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5 장 성소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화
 
  (88.1)
 A. 이끄심으로부터 성소 뜰에 이르기까지
 1. 이끄심 - 진중에서 성소 뜰까지의 경험
 갈바리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자아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빛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회개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이끄심에 응하는 사람은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십자가 밑으로 이끄심을 받는다. 주님께서는 죄 많고 무력하고 어리석은 상태 그대로 마음을 온전히 낮추고 주님의 발아래 엎드리는 사람을 그의 상처입고 누추한 그대로 사랑의 팔로 안아 주신다. (88.2)
 2. 받으심 - 뜰의 문에 이르는 경험
 우리 주님은 죄인의 상처를 싸매시고 씻어주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신다.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께로 인도되는 경험은 뜰문의 경험이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 양우리로 인도한다. 우리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고 말씀하신다. 뜰의 문은 양의 우리로 들어가는 문이다. 뜰의 문에 서 있던 제사장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옷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의 눈물로 끌어안고 입 맞추며 자신의 “의의 겉옷”(사 61:10)으로 입혀주신다. “뜰의 문장”(혹은 뜰문, 출 27:16, 28:18)이나 “성막문”(혹은 문장, 출 26:37, 출 40:29), “회막 안 장”(출 26:31, 40:26)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출 27:16) 휘장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회막 안 장”에는 천사들의 무리를 대표하는 그룹이 금실과 은실로 짜여 있었다. 휘장을 짠 실들은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는 것이며 동시에 입혀주시는 의로써 우리의 품성 안에 짜 넣으시는 예수님의 의로운 품성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가는 베실은 우리의 낮은 몸을 입으셨지만 죄를 이기신 그리스도를, 청색은 신성(출 24:10)과 우리의 의지를 연합시킬 때 오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홍색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봉사를 상징했다. 그리고 자색은 붉은색과 푸른색을 혼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통해 대제사장의 자격을 얻은 것을 나타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 속에 구체적으로 짜 넣어 우리를 옷 입히기 원하시는 주님의 품성들이다. 게다가 그룹을 만들 때 사용된 금실은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출 39:3) 쓴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랑 ... (은) 인간 매개자들을 하나님께로 연합시키는 금실”이었다. 산 믿음과 성경의 산 원칙들은 금실1과 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휘장을 그리스도의 “육체”(히 10:20)라고 연결을 지은 것이다. 뜰 문이 의의 옷을 겉에 입혀주시는 경험이라면, 뜰 안의 경험은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경험이다. (89.1)
 3. 번제단과 물두멍의 그림자와 원형적 성취
 1) 번제단
 번제단은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기물이다.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들(히 10:8)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시는”(히 10:10) 십자가 희생을 나타내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드리는 죄인은 희생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함으로 전가시키고 중보를 나타내는 희생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죄인을 대신해 정죄를 당하시고 희생당하시는 구주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야 하였다. (90.1)
 제단에 사용된 불은 속죄 제물에 대한 하나님의 “열납”하심(레 1:3)과 “죄의 모든 부정으로부터의 정결”(레 14:20)을 상징하였다. 또한 번제로 드리는 제물의 가죽을 벗기어 제사장에게 준 것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창 3:21) 구주께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한 제물의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마음속 깊은 곳까지 죄를 씻어내는 것을 의미하였다. (90.2)
 놋제단은 죄인을 대신해 죄가 되셔서 죄의 저주와 정죄를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이것에 대한 상징물은 “놋뱀”(민 21:9)으로 이미 예시된바 되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러므로 죄인은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을 받고, 죄인에게서 제거된 죄가 제단으로 옮겨짐으로 실제적인 죄의 제거함을 받는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다”(시 32:1)는 것은 “그분은 우리에게 그의 의를 입혀주시고 그 죄는 그분이 직접 가져 가신다”2는 의미이다. (90.3)
