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 엘로힘—능하신 언약 체결자 (지킬 약속을 가지신 하나님)
 자유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랑과 자유는 상하기 쉬운 것이다. 거부 반응과 실패의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위께서는 “평화의 모의”에서, 만일 사람이 범법하면 후일 아들이라고 불리게 되는 제 2 위께서 생명을 버려 몸값을 지불하기로 자원하셨다. 그리스도는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간의 창조자와 보증인이 되기로 자원하시고, 만일 그들이 타락할 경우, 죽음, 부활, 그리고 중보 사역을 통해 그들을 되찾는 일에 자신을 바치겠노라 서약하셨다. (31.3)
 환상을 통해 엘렌 G. 화잇(Ellen G. White)은 제 2 위께서 아버지와 함께 세 번 놀랍고 거룩한 영광에 둘러싸이는 장면을 보았다(EW 149). “천사는 말하기를 ‘아버지는 고민 없이 사랑하는 아들을 내놓으신 줄로 그대는 아는가? 그렇지 않다. 죄인이 죽도록 내버려두느냐, 아니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그들 대신 죽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도 어려운 결정이었다”(EW 151). 그것이 아버지의 겟세마네였을까? 상상으로 나는 그 비밀 회의에서 아버지가 세 번 아들에게 호소하는 것을 듣는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여주오.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말고 그대의 뜻대로 하오.” 수천 년 후 그들의 역할은 뒤바뀐다. 수난의 동산에서 아들이 아버지께 세 번 호소하는 것을 나는 듣는다: “오 나의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마 26:39).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한 융화 속에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고민하며,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성령으로 하나 된 부자 지간이었다.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전쟁에 그들은 함께 자원해서 가담하셨다. (32.1)
 “태초”에 있었던 그 모의에서 세 분은 구원의 드라마에서 맡을 역할을 각기 분담하셨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꽉 잡고(DA 834) 성령의 후원으로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 약정에 따라 예수는 전 인류를 위한 창조자, 보증, 희생, 가까운 친족 구속자, 중재-중보자, 그리고 대속물이 되기로 결정되었다. 이 약정에 명시된 조건에 따르는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 오늘 우리 각자가 체결해야 하는 이 언약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가 받은 은혜의 언약이다. 예수의 희생을 통해 길이 열리지 않았다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성민(聖民)이 될 길은 없다(시 50:5). (32.2)
 영원하신 아버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즐겨 따를 마음을 주옵소서. (32.3)
 사람을 창조할 때 이 원대한 신격의 이상이 언약 체결자이신 엘로힘 에 의해 표명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음 조상이 타락했을 때 말씀하신 복음의 약속(창 3:15)을 보면, 이 언약은 궁극적으로 언젠가 회복된 땅에 완전한 인간이 살게 된다는 그리스도의 보증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 언약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미친다. 삼위께서는 자기보다 위대한 자의 이름으로 맹세할 길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복으로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하셨다(창 22:17). 이처럼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사실” 즉, 언약과 맹세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오셨다(히 6:10-20). 이 사상은 엘로힘 이란 찬란한 이름의 영광을 발산한다. 그는 위대한 창조자인 동시에 언약 체결자이시다. (33.1)
 지구 역사의 첫 주 동안에 엘로힘 은 생명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빛을 창조하시고 또 하늘을 만드셔서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셨다. 그가 열매를 만드신 것은 생명의 유지를 위한 것이요, 하늘에 발광체들을 두신 것은 날과 계절의 조절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각종 동물을 만드신 것은 지구상 어디에나 생명이 거주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사람을 만드신 것은 이 소우주(小宇宙)에 당신의 대리자를 두기 위함이었다. 그가 안식일을 만드신 것은 매주 창조주의 사업을 기념하고 사람과 조물주와의 관계를 인(印)치시기 위함이었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그 전 날 이루어진 것과 현재와의 연결인 동시에 미래와의 결합을 이루는 고리였다. 각 단계는 모자이크 그림의 부분들과 같은 것이었다. (33.2)
