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2. 엘로힘—능하신 언약 체결자 (지킬 약속을 가지신 하나님)
 엘로힘 은 새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열매와 가지와 잎이 있는 여러 가지 나무들을 먼저 만드셨다. 창조 사업의 순서에는 그의 깊은 생각과 사랑이 숨어있다. 많은 참새들보다 우리가 더 귀중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실로 그는 벌[蜂]보다 꽃을 먼저 만드셨고, 소보다 풀밭을 먼저 지으셨다. 그는 예민한 생물들을 만들어 이 땅에 두시기 전에 그들이 살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드셨다. 창조 사업의 진행을 보면 날마다 그 다음 날의 필요를 장만하시는 것이 그 날의 일이었다. 이처럼 엘로힘 은 지성과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27.1)
 영원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27.2)
 피조물들을 생각하시는 엘로힘
 그가 창조한 물질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화학적, 구조적, 천체학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우리에게 제공하심으로 엘로힘 은 우리의 전인적 행복에 관심이 있으심을 나타내 보이신다. 우리가 빛과 공기와 물과 흙, 풀과 곡식과 관목과 수목, 물고기와 곤충과 조류와 동물, 그 무엇을 보든지 그것들이 사람보다 먼저 존재하게 되었음을 보고, 그가 우리의 필요를 미리 다 예측하셨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행복하고 만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리고 하늘 저편 외계로의 도전을 위해 엘로힘 이 만드신 환경을 필요로 한다. 환경은 생활 터전인 동시에 교과서 역할을 하므로 사람이 거기서 얻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고마워 경배하게 한다. (27.3)
 영감의 말씀이 계속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 “둘째 날이라,” “셋째 날이라”고 한 것을 주목해 보라. 거기엔 신중한 리듬이 나타나고, 식별과 예측이 가능한 주기와 순서가 드러난다. 이 일을 위해 엘로힘 은 해, 달, 별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연, 월, 일의 주기에 따라 우주 공간을 선회한다. 이 천체들의 상호 관계를 측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무리한 과업일 뿐 아니라 천체와 천체 사이에 존재하는 정밀한 관계를 측정키 위해서는 오늘날 전자 망원경 같은 특수 장비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언약을 세우시는 엘로힘 은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과 일일이 정밀한 언약 관계를 정해 놓으셨다. 그 관계가 작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27.4)
 물질의 내부 구조를 보면 미립자, 원자, 전자, 양성자, 중성자 및 콱스 등으로 만들어졌는데, 또 다른 무엇이 발견될지 누가 알겠는가? 흥미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초소형(超小形) 우주인 듯 회전 운동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말로 우주 성군의 소리 없는 메아리라고나 할까? 그것 하나 하나와 또 그 모두와 그는 완벽한 동맹을 제휴하셨다. 그리고 엘로힘 이 돌아보시니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공동으로 모두의 행복을 최대로 증진하기 위해 상부상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이 그가 말한 “심히 좋았다”는 평가의 의미인 것이다. (28.1)
 잠시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생각해 보자. 눈, 손, 발, 그 밖의 모든 인체의 각 부위, 그 속에 흐르는 각종 순환 계, 두개골 속에 들어 있는 뇌, 피부로 덮여 있는 모든 피하 조직, 그 모든 부분들은 각기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어 있다. 각 부위가 다른 부위와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는 조용함과 쉼과 기쁨과 평화가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의 샬롬(šalom)과 헬라어의 에이레네(eirēnē)는 모두 온 몸이 “잘 돌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완전한 건강,” “건전함,” 또는 “완전”의 뜻이다. (28.2)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언약의 법칙을 엘로힘 이 우리 몸에 내장시키셨는지 우리는 산출할 길이 없다. 엘로힘 은 모든 이상적 결합을 만드신 분이다. 엘로힘 은 이 모든 언약을 추호의 착오도 없이 고안하고 보장하는 하늘 원칙의 구현인 사랑이시다. (28.3)
 영원하신 하나님, 모든 위기에 이건전함을 우리에게 허락하옵소서. (28.4)
 사람을 위해 만물을 만드신 엘로힘
 “하나님이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 모든 환경 조건, 어떤 동물과 식물을 보나, 토양과 기압과 기온의 변화, 땅의 근본을 구성하는 물질의 화학적 물리적 관계를 보나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이 모든 것은 일하시는 적극적인 엘로힘 을 보여준다. 그것들을 통해 그는 자기를 소개하신다. 실로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기 전에(창 2:5) 모든 구체적 세부 사항까지 미리 생각하시고 만드셨다.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 싶어 깊고 신중히 연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의 눈에는 “맹세”란 뜻의 이름을 가진 그분의 성품과 지혜와 능력에 대한 하나의 놀라운 개념이 발견될 것이다. 엘로힘 이란 칭호는 수억의 언약을 암시하며, 천지간의 만물을 만들어 내시고 그들을 완전한 조화와 균형 속에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계시이다. (29.1)
