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5장 여정 중의 도전들 (민수기 11~12장)
 징징거리는 일에 대한 경고
 며칠 동안 운전하고 가야하는 여행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나자, 작은 목소리의 질문이 들려온다. “아빠, 다 왔어요?” (76.1)
 “아니, 얘야, 우리는 이제 막 출발했잖아.”라는 답변이 주어진다. (76.2)
 한 시간 후에 다시 같은 질문이 들린다. “아빠, 우리 거의 다 왔어요?” (76.3)
 “아니, 훨씬 더 오래 걸릴 거야.” (76.4)
 30분 뒤에 투정 섞인 톤의 질문이 또 들린다. (76.5)
 “아빠, 아직 다 안 왔어요?” (76.6)
 “아직, 아니.” (76.7)
 그러자 훌쩍거리는 소리가 뒤따른다. “난 이 여행에 지쳤어요. 지금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76.8)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앞서 가고, 구름이 그들 위에 운행하는 가운데 며칠 동안 행진하였다(민 10:33,34). 그러나 시내반도의 거친 지형을 여행하는 것은 여호와의 산 앞의 드넓은 평원에 진을 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이 불평하기 시작하였는데, 틀림없이 그들의 불편함에 대해서 모세를 비난하고 그의 지도가 현명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반응은 하나님의 주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분은 이런 불평을 불쾌하게 받아들이셨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모든 것을 관할하고 계시며,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분의 불이 그들 가운데서 타올랐고, 진영 끝을 살라 손상을 입혔다(민 11:1; 출 3:2과 비교해 보라—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그것이 사르어지지 않았음). 그러므로 모세는 그곳을 다베라, 곧 “불타는 곳”이라고 이름 붙였다(민 11:3). (76.9)
 하나님의 불은 제단 위의 첫 희생제물을 불사른 때처럼(레 9:24), 백성들에게 우호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쾌하게 되시면 그분의 불꽃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불은 그분의 제사장 중 두 사람이 중요한 지시 사항을 따르지 않았을 때, 그들을 극적으로 처형했다(레 10:1,2). 그처럼, 백성들 가운데서 타오르는 불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77.1)
 성경 본문은 여호와의 불이 진영의 외곽에서 무엇을 태웠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중심부에 위치한 12지파들의 숙영지 밖에 있는 이 지역은 분명 “잡족”들이 장막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으뜸가는 불평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77.2)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을 떠난 이들 섞인 무리들(출 12:38)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었고, 그들의 피가 섞인 자손들도 아니었다(레 24:10). 확실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능력과 은총을 발휘하신 일들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였다. 선택받은 야곱의 자손들 중에 “족보”가 없다는 사실이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언약의 축복들을 찾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단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언약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처럼 동일하게 그분의 지도력 아래 살아갈 것을 기대하셨다. (77.3)
 섞인 무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노예 생활의 혹독함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고초와 힘든 신체적 활동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세계관과 종교적 성향은 대부분 애굽인들과 이방인들과 같았다. 애굽의 문화와 사고(思考)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들은 그들의 독특한 유산의 중요한 측면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뚜렷한 정체성을 다소나마 보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다른 이들과 분리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섞인 무리들은 이러한 것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들에게 낯설었으며, 그들은 아직 그분께 대한 충성심을 개발시키지 못했다. (77.4)
 다베라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불평을 늘어놓은 첫 번 째 장소는 아니었다.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서 지평선 위로 어렴풋이 나타나자, 그들은 여호와께 울부짖었고(출 14:10),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1,12절). (78.1)
 애굽에 있는 무덤들이라니? 물론 애굽에는 무덤들 천지다. 그 무덤들 중 어떤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즉, 피라미드들이다. 애굽은 죽음을 숭배한 땅이었다. (78.2)
 애굽의 초태생을 친, 여호와께서 내리신 10재앙 중 마지막 재앙은 그들이 숭배할 더 많은 죽음을 안겨주었고, 무덤들이 더 생겨나게 해 주었다(출 12:29,30). (78.3)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라는 말은 그저 매장할 목적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기에 모세는 바보라고 비난하는 수사적 표현이었다. 그것은 모세가 후에 너무나 많이 듣게 될 비난이었다. 즉, 그의 리더십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과, 바로의 지배 아래 노예생활을 하다가 죽는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떠나 있으면 그리움은 더해진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78.4)
 모세를 비난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무시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은 바보라고 참으로 넌지시 비친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것은 위험한 모욕이었다. (79.1)
 여호와께 대한 불평 그 자체는 반드시 해서는 안 되는 그릇된 일은 아니다. 욥, 다윗 그리고 하박국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비애, 스트레스, 좌절감, 심지어는 맹렬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였다(욥 3장; 시 109편; 합 1:1-2:1).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흔들릴 수 있지만, 그분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음을 이해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을 그분께 가져가면, 우리의 심리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의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분은 우리를 도울 수 있으시다. (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