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은 죄인의 상처를 싸매시고 씻어주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신다.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께로 인도되는 경험은 뜰문의 경험이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 양우리로 인도한다. 우리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7)고 말씀하신다. 뜰의 문은 양의 우리로 들어가는 문이다. 뜰의 문에 서 있던 제사장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옷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의 눈물로 끌어안고 입 맞추며 자신의
“의의 겉옷”(
사 61:10)으로 입혀주신다.
“뜰의 문장”(혹은 뜰문,
출 27:16, 28:18)이나
“성막문”(혹은 문장,
출 26:37,
출 40:29),
“회막 안 장”(
출 26:31, 40:26)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출 27:16) 휘장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회막 안 장”에는 천사들의 무리를 대표하는 그룹이 금실과 은실로 짜여 있었다. 휘장을 짠 실들은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인성을 상징하는 것이며 동시에 입혀주시는 의로써 우리의 품성 안에 짜 넣으시는 예수님의 의로운 품성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가는 베실은 우리의 낮은 몸을 입으셨지만 죄를 이기신 그리스도를, 청색은 신성(
출 24:10)과 우리의 의지를 연합시킬 때 오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홍색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봉사를 상징했다. 그리고 자색은 붉은색과 푸른색을 혼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통해 대제사장의 자격을 얻은 것을 나타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 속에 구체적으로 짜 넣어 우리를 옷 입히기 원하시는 주님의 품성들이다. 게다가 그룹을 만들 때 사용된 금실은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출 39:3) 쓴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랑 ... (은) 인간 매개자들을 하나님께로 연합시키는 금실”이었다. 산 믿음과 성경의 산 원칙들은 금실
1과 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휘장을 그리스도의
“육체”(
히 10:20)라고 연결을 지은 것이다. 뜰 문이 의의 옷을 겉에 입혀주시는 경험이라면, 뜰 안의 경험은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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