 영원한 언약
 엘로힘 께서 “태초”에 제정하신 이런 언약 관계들은 오늘도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것은 내가 가진 여러 가지 개념 가운데 가장 고무적이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개념이다. 나는 이 생각을 자주 한다. 겨울에 숲 속을 산책하노라면 모든 것이 조용하고 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봄이 오면 새들이 돌아와 우리가 여기 있노라고 노래한다. 왜? 무엇이 때가 되면 제비들을 카피스트라노(Capistrano)로 돌아오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제왕(帝王) 나비를 해마다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거위와 물오리 같은 철새들이 길도 없는 허공을 날아 정확히 제 자리로 돌아와 쉬게 하는 것일까? 나는 로빈 새들이 담장에 붙은 파이로칸투스(pyrocanthus) 열매를 따먹는 것을 구경하곤 한다. 무엇이 그들이 제 때에 돌아오게 만드는 것일까? 그들의 작은 두뇌에 무엇이 작용하는 것일까? 옛날 엘로힘 은 해, 달, 별들과 모든 생물과의 사이에 맺어 주신 관계를 통해 철이 바뀌는 것을 나타내도록 정하셨다. 그것에 의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철따라 정기적으로 이주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33.3)
 나는 소년 시절 인도에 살 때 해마다 로브 노르(Lob Nor)에서 찾아오는 철새들을 구경하며 감격에 넘쳐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멀리 히말라야 산을 넘어 날아오곤 했다. 길도 나지 않은 하늘을 날아 그들은 먼 시베리아로부터 무수한 산과 들을 넘어 따듯한 기류를 따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을 타고 인도 북부 앗삼(Assam) 지방의 브라마푸트라(Brahmaputra)로 와서 귀에 익은 행복한 소리를 지르며 모래터에 내려앉곤 했다. (34.1)
 북방의 강들과 연못이 얼어붙기 전에 이 오리와 거위들은 그들의 조상이 해 오던 대로 남쪽의 유인을 느끼고 제 때에 날아와 생명을 유지한다. 히말라야 산정에 눈보라가 몰아쳐서 길이 막히기 전에 그들은 그 산을 넘어오는 것이다. 나는 해마다 벅찬 감격과 기쁨을 안고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누가 그들을 정규적으로 돌아오게 하는지를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34.2)
 영원하신 하나님, 내가 가야할 인생 길을 주께서 택하여 인도하시고 내가 출발할 때가 언제인지 알게 하옵소서. (34.3)
 엘로힘 은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규약을 정하셨다. 그는 바다에서 습기를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늘로 들어올려 아무 기계도 없이 수억만 톤의 물을 운반해 땅에 부으신다. 물이 해면 높이에서 화씨 212°에 끓게 하신 하나님은 그 기능을 이용하여 우리가 당신께서 명하신 대로 음식을 요리할 수 있게 하신다. “너희가 오늘 구울 것은 굽고, 끓일 것은 끓이고 남는 것은 남겨서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출 16:23). 만일 굽는 것이 화씨 350°를 요구하면 우리는 오븐을 화씨 350°에 맞춰 놓고 안심하고 다른 일을 볼 수 있다. 화씨 350°가 어제 한 일을 오늘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34.4)
 엘로힘 은 예측이 가능한 분
 엘로힘 은 예측이 가능한 분이시다. 혹시 독자는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간단한 물리학적 원칙을 모르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만일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수천 가지 현상이 예측을 불허한다면 아마 곧 정신 이상자들이 될 것이다. 예컨대, 인력(引力), 지구의 공전과 자전, 바다의 조수, 대기의 흐름 등이 예측 불허의 것이 되어 버린다면 불안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아름답고 힘있는가! “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 뿌리는 시기와 추수하는 시기와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창 8:22). 창조 때 엘로힘 은 이 모든 법칙을 우리의 편이를 위해 그렇게 만드셨다. 그중 일부를 배워 알게 될 때 우리는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사람은 친숙하고 예측이 가능한 그분을 믿고 안심하는 것이다. 엘로힘 은 당신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35.1)
