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과 기독교 신앙 ―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제 1 부 제칠일 안식일 신앙의 이유 제 5장 제칠일 안식일은“너희가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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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69.2)
 제칠일 안식일의 차별성은 외형적 형태에 있지 않다. 제칠일은 다른 여섯 날들처럼 24시간의 한 날이다. 제칠일 안식일에도 다른 여섯 날들에서처럼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에서 해가 진다. 제칠일 안식일에도 다른 여섯 날들에서처럼 좋은 날과 궂은 날이 교차한다. 해 비치는 날과 비 내리고 눈오며 바람부는 날이 교차한다. 외형적으로는 제칠일의 무엇하나 특별난 것이 없다. (70.1)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전 5:17)라고 했으나 외형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옛 사람과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성삼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새 사람 되었다고 해서 키가 몇 센티 더 커지고 몸무게가 더 늘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네모난 얼굴이 둥근 얼굴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검은 피부가 흰 피부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속사람이다. 육체의 사람이 신령한 사람과 진정의 사람으로 달라진 것이다. 과거에서 해방된 사람으로 달라진 것이다. “육체로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거듭난 것이다. 전에는 “계집 종의 자녀”였다가 이제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가 된 것이다(갈 4:29,31). 전에는 종의 멍에 아래 있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갈 5:1). (70.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요 3:5)의 진정한 특징은 그 삶의 신령한 정신에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갈 5:22,23). “그리스도 안에서 지나간 이전 것”(고전 5:17)은 우리의 피부나 얼굴 모양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 같은 것이 아니다. “현저한 육체의 일”이 그리스도의 신앙 안에서 이제 옛 일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신앙 안에서 “현저한 육체의 일”이 이제 과거의 일로 지나갔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이 지나갔다(갈 5:19-21).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갈 5:24) 사람들이다. (70.3)
 안식일이 다른 여섯 날들과 다른 부분도 그 영성에 있다. 안식일의 신령한 기능에 있다. 제칠일 안식일은 신령한 날이다.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날이다”(요 4:24).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찾고 구해야 할 대상은 사마리아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요 4:23)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곧 이 때” 즉 제칠일 안식일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사마리아 산에서 예배하는 자들이나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인 제칠일 안식일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다(요 4:23). (71.1)
 제칠일 안식일은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요 4:24) 신령한 날이다. 안식일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같은 신령한 목적으로 안식일을 창조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우리와 하나님의 영적인 만남을 위하여 태초에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다”(시 118:24). (71.2)
 그리고 안식일은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자신의 영성을 자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안식일의 영적 본성을 자각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영적 본능과 운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우리의 영성이 성장하는 날인 것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나는 날인 것이다. (71.3)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 4:2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외모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찾으시는 사람은 외모로 예배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중심에서 진실하고 중심에서 신령한 사람을 찾으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언제나 “사람은 외모로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주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신다”(왕상 8:39). 그래서 안식일의 자녀들은 자기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빌 2:5).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도 외모의 때가 아니다. 사람이 외모로 아버지를 예배하는 시간이 아니다. 사람은 무엇에서든지 외모를 보고 외모를 따진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에 대해서도 외모를 따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는 외모의 날이 아니라 신령하고 진실한 날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날”이다. 그 날이 제칠일 안식일이다. (72.1)
 제칠일 안식일은 이처럼 그 외모의 특성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기에 합당한 날이 된 것이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입히신 그 신령성과 그 진정성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신령해진 안식일의 본성 때문에 영이신 아버지께 예배하는 날이 되었다. 우리가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할 날이 되었다(출 20:8). 따라서 우리에게 안식일의 예배가 있거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빌 2:5)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케 해야 한다”(빌 2:2-5). 마음을 강팍케 하여 하나님의 “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저 광야의 세대(히 3:8-19; 4:7)의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실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성령의 일이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고전 2:14-16).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영이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요 3:5)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요 3:6). 신령한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이 되는 것이다”(고전 2:13). 외모의 사람은 육신의 사람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롬 8:6).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음이다”(롬 8:7). 그것은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다”(고후 4:4). (72.2)
 제칠일 안식일은 그 중심에서 다른 날과 다른 날이다. 그 중심의 신령함과 진실됨에서 다른 날들과 다른 날이다. 제칠일 안식일의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외모로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 없으나 제칠일 안식일의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신령과 진정의 사람이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이다”(골 3: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오래 참음을 옷입고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히 매는 띠이다”(골 3:10-14). 이것이 우리를 온전히 하나로 매는 안식일 신앙의 띠이다. 하나님과 우리를 온전히 하나로 매고 우리와 이웃을 온전히 하나로 매는 안식일 신앙의 띠이다. (73.1)
 제칠일 안식일의 사람은 새로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위엣 것을 찾는 사람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거기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골 3:1). 거기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우편에 있을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식일의 자녀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골 3:2). 옛날의 우리는 땅에 속한 우리이며 여섯 날의 우리였다. 이러한 우리는 제칠일 안식일과 더불어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었다. 옛 세상과 함께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의 새 생명이 안식일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임을 입게 되었다”(골 3: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한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탐심과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을 이겨야 한다”(골 3:5-8). 안식일의 문 밖에서 버려야 한다.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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