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히브리서 연구) 제 4 장 하나님의 안식 (2부)
  (89.1)
 우리는 히브리서 3장 연구를 통해서 모형인 모세와 원형인 그리스도의 직분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는 집 맡은 아들로서 만유의 상속자가 되셨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도 그의 집의 구성원이 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직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잡을 때에만 가능하다. 현재에 우리가 누리는 유업은 무엇인가?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그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당시의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살아있는 경험이 미래의 가나안 땅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했던 것처럼, 4장에서는 우리가 지금 누리는 하나님의 안식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안식’에 들어가는 경험과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경험은 재림 때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하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믿음과 순종으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안식’에 들어가는 경험은 주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이며 ‘시간의 성소’ 안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또한 우리가 믿음과 순종으로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경험은 주님을 ‘구속주’로 인정하는 것이며 ‘공간의 성소’ 안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이러한 현재적 경험은 미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경험임을 유추할 수 있다. (90.1)
 모세의 영도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안식에 들어가는 일에 어째서 실패했는가? (91.1)
 그것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르러오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의 백성들을 능히 그의 안식으로 들이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일은 현재적 경험이 되어야 한다. (9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91.3)
그의 안식
 그의 안식(His rest: NKJV, YLT, NASB) 즉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은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91.4)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문자적으로는 ‘언약이 뒤에 남겨져 있을지라도’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까, 이스라엘의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3:12)지는 경험이 반복될까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미치지 못하다”(to come short of it)는 ‘부족하다’, ‘모자라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처럼 시작은 했지만 믿음과 순종이 부족해서 안식에 도달하지 못할까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91.5)
 남아 있는 약속(언약)은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는 안식이다. 모세나 여호수아는 이 언약을 성취시키지 못했다. 이스라엘 중 아직도 많은 이들이 모세로 대표되는 옛 언약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생애 가운데는 성화와 생애에 나타나는 죄로부터의 자유가 없었다. 그들은 전적인 순종, 완전한 믿음에 실패하였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각자의 영적 경험은 과연 어느 쪽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91.6)
 안식의 약속은 반복해서 주어진다.

   ① 광야의 이스라엘은 들어가지 못했다.

   ② 사도 바울 시대에도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 있었고 반면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③ 오늘 우리가 사는 현재에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 (91.7)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92.1)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듣고 믿음을 화합지 않는다. (92.2)
저희
 광야에서 멸망한 자들. 모세로부터 율법, 성소봉사, 희생제사 등을 통해 복음을 전달 받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으로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3:5)한 것이다. (92.3)
우리는
 주님께 복음을 들은 제자들이 확증해 준 복음이다. 더욱 명확한 복음이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2:3) (92.4)
든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청중은 훌륭한 설교가를 원하지만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생활 속에서 말씀이 믿음과 결합되지 않는다. 생활에 실천하지 않는다, 즉 새 언약의 믿음을 통한 거룩한 안식의 경험, 믿음을 통한 순종의 경험이 없고, 그로 인한 성화의 경험이 없다는 의미이다. (92.5)
 *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 13:58) (92.6)
 * 노아 — 훌륭한 설교자였다. 그러나 믿음으로 화합한 자는 오직 7명의 가족이었다. (93.1)
 A. 하나님의 안식(안식일 안식, 은혜의 보좌, 영원한 안식, 4: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