 우리가 엘로힘 을 더 알면 알수록 우리의 기쁨은 그만큼 더 커진다. 그는 그의 모든 피조물들과 언약을 맺으셨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들과도 언약을 맺으셨다. 창세기 6장을 펴서, 그분이 노아를 어떻게 다루셨는지 읽어 보라. 노아에게 하신 약속은 이러했다: “그러나 내가 너와는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올지니라. 모든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에서 너는 각기 둘씩 방주 안으로 가져와서 너와 더불어 살게 할지니, 그들은 수컷과 암컷이라.... 각기 둘씩 네게로 오리니, 그것들로 생명을 보존케 하라”(창 6:18-20). 이것이 노아에게 하신 언약이었다. (35.2)
 그는 홍수 후 지구에 다시 생물이 살도록 계획하셨다. 소우주는 홍수로 폐허가 되었으나 능력의 엘로힘 은 생명이 단절되지 않을 길을 예비하셨다. 즉 그는 생명이 계속 “보존”되게 하신 것이다. 그는 모든 필요한 준비를 하셨으므로 무슨 일도 그에게는 예상외로 발생한 것이 없었다. 그가 이 일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120년이나 일하셨는지 생각해 보라. 그는 창조 때 질서 정연한 절차에 따라 날마다 해야 할 일을 하심으로 7일 동안에 모든 것을 “심히” 좋게 만드셨던 것과 같이,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해서도 단계마다 모든 생물이 그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방주로 다 들어가 살도록 점진적으로 날마다 역사하심으로 그들의 “생명을 보존케” 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와는 언약을 세우리니” 하셨던 그 언약을 그는 이루신 것이다. (36.1)
 홍수 후 엘로힘 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과 모든 가축들을 기억하사 ... 땅위에 한 바람을 만들어 지나가게 하시니 물이 줄어들더라”(창 8:1). 그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의 목록을 만들려고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온 세상이 물에 잠겨 있었으므로 엘로힘“한 바람을 만드”셨다. 그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가 이 바람을 만드신 것은 홍수가 남긴 쓰레기를 청소하고 이 땅의 표면을 재정리하고 꾸미기 위한 엄청난 과업을 위해서였다. 나는 차나 비행기로 여행할 때, 또는 등산을 즐길 때, 물에 깎인 산들과 비에 씻긴 고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 특별히 창조된 바람이 여러 달 동안 물을 몰아 흙과 돌을 파내고 밀어내는 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영감의 기록은 이 조수가 “계속” 땅에서 “물러가고 돌아오고” 했음을 말한다(창 8:3 난외주). 그렇게 바람에 밀려다닌 물의 작용의 결과를 오늘날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보게 된다. 150일 동안 물이 “물러가고 돌아오고 물러가고 돌아오고”를 계속했다고 말한 난외주를 생각해 보라. 이 조수의 작업은 생명을 유지한 승객들을 실은 방주가 산 위에 머물러 “쉴 때” 진행되었다(창 8:4-5). (36.2)
 엘로힘 은 홍수 후에 지구를 조경(造景)하셨다
 비가 그치자 물은 계속 줄어들었다. 물은 거대한 조수처럼 “물러가고 돌아오고 물러가고 돌아오고” 하기를 5개월이나 계속했다. 맹위를 떨치는 이 물이 어떤 작용을 했을까 생각해 보라. 엘로힘“만드신” 바람에 밀려 물이 계속 들락날락하며 지면에 150일 동안이나 흙과 바위와 자갈을 문질러 댈 때 물 밑에 점토질이 겹겹이 쌓이며 지층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어떤 우물 파는 사람이 나에게 오리건(Oregon) 주에서 얻은 경험을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그는 굴착기로 5,000척 깊이에서 화석으로 변한 적송(赤松) 토막을 끄집어 올렸다고 한다. 지하 반 마일 깊이에 적송이 묻혔음을 생각해 보라! (37.1)
 그대는 혹시 캐나다의 밴프(Banff) 서쪽의 아이젠하워 산에 올라가 본 일이 있는가? 거기 12,000척 정상으로부터 하산하노라면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의 지층과 똑같은 지층이 정반대의 순서로 노출된 것을 보게 된다. 그랜드 캐년의 바닥 층은 아이젠하워 산 지층의 꼭대기 층이고 아이젠하워 산의 바닥 층은 그랜드 캐년의 꼭대기 층이 되어 있다. 그 두 곳의 지각의 구성은 정확하게 반대 순서로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원래 놓여진 대로일까? 그리고 그 거대한 산맥을 뒤집어엎은 힘을 상상해 보라. 아마 세상에 홍수가 있기 전에는 예리하게 톱니 모양 들쭉날쭉한 산맥은 없고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산과 들만이 있었을 것이다. 히말라야 산, 알프스 산, 안데스 산, 로키 산맥, 그리고 거대한 대륙의 중추들을 하늘로 밀어 올릴 만큼 강력한 측방 압력의 작용을 상상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해 보라.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