 유월절 어린양이 죄를 제거하는 것은 무교절에 죄를 상징한 누룩을 제거한 무교병을 먹는 의식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번제단의 뿔은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뿔”(시 18:2; 시89:24)로서 마귀를 추방하고 그 속박에서 건질 넉넉한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계속적으로 ‘원수를 이기는 백성의 무용’(시 92:10, 132:17, 삼상 2:1, 애 2:3)을 지녀야 한다. (91.1)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여주던 번제단의 희생양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이셨다. 구속의 역사를 예표(豫表)해온 바로 그 시간에 예수께서는 서기 31년(성력 1월 14일), 유월절 양 잡는 시간 “해질 때”(출 12:6)인 오후 3시에 돌아가심으로 “유월절 양”(고전 5:7)이 표상하는 실체가 되셨다. (91.2)
 그리고 다음날 1월 15일에 무덤에서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요 23:56)심으로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기념하던 무교절 기념일을 구속의 기념일로 바꾸셨다. 무교절의 첫날과 끝날은 절기 안식일로서 “아무 일도 하지 말”(출 12:16)라는 표상을 죄로부터의 안식의 경험으로 바꾸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히 10:10)을 상징하는 “새 덩어리”(고전 5:7)가 되어 죄 없는 삶, 의롭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91.3)
 2) 물두멍
 물두멍은 회막 문에서 시중드는 여인들의 놋거울(출 38:8)로 만들어진 것으로 번제단의 경험을 한 사람, 즉 죄와 정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새사람에게 율법은 지속적으로 의로운 생애를 살아가도록 하는 거울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물두멍의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약 1:23)은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므로 항상 손과 발을 씻(출 30:17~21, 40:32)었던 제사장들처럼 죄인은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쏟아진 “물과 피”(요일 5:6)로 씻어야 한다. 우리는 씻을 뿐만 아니라 제공된 생수를 마셔야 한다. 그리스도는 “생명수 샘”(계 7:17)이시며 “생명의 원천”(시36:9)이시다. “물은 ... 침례”(벧전 3:21)이고 “중생의 씻음”(딛 3:5)이다. 이미 중생을 얻은 자는 칭의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매 순간 수족을 씻어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91.4)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만찬과 세족예식으로 기념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 물두멍의 놋대야는 율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 안에 담긴 “물은 ... 선한 양심”(벧전 3:21)으로서 율법에 비추어보아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낸다. 물두멍을 들여다보는 자는 율법에 비추어 흠 없는 생애를 사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거울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이 삶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92.1)
 물두멍의 생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한없는 강수로 열려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 물두멍의 물줄기는 우리의 마음의 깊은 곳인 배에서 흘러나온다. 이 물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흘러나온다. 예수님은 이 역사가 오순절에 “믿는 자의 받을 성령”(요 7:39)으로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다. 마지막 늦은비의 때인 “그 날에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 3:18)고 예언하였다. (92.2)
 초막절 축제의 7일째가 되는 가장 ‘큰 날’(성력 7월 21일)에 예수님은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선포하셨다. 초막절 축제의 가장 큰 즐거움은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 제단에 붓는 ‘물잔치’였다. 장중한 행렬과 찬송의 곡조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일이 동원되는 가운데 제단 위의 은대야에 물이 부어진다. 다른 한 대야에는 포도즙이 부어졌다. 이것은 기드론 시내를 통해 죽음의 바다인 사해로 흘러 들어갔다. 이는 그리스도의 물과 피가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 세상을 구원하실 것에 대한 예표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세에 예언된 늦은비의 때를 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와 물”(요 19:34)을 쏟으시고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은 요제절로 예표(豫表)되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안식하실 것을 예표한 무교절은 안식일이었고 그 “안식일 이튿날”(레 23:11) ‘첫 열매’를 흔들어 드리는 1월 16일, “안식 후 첫날”(마 28:1)에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요제단’의 원형이 되셨다. 이 얼마나 정확한 예언의 성취인가?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