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어떤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32.1)
 중풍 병자는 치유의 희망을 상실한 채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오직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쇠약해진 육체에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의 강한 역사로 중풍 병자는 과거에 범한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돼 깊이 뉘우쳤다. 양심의 가책으로 너무 괴로워 고민하다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32.2)
 “내가 꼭 용서를 받아야지.” (32.3)
 그러나 비록 과거 허랑 방탕했던 죄악 생활을 슬퍼하며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동경했으나 현재로서는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 그에게는 마치 신기루(蜃氣樓)를 좇는 것과 같은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절망 속에 허덕이던 그에게도 어느 날 치유의 희망을 일으켜 주는 놀랍고도 기이한 소식이 들려 왔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자기와 똑같은 중풍 병자가 좌절 속에서 죽어 가는데 예수라고 하는 분이 오셔서 말씀만으로 고쳐 주셨다는 희망찬 소식이었다. (33.1)
 “나도 예수님을 찾아가서 치유의 은총을 간구해야지.” (33.2)
 그런 결심이 서는 순간 절망의 구름이 내려앉았다. (33.3)
 “전혀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내가 어떻게 예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33.4)
 그렇다고 치료에 대한 희망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누구든지 희망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미래는 열리는 법이다. 바로 그 때 건장한 친구들이 병문(病問)을 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기뻐 소리쳤다. (33.5)
 “이 사람들아 병문와서 고맙네. 그런데 오늘 내 소원 한 번 들어주게. 나를 들것에 싣고 예수님을 찾아 그 앞에 데려다 주게. 그분은 나를 죄의 짐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고 육신의 병도 능히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네.” (33.6)
 환자의 간청을 들은 친구들도 예수님의 행적(行積)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중풍 병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말했다. (33.7)
 “알았네. 우리가 자네를 예수님께 데려다 주겠네.” (33.8)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능히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친구들과 환자는 믿었다. 마침 이 때 예수님의 일행은 그들이 살고 있던 가버나움에 와 계셨다. 이리하여 네 친구들은 들것에 환자를 싣고 예수님이 계시는 베드로의 집으로 갔다. 집 안팎으로 둘러 진쳐 있는 사람들에게 마구 소리를 질렀다. (33.9)
 “좀 비켜 주시오. 비켜 주시오.” (33.10)
 아무리 세차게 소리질러도 사람들은 비켜 주지 않았다. 친구들은 계속 군중을 헤집고 예수님께 나가려고 무진장 애를 썼으나 모든 노력은 허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쳐 버린 친구들이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며 들것을 땅에 내려놓는 게 아닌가? (34.1)
 “자, 이제는 집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어.” (34.2)
 그 말을 들은 중풍 병자는 애가 탔다.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문턱에서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34.3)
 “아니야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 사유의 은총을 받아야 돼 내가 살길은 바로 그것이야” (34.4)
 중풍 병자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