 간혹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다르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먼저 구약 성경을 신중히 잘 읽어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속독(速讀)을 권하는 말이 아니다. 한 줄 한 줄 차근차근 문단 하나 하나를 관계 있는 다른 문단과 비교해 가며 성령께서 선별하여 기록에 남긴 그 옛날 고사들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를 살펴 가며 기도하며 읽으라는 말이다. 우리의 주의를 끌어 그가 제시하는 진리를 보게 하기 위해 그가 사용하신 “말”(고전 2:13)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사상을 우리는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29.2)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다”(신 6:4). 이 연합은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의 계획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며, 성령께서도 다른 두 분을 떠나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심을 의미한다. 이 세 분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완전한 조화를 이루신다. 그들은 또한 특성과 재능이 동일하시다. 그들은 각기 사랑과 선하심과 전지 전능하심과 인자하심을 구비하고 계신다. 그들은 목적하시는 바가 하나이다. (29.3)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런 해설에 불안을 느낀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하나”란 말을 창세기에 처음 쓰심으로(창 1장 초반) 이 문제에 대한 의혹을 풀어 주시는가 보자. 이 말을 히브리 성경의 어감을 가장 잘 살리기 위해서는 영어로 이렇게 써야 한다: “It was evening, it was morning, day one.” 여기 “one”은 히브리어로 에하드('eḥaḏ)인데, 어두움과 빛을 합친 복합적 단위이다. 그 둘은 분명히 밤과 낮이 서로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 둘이 합쳐서 하루(one day)라는 하나의 시간적 단위를 구성한다. (30.1)
 그 다음으로 이 낱말이 성경에서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혼인을 주례하신 첫 부부에 관한 이야기에 “남자가 ...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고 한 데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결혼한 부부를 두 사람으로 보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결혼으로 연합했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의 육체로 간주하신다. 둘이 한 단위를 이룬 것이다. 성경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연합을 말할 때 사용한 단어가 바로 이 단어이다. 그들은 “하나”이시다. 다시 요약하면 엘로힘 이란 이름은 신격을 구성하는 세 분의 본질이 동일함을 말해 준다. 엘로힘 을 수식하는 모든 형용사가 단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로힘 의 행위를 말하는 모든 동사가 단수인 것은 세 분이 하나로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30.2)
 삼위의 연합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처음 몇 마디 말로 영감의 귀재는 우리로 하여금 삼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정신적인 노작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신학적 연구 거리를 주셨다. 우리는 삼위께서 이 지구를 창조하신 것을 볼 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배치 정리되고, 완전한 조화를 이룬 가운데 모든 식물, 모든 동물, 우주의 모든 부분, 모든 미립자, 모든 원자와 아름다운 “하나”를 이룬 흠잡을 데 없는 언약 관계가 맺어진 것을 보는 것이다. 각 부분은 다른 모든 부분에 의존하며 다른 것에 힘입어 편안한 가운데 자라고 발달하나 그 상호간에는 공평한 협정이 있어 상부 상조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것이 엘로힘 이란 이름 뒤에 숨은 이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마 19:17)고 하셨다. (30.3)
 인간의 두뇌가 포착할 수 있는 영원한 세월의 원점은 엘로힘 이 사람을 창조하기로 결정한 시점이다. 그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인간을 만드실 의논을 하실 당시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높은 존재는 천사 루시벨이었다. “덮는 그룹 ... 빛나는 스랍”(GC 669)인 그는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인류 창조를 상의하는 그 비밀 회의에 초대되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타락하여 “불법의 비밀”에 빠져 후일 “경건의 비밀”을 대적하는 본격적 투쟁을 주도한다. 반역이 시작되자 하나님은 인류를 향해 사랑의 포옹을 넓히신다. 이 대결은 오늘날 빛과 어두움, 선과 악, 그리스도와 사단간의 대쟁투로 나타나고 있다. (31.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오래 전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사랑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랑이 존재하려면 항상 사랑의 영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신 만치 반드시 삼위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닮은 존재들로 구성된 대가족을 원하셨으므로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땅에 사는 자녀들에게 나누어주기로 결정하셨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는 자녀들에게 당신을 닮은 성품을 주셔서 그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사랑으로 경배하고 자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